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가 최명영 ‘CONDITIONAL PLAN’개인전$ 6월 21일~7월 28일, 더 페이지갤러리

“여기 있는 나도 나요 그림 속의 나도 나다 여기 있는 나도 좋고 그림 속의 나도 좋다. 이 나와 저 나 사이 진정한 나는 없네.”<추사 김정희-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山嵩海深) 中 自題小照, 유홍준 지음, 창비 刊>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미술가 최명영. 권동철

둥근 투명유리를 통과한 빛이 지하2층 전시장까지 투영되어 열린 공간의 멋이 배어나왔다. 맑고 잔잔한 느낌은 어떤 리듬의 흐름으로 작품과 교감하고 있었다. 물질성이 정신성으로 환원되는, 평면으로서의 존재방식을 향한 회화적 리얼리티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번전시는 한국단색조회화거장 최명영 화백의 1970년대 초·중반 ‘등식 Signs of Equality’시리즈, 1990~2000년대 ‘평면조건 Conditional Plan’완숙기와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가 일생을 투영한 미적논리의 진화여정을 한 장소에서 조망할 수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기획이다.

(아래)Conditional Planes, 181.8×227.3㎝ Acrylic on canvas, 1996 (위)130×170㎝, 2018

70년대 중반 ‘평면조건’은 색 면 위 지문흔적을 반복적으로 남긴다. 방법적으로 물감(질료)을 화면에 밀착하거나 한지표면에 먹물을 침투시키고 배면에서 송곳으로 찍거나 스며듦과 후면으로부터의 드러남에 의한 접촉감은 집적(集積)의 평면존재감을 형성한다. 70년대 후반 캔버스 표면에 롤러로 경계 밖으로 밀어낸 작품의 측면도 무척 인상 깊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손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문지르는 소지(바탕)를 드러낸다. 부분의 선택과 또 그것의 반복적 정선(精選)을 통한 체득과 필연의 여정이 날카롭게 어떤 찰나로 스친다. 수직^수평을 반복해 묻어가고 다시 긋는 작가와 화면의 일체화에 도달한 그곳엔 스스로를 거두어들여 마침내 무덤덤한 깨달음과 조우한다. 그곳엔 중성적 백색조도 함께한다. “작업도 짧은 스트로크지만 어느 부분을 선택하고 다시 메꾸고 그런 반복성의 작업이다. 사람들은 수행(修行)적이라고 하는데 육신의 호흡과 반복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통상 ‘반복한다는 것’을 고정 상태로 떠올리지만, 나는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반복이다.”

소우주를 탐색하는 탐험가

최명영(1941~) 작가는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홍익대 미대 3학년 때인 1962년 김택화, 권영우, 이승조, 서승원, 김수익, 최창홍, 이상락, 신기옥 작가와 함께 ‘유전자의 순수성과 삶을 구출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하는 조형언어추구’를 지향한 오리진회화협회 창립멤버다. 또 70년대 중반 단색화 형성에 이르는 주요미술운동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하는 등 당대 한국미술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조형질서를 모색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75~2007)를 역임했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패밀리컬렉션, 도쿄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한편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역 인근, ‘더 페이지갤러리’에서 인터뷰한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나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생로병사를 제외하고는 눈을 뜨자마자 매일 화면 이곳저곳을 유영하고 탐미하는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숨 쉬고 사고하는 모든 것을 캔버스에 모두 쏟아 붓고 싶다. 때문에 나를 소우주를 탐색하는 탐험가와 같다고 여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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