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잊혀진 거장 그 한국인의 자긍심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개인전, 4월 17일~5월 19일, 학고재 갤러리
  • 바람, 40×63.8㎝ 동판화, 1959.
“대륙의 고려인들은 19세기 후반 이래 자신들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남부로 뻗어나가 그곳에 새로운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제 고려인은 21세기를 함께 열어갈 ‘대륙진출의 인도자’이자 ‘대륙공략의 동반자’다.”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김호준 지음, 주류성 刊>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표정이 따사롭고 평온하다. 흰 저고리와 얼굴, 하얗게 센 머리, 구부정한 어깨를 지탱하듯 포개 모은 손과 다문 입술에서 꿋꿋한 인품이 엿보이는, 영락없는 우리의 어머니다. 이번 전시기획자이자 25년간 ‘변월룡 연구’에 전념해온 문영대 미술평론가는 변월룡 화백과 장문의 ‘가상대담’을 썼는데, 다음은 ‘어머니’부분이다.

“▲문영대=1985년에는 ‘어머니’초상화를 그리셨습니다. 어머니가 1945년에 돌아가셨으니까 40년 만에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리셨는데, 아마 선생님께서 막상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보니 더욱더 그리우셨나 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온갖 세파를 이겨낸 후의 평온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변월룡=참, 온갖 거칠고 모진 세파를 몸소 겪으시며 다 헤쳐 나가셨지. 그런 어머니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외동아들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 나이가 드니 한이 되더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불효자가 아닐 수 없다네. ‘어머니’초상화는 나의 그런 참회의 심정이 담겼네. 그리고 러시아 말을 모르시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한글로 ‘어머니’라고 썼던 것이고.”

이와 함께 작품 ‘바람’은 들판의 버드나무가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역동적인 풍경을 실감 나게 묘사한 수작이다. 하늘공간에 사선으로 그은 선은 화백이 생전에 존경한 렘브란트 판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다.

상업화랑서 첫 개최
  • 대학원 졸업 기념사진으로 추정되는 변월룡.
변월룡(邊月龍, 1916~1990)은 한국전쟁 이후 활동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술에 재능을 보인 그는 1940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예술아카데미(현 레핀^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에 진학, 1947년 작품 ‘조선의 어부들’로 수석 졸업했다.

1951년 동 대학원에서 소련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1953년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 평양미술대학의 학장 및 고문으로 당대 주요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사실주의 미술의 탄탄한 기초를 전수했다. 이듬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1990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동포 3세인 변월룡은 한국인으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평생 한국식 이름을 고수했고 작품에 한글 서명과 글귀를 적어 넣어 자긍심을 드러냈다. 사후 비석에도 한글이름이 새겨졌다.

한편 변월룡전(展)을 상업화랑에서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시장엔 관람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유화로 그린 유일한 자화상이 걸려 있는 본관을 비롯하여 초상화와 데생, 판화를 만나볼 수 있는 신관 등 회화, 판화, 데생 총189점을 작품과 인생의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변월룡은 북한에서는 귀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배척당했고 남한에는 그의 존재에 대한 충분한 조명과 연구가 미미하다. 그가 러시아에서 서양화 기초와 표현에 있어 뛰어난 역량을 지닌 화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전시는 전후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확장 계기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작품·인물사진 제공=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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