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허진, ‘기억의 다중적 해석’초대전, 6월 12일~6월 30일, 통인화랑

“경에 말씀하시기를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가장 깊고 그 이치가 심히 멀도다’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개벽의 운이요 개벽의 이치이기 때문이니라. 새 한 울,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니라.”<일하는 한울님-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윤석산 지음, 모시는 사람들 刊>

유목동물+인간-문명-동학농민혁명이야기,146×112㎝,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2016(each)

은은한 조명의 전시장엔 선율이 흐르듯 장엄한 울림들이 가슴을 적신다. 민화산수를 배경으로 동학(東學)관련 행서체는 그 시대적 분위기와 정신성을 접속해내고 시대적 고뇌와 현실의 부조리를 담은 슬픔을 보여주는 최시형(崔時亨,1827~1898)이 수감되어 있는 모습의 눈빛은 무척 인상적이다. 대동(大同)을 지향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담은 동학이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휴머니즘은 해월 전신상의 내면 묘사와 민중이 그려낸 민화의 재해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작업바탕은 물성을 포용하는 한지다. 그 종이 위, 수묵채색과 점묘를 통한 융합의 기운생동표출은 웅숭깊은 시간의 집적으로 배어나온다. 화면이 암시하듯 자연생태계 그대로의 유목동물과 동학이미지를 병치(倂置)시킴으로써 환원과 기억의 동시성(同時性)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당연히 전시명제 ‘다중적 해석’과도 연동된다. 먹과 아크릴물감을 스스럼없이 껴안은 한지의 열린 자유성의 융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순환과 궁극의 삶에 대한 존재의 물음이 관통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동학농민혁명을 봉기하게 한 통사(痛史)적 시각과 환경적 요인을 아울리는 역사인식을 재해석하여 화면에 조형적으로 복기하고자 했다. 특히 현실에 대한 나약함을 감추고 싶고 7080세대가 이 연작을 통해 시대적 모순을 내재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것에 일말의 보탬을 기대한다. 나아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긍정적 미래의식을 새롭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허진 작가

5대 운림산방의 맥

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말기 추사 김정희 수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장손이다. 200년간 5대에 걸쳐 호남 남종화의 원류, 운림산방의 맥을 잇고 있다.

특히나 1975년 남농 허건이 서울에서 첫 전시를 한 장소가 바로 통인화랑이다. 그렇기에 한국화가 허진 서른 번째 ‘기억의 다중적 해석’초대개인전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0호에서 100호 대작에 이르기까지 총15점으로 6월30일까지 전시 중인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통인화랑(5F)엔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지난해 발간되어 주목받고 있는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최효찬 글, 허진 그림, 멘토프레스 刊)과 동명의 연작으로 수록된 시리즈를 비롯하여 그동안 ‘묵시’, ‘다중인간’, ‘현대인 이야기’, ‘익명인간’, ‘유목동물’, ‘이종융합동물’연작 등이 보여주듯 조형적 변화탐구에 천착하고 있다.

한편 허진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화가는 형극의 길을 밟고자 하는 구도자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존재이다. 또한 청년작가들에게 하고픈 고언은, 예술이라는 긴 호흡으로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한다. 단순간적 승부를 볼 수 없기에 마라톤을 하는 심정의 자세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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