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展$ 5월 18일~9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그렇죠. 그것을 서양말로는 ‘중성적’이라고 하는데 ‘무명성(無名性)’이라는 거죠. 저는 중성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 내지 않고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색이라는 뜻이죠.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컸거든요. 시골에서 어머니가 밥을 지을 때 부엌에서 나무를 때니까 그 연기가 천장, 서까래, 벽이건 다 수십 년 동안 불을 때니까 다 까매요. 그런데 그것은 검은 게 아니고 거무스름한 거죠. 가장 자연의 색이죠.”<스카이티브이, 아틀리에 STORY 단색화 1회, 박서보 화백 말(言) 중에서>
(왼쪽부터)묘법(描法)No.090206,2009,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95×130㎝, (중간)No.080618, 2008 (오른쪽)No.071021, 2007
1970년대 이후 단색화 기수로 독보적 화업을 일구어 오고 있는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展)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70여 년 화업세계가 갖는 정신성의 깊이 때문일까.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음에도 전시장은 평온과 묘한 긴장의 고요가 맴돌았다. 전시는 1950년대 원형질에서 2000년대 후기묘법 그리고 신작에 이르기까지 회화 및 아카이브를 다섯 시기로 조망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윤범모 관장은 “이번 대규모회고전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원로화가 박서보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원형질(原形質) 시기=57년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 ‘회화 No.1’은 대량학살과 집단폭력으로 인한 희생, 부조리 등 불안과 고독을 분출한, 기존 가치관을 파괴하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전질=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전통색감을 사용한 ‘유전질’연작, 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얻은 ‘허상’연작을 소개한다.

▲초기 묘법(描法)=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한 연필묘법은 캔버스에 유백색의 밑칠을 하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그어가는 작업이다. 독자적 언어를 찾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은 다양한 모색으로 이어졌다.

▲중기 묘법=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한다. 한지를 발라 채 마르기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붙이고 등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가 강조된 작업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로운 방향성이 두드러져 ‘지그재그 묘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수한 필선에서 다시 회화성을 회복하고자 한지 위에 쑥과 담배를 우려내는 등 자연의 색을 최대한 담아내기도 했고 원색밑칠을 하고 그 위에 검정색이 덧입혀져 바탕색이 우러나도록 하였다.

▲후기 묘법=90년대 중반, 한지를 손가락으로 직접 긁고 문지르는 대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밀어냄으로써 길고 도드라진 선과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낸다. 작업방식을 변화시키면서 흑백의 화면으로 되돌아갔던 화백은 2000년대 초반 단풍절정기의 풍경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연이 그러하듯, 예술이 흡인지처럼 인간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점차 중첩된 색 면의 오묘함을 내포하며 더욱 다채로워진다.

원로작가 박서보
박서보(朴栖甫, 1931~) 작가는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을 역임했다. 도쿄 도키와 화랑(1970), 명동화랑(73), 통인화랑(76), 국제갤러리(2010~2011), 도쿄 갤러리(2016)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 한국 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68),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도쿄센트럴미술관, 77), 현대미술7인:권영우, 김기린, 김창렬, 박서보, 백남준, 이우환, 정상화(갤러리현대, 1990)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뉴욕구겐하임미술관, 도쿄현대미술관 등 다수에 작품소장 되어 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 @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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