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벽(雙璧):남농과 월전의 세계’展,10월 2일~12월 8일, 이천시립 월전미술관 [남농 허건①]

조춘고동(早春古洞), 94.5×280.5㎝ 종이에 수묵채색, 1951<남농기념관>

"자연과 똑같이 그리려면 뭣하러 고생하는가? 사진으로 찍어버리지. 솔 하나를 그려도 예술적인 감각과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지.”<남농 허건,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평론 中>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의 본관은 양천(陽川),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했다. 19세기 남종화 대가 허련(許鍊) 손자이며 목포의 최초화가 허형(許瀅)의 아들이다. 허건은 화가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목포상공학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하였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타고난 그림 자질이 발휘되어 23세 때인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수묵담채의 사실적인 풍경화로 입선, 이후 연달아 입선과 특선에 오르면서 전통화단에 진출하였다. 1940년에 제작된 ‘금강산 보덕굴(普德窟)’, ‘산촌(山村)’은 광복 전의 대표작이다. 그 후에는 경쾌한 붓놀림과 담채 및 농채기법으로 전통적 산수화의 맛과 현실적 시각을 조화시키는 수법으로 시골 풍정을 주제 삼아 무한한 향토애가 담긴 계절적 산수풍경화를 연작했다.

(왼쪽)남농 허건<이천시립월전미술관>, (오른쪽)홍엽촌전안일행(紅葉村前雁一行), 108 ×55.5㎝, 1951<남농기념관>

“남농이 1951년에 그린 ‘조춘고동’은 과도기적인 양상으로 긴 화면의 왼편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공간은 나무가 잔뜩 뒤엉킨 바위산으로 채우고 나머지 오른편에는 밭이 펼쳐지고 멀리 산이 보인다. 야산과 점경인물로 구체적인 현실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이전 사생적 산수화의 여운이다. 그리고 초록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산목련꽃 같은 데서는 점묘법의 흔적도 남아 있다. 하지만 바위와 나무를 굵은 필선으로 윤곽선을 강조해서 그리는 방식은 전통 남종화에서 자주 나타나던 것이다.”<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

허건 화백은 1953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참가하여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고 1957년 김기창(金基昶), 이유태(李惟台), 김영기(金永基), 김정현(金正炫), 박내현(朴崍賢), 천경자(千鏡子) 등과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가하였다. 1979년 목포 성옥문화상(聲玉文化賞)을 받았으며 8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은관)과 목포시민상을 수상하였고 그해 진도에 운림산방을 복원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고 85년 목포시 소재 남농기념관을 개관하였다. 1987년 80세로 영면(永眠)에 들었다.

한국화가 허건은 조선후기-근대-현대에 이르는 남화 역사의 산 증인으로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채 작품 활동을 하여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고봉으로 일컬어진다. ‘허건 작품세계’도 이 같은 회화사적 배경에서 접근,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쌍벽(雙璧)’전(展)의 두 대가, 남농 허건과 월전 장우성의 지도를 공히 받은 제자들도 한국화 맥(脈)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청당(靑堂) 김명제(金明濟,1922~92),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1928~2017), 도촌(稻村) 신영복(辛永卜,1933~2013)이 그들이다. 이들은 남농으로부터 산수화, 월전으로부터 화조화를 지도받았으며 실제로 두 사람의 화풍을 토대로 작품세계를 형성했다.”<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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