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기치 않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가 신분을 밝히자 전혀 생소하지 않은 그 이름에 조금은 반갑기까지 했다. 2000년대 초의 일이다. 그의 이름 필자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그는 조선미술사가로서 여러 저서와 활발한 강의를 통해 일반인에게 조선 회화 미술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인물이었다.
오주석은 먼저 필자가 조선 시대 초상화를 피부과 전문의의 시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가 1980년대 <월간 미술 세계>에 여러 차례 조선 시대 초상화의 안면에서 나타난 ‘피부 병변’에 관해 기고한 글을 기억한다며, 조선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주석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의 초점은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화와 그의 조부 이재(李縡, 1680~1746) 것으로 전해온다 해서 ‘전(傳) 이재 초상’이라는 별칭이 붙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아무리 보아도 동일 인물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오주석이 보내온 자료를 살펴본 필자는 두 초상화가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그린 동일 인물의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었다. 두 초상화의 피사인 안면에 나타난 피부 증상이 같았기 때문이다.얼굴의 윤곽 또는 눈매, 귀, 코 등의 모습은 유전될 수 있다. 손자 이채가 조부 이재를 빼닮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결코 같은 자리에 ‘혹’ 또는 ‘점’이 유전될 수는 없다.
그 즉시 전화로 필자의 의견을 전했더니, 오주석은 조용히 탄성을 터뜨리며 마치 쾌거를 이룬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실로 우리 초상화의 미술사적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약 오주석이 두 초상화가 동일 인물의 것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제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까지 두 초상화는 ‘조부와 손자의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주석이라는 미술사가의 집념과 날카로운 눈썰미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게 되는 이유다. 그가 너무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이 글은 고인이 된 오주석에 대한 나의 오마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