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회고전, 5월 28일~10월 20일 대구미술관... [무속시리즈篇 ①]

여인과 북, 46×69㎝ 종이에 수묵채색, 1980년대

“겸재나 단원이 한국미술의 전부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중국의 일대 유파나 일본의 시조파(四條派) 정도만을 그리는 것만이 우리회화의 지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생광, 1984”<최병식 미술평론 中>

‘그대로’는 박생광 화백의 호(號)이자 독자적인 채색의 ‘그대로’ 화풍을 일컫는다. 지난 5월 28일 오픈하여 10월 20일까지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이번 ‘박생광 회고전’은 1940~80년대 완성기 채색화까지 총 162점의 작품이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미완성 유작 ‘노적도’ 외 ‘토함산해돋이’, ‘청담대사’, ‘무속’시리즈 등 회화 82점과 유물, 단청, 불상, 인도여행 등 드로잉 80점 그리고 영상을 선보인다. 대구미술관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박생광이야말로 전통과 모더니즘이라는 건널 수 없는 간극에 다리를 놓은 불세출의 작가였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전통문화인 유^불^선 철학과 샤머니즘을 작가의 혼에 담아내 예술이라는 훌륭한 외피로 제련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길 바란다”라고 의미 부여했다.

무속(Shamanism), 45.2×33㎝ ink & color on paper, 1980s

화가 박생광(1904~1985)은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농업학교를 다니다 그림실력을 눈여겨본 일본인 선생의 권유로 열일곱에 유학,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해방되던 해, 마흔두 살의 박생광은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한국화단이 본능적으로 일본화풍을 거부하던 분위기 영향을 받은 듯 1967년 상경하기 전까지 진주에서 중앙화단과는 거리를 두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76년에 시작된 중앙일보대상전에서는 박생광을 특별히 평가하며 첫 회부터 초대작가로 참가하게 했다. 그는 81년까지 그 전람회에 칠순중반의 원로작가로서 불교와 무속 및 민속적 이미지 중심의 한국적 주제에 집중한 완전한 독자성의 채색화 대작을 거듭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이 몇 년 남지 않았음을 느꼈던가, 체내의 예술의지를 다 쏟아내려고 한 듯이 엄청난 대작과 역작을 최대한으로 연작하고 나서 1984년에 서울 문예진흥원미술회관에서 생애 마지막이 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그에 대해 경탄과 찬사가 잇따랐다. 그 전시는 마침내 박생광을 분명한 거장 예술가로 확인시킨 것이었다.”<청여산고(靑餘散稿)①, 이구열(李龜烈)著, 에이엠아트刊>

무속성에서 민족성 찾기

“샤머니즘의 색채, 이미지, 무당, 불교의 탱화, 절간의 단청, 이 모든 것이 서민의 생활과 직결되어지는 그야말로 ‘그대로’ 나의 종교인 것 같아.”(박생광, 1984<최병식 미술평론>) 박생광 작가는 기층민의 삶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무속신앙에 집중하여 굿, 무당, 부적 등의 요소를 화면에 담았다. 이 시리즈를 통해 ‘그랑팔레 르 살롱 85’에 초대되는 등 국제적 조명을 받았다. 이번전시 4섹션 ‘무속성에서 민족성 찾기’는 80년대 대표작업인 ‘무속’시리즈 13점을 소개하고 있다. “조형 형상들을 강렬하게 부각시킨 선명한 붉은 선을 비롯하여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원색조의 모든 채색은 한국의 전형적 토속미 내지 무속미에 직결되는 오방색, 곧 청, 백, 적, 흑 및 황색을 기조적으로 채택한다. 그러면서 그 표현효과는 놀랍게 현대적이고 신선하게 창작성을 갖는다.”<청여산고①>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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