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벽:남농과 월전의 세계’展... 10월 2일~12월 8일,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월전 장우성①篇]

(왼쪽)여인, 75×41㎝ 비단에 수묵채색, 1936<이천시립월전미술관> (오른쪽)승무도(僧舞圖), 198×161㎝ 비단에 수묵채색, 1937<국립현대미술관>

“앞 반려들과 이어져 옛 산천을 지나고 또 지난다. 북방 변경의 요새를 한 줄로 가로질러 만리 밖 푸른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依依前伴侶 歷歷舊山川 一行橫紫塞 萬里入靑雲”<작품 ‘기러기’제화시, 월전도인(月田道人) ‘쌍벽(雙璧)’도록 中>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으나 그림에 소질이 있고 미를 느껴 열아홉 나이에 서울로 상경, 당시 최고의 인물화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월전은 중국 근대미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는데 한정희 홍익대 예술학과 초빙교수는 ‘한국적 문인화의 구현: 월전 장우성의 작품세계’에서 화백이 언급한 1920년대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우리가 가장 주목했던 화가는 중국의 오창석(吳昌碩)과 제백석(齊白石) 그리고 일본의 다케우치 세이호(竹內栖鳳)와 요코야마 다이칸 네 사람이었다.” 월전은 1950~60년대부터 화조화를 중심으로 문인화의 요소들을 접목시켰다. 특히 60년대부터 강한 시사성을 내포한 화조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70년대 말 이후 이를 더욱 본격화해간다. 1970년대 후반 작품 ‘기러기’를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왼쪽)기러기, 66×84㎝ 종이에 수묵채색, 연도미상 (오른쪽)월전 장우성<이천시립월전미술관>

“기러기의 해부학적인 특징이 잘 반영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단축법을 적용함으로써 이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군백색(群白色)의 점을 바깥쪽에 찍고 가운데를 여백으로 남겨 그려낸 달도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월전은 화면 우측에 북송대(北宋代)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귀안(歸雁)을 차운(次韻)한 시를 풍부한 변화미를 갖춘 서체로 적었다.” 월전은 해방이듬해인 1946년 서울대 미술학부교수가 된다. 이와 관련, 한정희 초빙교수는 “서울미대 출신의 화가들이 수묵담채의 문인화풍을 견지하며 현대한국화단의 한 축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일제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조국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현대적 문인화풍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라고 했다.

이후 1968년에는 홍익대 교수로 후진을 양성, 1970년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한편 장준구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남농과 월전의 작품세계가 다르면서도 상통하였던 이유를 ‘같지만 다른 남농(南農)과 월전(月田)의 세계’에서 이렇게 썼다. “해방과 함께 그간 불가피하게 서구적, 일본적 미감에 지나치게 치우쳤던 상황을 반성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 남농과 월전도 전통에서, 그 중에서도 유장한 뿌리를 지니고 있는 동아시아의 문인화에서 그 해법을 찾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단순히 전통으로의 회귀를 추구하였던 것은 아니다. 남농과 월전은 불균일한 서예적인 선, 자연스러운 먹의 번짐과 퍼짐, 넓은 여백의 효과, 시^서^화의 융합 등 동아시아 문인화의 핵심적 요소들을 중시했지만 반드시 사실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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