한 미술사가에게 부치는 오마주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가 신분을 밝히자 전혀 생소하지 않은 그 이름에 조금은 반갑기까지 했다. 2000년대 초의 일이다. 그의 이름 필자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그는 조선미술사가로서 여러 저서와 활발한 강의를 통해 일반인에게 조선 회화 미술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인물이었다.
오주석(吳柱錫, 1957~2005).
오주석은 먼저 필자가 조선 시대 초상화를 피부과 전문의의 시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가 1980년대 <월간 미술 세계>에 여러 차례 조선 시대 초상화의 안면에서 나타난 ‘피부 병변’에 관해 기고한 글을 기억한다며, 조선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주석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의 초점은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화와 그의 조부 이재(李縡, 1680~1746) 것으로 전해온다 해서 ‘전(傳) 이재 초상’이라는 별칭이 붙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아무리 보아도 동일 인물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채(李采) 초상.(1745~1820)
얼마 후, 오주석이 보내온 자료를 살펴본 필자는 두 초상화가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그린 동일 인물의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었다. 두 초상화의 피사인 안면에 나타난 피부 증상이 같았기 때문이다.얼굴의 윤곽 또는 눈매, 귀, 코 등의 모습은 유전될 수 있다. 손자 이채가 조부 이재를 빼닮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결코 같은 자리에 ‘혹’ 또는 ‘점’이 유전될 수는 없다.
이채(李采) 초상.(1745~1820) 확대.
그 즉시 전화로 필자의 의견을 전했더니, 오주석은 조용히 탄성을 터뜨리며 마치 쾌거를 이룬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실로 우리 초상화의 미술사적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약 오주석이 두 초상화가 동일 인물의 것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제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까지 두 초상화는 ‘조부와 손자의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주석이라는 미술사가의 집념과 날카로운 눈썰미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게 되는 이유다. 그가 너무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이 글은 고인이 된 오주석에 대한 나의 오마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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