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판결은 도둑이 훔친 물건의 가격과 가치가 다름을 깨닫게 해줬다

타협이 사라진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는 경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더이상 자식의 지혜가 되지 못하는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주간한국>은 따듯한 감성의 기족 이야기를 애정 어린 필체로 풀어놓으면서 온가족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민호 작가의 글을 격주로 소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필자의 작품들을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로 재각색한 주옥 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 삶의 영원한 디딤돌인 가족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암행어사는 변장을 하고 전국 방방곡곡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왕이 하사한 마패를 보이며 국사를 바로잡는 벼슬이었다. 어느 날 암행어사가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마을은 작은 농촌마을로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해에는 흉년이 들어 마을 여기저기서 도둑이 들끓었고, 민심이 몹시 사나워졌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사람들이 무척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 때, 마을에서 물건을 훔치던 도둑이 잡혔다. 한 도둑은 부잣집 담을 넘어 들어가 금송아지를 훔치다 붙잡힌 도둑이었고 또 한 도둑은 가난한 농부의 논에서 추수한 볏단을 훔치다 들켰다. 마을 원님이 동헌에서 두 도둑을 잡아 놓고 마을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재판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암행어사가 이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암행어사는 구경꾼으로 변장하고 이 재판을 지켜보았다. 동헌 마당에는 오랏줄로 묶인 두 도둑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게으르고 흉악하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원님은 눈을 부릅뜨고,“너 이놈들, 남의 집 귀한 물건을 훔치다니 너희 죄를 용서할 수 없도다. 물건 주인들은 어디 있느냐?” 금송아지 주인은 그 마을의 큰 부잣집 어른이었고, 볏단의 주인은 그 마을의 가난한 농민이었다. 원님은 도둑들에게 어떤 벌을 주어야 할 것인지 생각했다. 훔친 물건을 볼 때 금송아지가 볏단보다는 훨씬 값이 비싸고 귀한 것이니 당연히 금송아지 도둑이 더 중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송아지 도둑은 대담하게도 부잣집 담장을 넘어 물건을 훔쳤고, 볏단 도둑은 밤에 논에서 슬그머니 볏단을 훔친 것을 보면 금송아지 도둑이 더 악질이라고 생각했다. 부잣집 주인은 원님하고도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금송아지 주인은 원님에게 중한 벌로 다스려 달라고 간청하였다. 깊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원님은 두 도둑들에게 판결을 내렸다. “금송아지를 훔친 도둑놈아. 너는 밤중에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 장롱 속에 있는 귀한 황금을 훔쳤으니 그 죄질이 심히 악질이로다. 금송아지 값이 얼마인지나 아느냐? 너 같은 놈은 몸을 팔아서도 살 수 없는 값비싼 것이다. 그러니 네놈을 사형에 처한다.” 아주 엄한 벌을 내렸다. 그 다음 볏단을 훔친 도둑놈에게 원님이 말하였다. “볏단을 훔친 도둑아. 너는 밤중에 몰래 남의 논에 들어가서 농부들이 일 년 동안 애써 지은 볏단을 훔쳤으니 이 또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볏단은 금송아지보다는 아주 싼 것이니, 금송아지 도둑보다는 가벼운 벌을 주어 5년간 옥에 가두도록 하겠다. 알겠느냐?” 암행어사는 원님의 판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왔다. 그 젊은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원님. 금송아지를 훔친 도둑이 사형인데, 볏단을 훔친 도둑은 감옥에 5년 가두는 벌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금송아지 값이 비싸다고 하나, 그것이 없다고 하여 굶주리거나 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볏단 주인은 쌀이 없으면 굶주려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금송아지보다 볏단이 훨씬 더 귀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볏단 도둑을 더 엄벌에 처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원님은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당돌하게 말하는 젊은이가 괘씸하였지만 말을 듣고 보니 그 말도 옳은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도 젊은이의 말에 웅성웅성하였다. 원님은 잠시 망설였다. 그렇다고 젊은이 말대로 하는 것은 체면이 아닌 것 같았다. “어허. 아무리 그렇다고 금송아지 값이 저 볏단의 값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볏단이 금송아지보다 더 귀해서 벌을 거꾸로 내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소. 허나 젊은이 말도 일리가 있고 하니, 두 도둑 모두 감옥에 5년씩 가두기로 하겠소.”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 석연치 않았지만 웅성거리기만 할 뿐 누구하나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님이 최종판결을 내리고자 했다.

이때였다. 벽력 같은 소리로 “암행어사 출두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패를 든 서슬 퍼런 암행어사가 나타나자 동헌에 있는 마을 사람들과 원님은 모두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며 암행어사를 맞았다. 암행어사는 동헌 마루에 올라가 원님과 두 도둑을 쳐다봤다. 온 마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오늘 재판을 지켜보았소이다. 원님 말도 맞는 것 같고, 젊은이의 말도 맞는 것 같소이다. 원님은 답하시오. 금송아지와 볏단 중 어느 것이 더 귀하오?” 원님은 머뭇거리다 답했다. “금송아지가 훨씬 비싼 것이옵니다.” “그렇소이다. 볏단보다는 금송아지가 값이 더 비싼 것이오. 그래서 원님은 금송아지 도둑을 사형에 처하려고 했던 것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젊은이는 답하시오. 볏단과 금송아지가 어떤 것이 더 귀한 것이오?” 젊은이는 당차게 말했다. “값은 금송아지가 비싸겠으나 귀한 것은 볏단이 훨씬 귀한 것입니다. 벼는 농민들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볏단보다 금송아지 도둑을 더 가볍게 벌을 주는 것이 옳겠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암행어사는 동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어떠시오?”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말을 들으시오. 죄에는 여러 가지 죄가 있소. 물건을 훔치는 죄, 사람을 상하게 하는 죄, 나라를 어지럽히는 죄$ 죄를 어떻게 벌한 것인가는 그 죄의 질이나, 범인의 형편이나, 그 마을의 사정 등을 잘 살펴서 벌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왜냐하면 한번 벌이 내려지면, 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장래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양심까지 좌우하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요. 안 그렇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암행어사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죄인에게 벌을 줄 때에는 앞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양심까지 재판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오. 만일 재판을 그르치면 그 원님은 죄인보다도 마을의 앞날을 그르친 더 나쁜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안 그렇소?” 또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암행어사는 말을 멈추고 원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원님. 벌을 줄 때에는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고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주는 것이외다. 죄를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그 말 아니겠소? 그러니 마을의 원님은 지혜로워야 하오. 원님이 어리석으면 그 마을 사람들은 죄도 없이 불행해지는 법이오. 그렇지 않소?” 원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암행어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초리는 ‘그래, 내가 무얼 잘못했소?’ 하는 듯 불만이 엿보였다.

암행어사는 두 도둑과 원님과 마을 사람들을 두루 살피고는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금송아지를 훔친 도둑. 너는 남의 담장을 넘어 들어가 값비싼 금송아지를 훔쳤으니 그 죄는 막중하여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금송아지가 아무리 값이 비싼들 사람의 목숨보다 비쌀 수는 없으니 너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너를 감옥 5년에 처한다. 알겠느냐! 그리고 볏단을 훔친 도둑. 너는 남이 농사지은 논에 밤중에 들어가 볏단을 훔쳤으니 그 죄 또한 막중하다. 볏단은 금송아지보다 값이 싸니 금송아지 도둑보다는 가벼운 벌을 주어야 한다고 원님은 판단하였지만, 너의 죄는 볏단의 값으로 따질 죄가 아니로다. 농민이 일 년 동안 땀 흘려 지은 벼를 하루 밤에 훔친 죄가 가볍게 된다면, 앞으로 농민들은 어떻게 농사를 짓겠느냐?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느냐? 농사보다 도둑질이 더 손쉽지 않겠느냐? 농민들이 밤에 잠을 어떻게 자겠느냐? 너는 볏단을 훔쳤지만 그것은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니다. 너는 온 마을 사람들의 평화를 해치고 선하게 농사를 짓는 양심을 훔친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없다면, 그것은 생명과도 같은 이 마을의 질서를 훔친 것이다. 질서를 어지럽힌 중죄를 지은 것이다. 알겠느냐? 논에서 벼를 훔치기가 쉬운 만큼 더 큰 벌로 그런 죄를 막아야 할 것이다. 너를 사형에 처한다! 다만, 금번 한하여 여러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여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너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알겠느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암행어사를 바라보았지만, 암행어사의 눈빛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그 다음, 원님. 그대는 이 마을을 다스리면서 본인은 잘 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판단이 부족한 사람이 마을을 다스리는 것은 그것이 곧 죄악이오. 마을을 다스리는 사람이나, 죄를 판단하는 사람은 지혜로워야 하오. 지혜롭지 못하면 마을의 장래와 후손을 망치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과 같소이다. 더욱이 욕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그 욕심으로 죄를 판단한다면 그때는 사형보다 더한 벌을 받아도 부족하오. 자기 한사람의 욕심을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행복을 빼앗았기 때문이오.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소. 그것이 한 마을을 다스리는 사람의 천금만금보다 무거운 역사적 책임이오. 알겠소이까!” 원님은 암행어사의 말에 몸이 떨렸다. “그대를 이 마을의 원님으로 맡길 수는 없소.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면 마을의 원님을 맡아서는 안 되오. 알겠소?” 암행어사는 그 자리에서 원님을 파면시켰다. 그리고, 마을 사람 중의 원님의 판결에 당차게 의견을 말한 젊은이를 불렀다. “그대는 옳은 생각을 용기를 갖고 원님에게 말한 훌륭한 젊은이요. 언젠가 이 마을의 원님이 된다는 생각으로 더 공부하여 지혜와 올바른 인격을 갖추도록 하시오.” 하면서 젊은이에게는 상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곰곰이 훔친 물건의 값보다 그 행위로 인해 미쳐질 마을의 장래를 생각해보니 암행어사가 현명한 판단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행어사의 추상같은 판결은 이 마을의 법이 되었다. 누구도 논밭에서 피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은 한 톨도 훔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안심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암행어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격과 가치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해주었다. 당장의 개개인의 이익보다 마을의 모든 사람과 장래의 후손들이 더불어 사는데 지켜야 할 기본적인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 주었다. 암행어사가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와 지혜롭고 정의로운 판결을 하고, 귀중한 가르침을 준 그에게 수도 없이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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