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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동국 수석큐레이터②‥“書로 현대미술 본질을 말하다”

괴(怪)의 미학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 3월15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 전시장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수석큐레이터. 그는 “괴(怪)의 미학으로 귀결, 결정되는 것이 추사체이다. 추사체 구조와 아름다움에서 동시대 서구의 큐비즘과 입체파는 물론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20세기 미술의 전조를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다.<사진:권동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학예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LEE DONG KOOK-Seoul Art Center Calligraphy Arts Department Chief Curator)를 만났다.

<[인터뷰]이동국 수석큐레이터①‥“추사는 세계이고 현대다”>에 이어서 추사의 조형세계가 오늘날 한국현대미술과 어떤 접점의 맥(脈)이 닿아있는지를 중심에 놓고 인터뷰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추사체의 현대성에 대한 배경을 설명한다면…

1840년, 55세의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영국에게 도륙당할 때다. 1856년까지 9년여의 제주 유배와 해배, 북청유배와 해배를 거치면서 추사는 학예일치는 물론 사상과 유희 결정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낸다.

괴(怪)는 서구현대미학의 대명사인 추(醜)와 궤를 같이 한다. 추사는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工拙又不計也.)”라고 서사(書史)를 뒤집는 폭탄선언을 하고 있다. 일종의 ‘서(書)의 해방(解放)’을 선언한 셈이다. 이러한 추사체의 창출은 동아시아 역사전통 예술의 종결이자 현대예술의 문을 여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 김정희=계산무진(谿山無盡), 62×125㎝ 족자,19세기<간송미술관 소장/이미지제공:예술의 전당>
-추사의 글씨에서 현대성의 대표적 사례를 소개해 주십시오.

<계산무진>에서 추사는 문자의 언어구조도 추상회화/그림언어, 즉 예술언어로 뒤바꾸고 만다. 먼저 ‘계(谿)’를 보자. 필획의 운용 자체를 360동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뿌린다. ‘산(山)’은 땅이 아니라 허공에 다 붕 띄워 버린다.

한없이 그야말로 무진(無盡)의 먼 산을 그려낸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반전이 일어난다. 가로 방향으로 가야할 ‘무진(無盡)’의 필순(筆順)을 세로로 꺾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두 글자를 한 글자로 수십 층 빌딩을 짓듯 무수한 획을 반복하여 구축, 쌓아버린다.

이것은 언어의 본질인 선형성(線形性)과 시간성(時間性)을 일시에 무시, 파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 전통의 전복이자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언어가 예술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글이 그림으로 환원되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결국 유희의 궁극으로서 이런 파천황적(破天荒的)공간경영은 동아시아 세계 서(書)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공간에 대한 동아시아 전통의 허허실실(虛虛實實) 소소밀밀(疏疏密密)관계를 추사가 현대적으로 자각해낸 결과다.

  • (왼쪽)최규명, 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 125.0×63.0㎝ 종이에 먹 (오른쪽)최규명, 山(산) 125.0×63.0㎝ 종이에 먹<우석재단 소장/이미지제공:예술의 전당>
-전통과 현대의 단절이라는 기존 시각의 수정을 주장하고 있다.

법(法)으로서 법을 뛰어넘는,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를 방불케 하는 필획(筆劃)과 허실(虛實)공간의 현대적 재해석은 21세기 동서(東西)가 하나 되는 인공지능과 기계시대 왜 서(書)를 버리면 안 되는가를 웅변해주는 작품 사례로 얘기하겠다.

전예와 해행초를 마구 뒤섞어 구사한,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서(書)의 질서를 창출해내고 있는 김충현의 <歸舟(귀주)〉 또한 추사의 비첩혼융(碑帖混融)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경지다.

아웃사이더로서 전통서화는 물론 현대미술에서 조차 아카데미즘 시각으로 100년 동안 아예 배제해온 김광업과 최규명과 같은 작가의 서업(書業)의 현대성은 우리가 더 이상 묻어 두면 안 된다.

최규명의 적멸(寂滅)의 <山(산)> 천변만화(千變萬化)의 <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 김광업의 선정(禪定)의 <入不二門(입불이문)>의 공간경영은 파천황적(破天荒的)사유세계가 아니면 쉽게 나올 수 없다. 두 작가 모두 갑골문 종정문은 물론 한예와 행초서, 그리고 칼을 붓 쓰듯 하는 전각세계가 혼융되어 마구 주저 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 된다.

이렇게 깊은 역사심연을 직통으로 천착해 낸 필획과 문자구조는 서숙과 공모전이라는 그라운드에서는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세계다. 공교롭게도 최규명, 김광업 두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도 유가와 불가는 물론 노장의 세계까지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동과 서의 괴(怪)와 추(醜)의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다.

우리는 몇 가지 사례만 놓고 보더라도 필획의 해체와 재구성, 허허실실(虛虛實實)한 공간경영은 물론 그 정신성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현대성이 추사체(秋史體)가 과거지사가 아니라 우리서화미술의 오늘이자 내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전시전경<사진:권동철>
-추사체가 오늘날 한국미술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는 그간 20세기 한국의 문예를 식민지, 서구화를 키워드로 전통과 현대의 단절이라는 입장에서만 본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것에 대한 시각의 수정을 요한다. 요컨대 추사의 학예성취는 동아시아와 동시대 서구를 아우르는 공유자산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詩書畵)를 일체(一體)로 융복합(融復合)으로 하나 되게 ‘유희삼매’로 살아간 추사를 문자영상(文字映像), 인공지능(AI)시대 오늘날 오히려 우리문예의 멘토로 삼아야 함은 당연하다. 추사의 정신성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현대성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우리서화미술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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