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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場]‘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展,이응노,권영우,박철,전광영,자오우키,장뒤비페,장포트리에,한기주

4월7일 오픈~6월28일까지, 한지에 대한 정체성 확인과 새로운 지평의 확장모색
  • 박철, 2005 한지에 천연염색, 187×23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전시전경=권동철>
‘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전시는 대전이응노미술관에서 지난 4월7일 오픈하여 6월28일까지 3개월에 걸친 긴 노정의 막바지를 지나오고 있는 전시장을 찾았다. 이응노,권영우,박철,전광영,자오우키,장뒤비페,장포트리에,한기주 작가 등 8인의 한지작가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국미술의 한지에 대한 정체성 확인과 새로운 지평의 확장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국내 한지화가 작품위주로 구성했다.<편집자 주>

「80년대 중반에 안동대학에 출강했어요. 안동댐 말고 임하댐이라는 것이 있어서 댐 건설 때문에 마을 전부 옮겨야 돼. 전부 수몰이 되니까. 거길 매일 출근하면서, 1박 2일로 가면서, 거길 맨날 갔어요. 창호 또는 와당을 그냥 가져오는 거지. 옛날 거…. 이 양반들이 라디오나 티브이는 가져가도 옛날 거는 그냥 두고 가는 거야. 그걸 전부 가져왔어요. 차타고 가져와서 화실에 갖다놓으니까. 한참 됐단 말이예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뭐 어떻게 작업을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해본 거예요.

첫째는 ‘이런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옛날 거에 대한 애착이지. 또 하나는 ‘내가 어떤 작업을 해야 될 건가’하는 그 기초적인 것 콘셉트를 잡는데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된다. 기존에 했던 것을 해서는 의미가 없다.’ 뭐 그런 것들이 아마 우리 선생님들 박서보, 유영국, 하종현, 남관 이런 사람들인데, 그 분들로부터 많이 세뇌가 되었던 거 같아.

그래서 ‘이 작업을 해야겠다’라고 하면서, 사라지고 튀어나오고…. 혼합을 해서 한지로 떠냈죠. 떠낸다는 것이 캐스팅 작업인데, 탁본은 평면적인 것이지만 이게 탁본하고 비슷해요. 한지로 가능해서, 그렇게 작업을 했어요.」 <아티스트 토크, 박철 작가(PARK CHUL)=‘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 도록 中, (재)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 刊, 2020>

  • 전광영, 2001 한지와 혼합매체, 229×184㎝<부산시립미술관 소장><전시전경=권동철>
「제가 강원도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당시에 열악한 가운데에서 소위 닥종이가 있습니다. 벽지는 전부 닥종이며, 장판지도 물론 한지고, 어머님이 밭일을 하러 간다던가 할 때, 제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면 천장을 봐도 항상 닥종이인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또한, 큰 집에서 한의원을 하셨기 때문에 늘 한약방에 우리 할아버지와 환자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큰할아버지가 초서(草書)를 약봉지에다 써 주면 환자들은 그걸 다섯 개 여섯 개 꽁꽁 묶어서 들고 갔습니다.

왜 우리는 한지를 저렇게 싸주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서양사람은 박스 문화입니다. 100온스짜리 속에 10온스짜리 박스를 10개를 딱 잘라서 테이프 붙입니다. 아시아의 비슷한 국가도 많지만 특별히 우리나라는 래핑(rapping), 보자기 문화입니다. 저는 외국 사람들이 한지라는 매체를 물으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린 보자기 문화이다. 친정집에서 시집살이 얘기를 하고 돌아가는 딸아이한테 팔이나 콩을 좀 더 들고 나와서 보자기에 넣으면 꽉 차는데도 들어가더라. 근데 모양은 이상하지만, 그 형상을 그대로 유지한다던가…. 외국 사람은 ‘warm heart’라고 ‘따뜻한 마음’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정(情)’이라고 한다.

‘왜 굳이 오래된 종이를 쓰느냐’는 질문에 한지는 소위 붓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여러 가지 용도가 있지만, 우리 수백 년 수천 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우리한지는 묘하게 우리 국민의 얼 같기도 하다고 대답합니다.」 <아티스트 토크, 전광영 작가(CHUN KWANG YOUNG)=‘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 도록 中, (재)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 刊, 2020>

  • 오른쪽 벽 권영우 작품들 중 맨 오른쪽=<무제>, 1997 합판에 부채 콜라주, 한지, 아크릴릭, 223.3×169.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전시전경=권동철>
「1970년대 전반의 작업과 관련해 권영우는 “나의 작품은 거의 백색을 주조로 하고 있다. 사실 하얀 그림이 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작품에서의 백색은 안료에서 오는 느낌과는 아주 다를 뿐 아니라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유채의 백색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름기라고는 없는 아주 소담한 맛, 그것은 어쩌면 동양의 것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우리들 정서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백색을 소박한 자연관이나 정신성에 결부시키는 백색미학의 특성을 용인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권영우(KWON YOUNG WOO)의 종이콜라주 작품이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시작되었고, 단색조화가들이 여전히 앵포르멜 이후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오프 아트나 기하학적 추상을 실험하고 있던 1960년대 중반에 그의 백색 위주의 추상미술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종이콜라주 작품은 단색조회화이념의 선도적 제시라는 의미를 지닌다.」 <1960-70년대 권영우의 종이콜라주 작품과 그 의미 中, 정무정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 도록 中, (재)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 刊, 2020>

  • 정면 가로작품=한기주 <작업87-예감> 1987 합판에 종이, 94×27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벽 맨 오른쪽 작품=이응노 <구성>, 1970 종이 릴리프, 131×97㎝<전시전경=권동철>
「79년도에 제가 <청년작가회>에 가담해서 활동을 하는데, 경기도 광릉이라는 데를 갔다 왔어요. 술도 먹고 하다가 배추를 뽑는데, 늦가을 인데 배추 뿌리가 땅을 엉켜 잡고 안 빠지려고 하네. 그 어떤 생명감….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런데 민감하지 않습니까? ‘묘하다’이런 생각을 하고 돌아왔고, 왜 계속 머릿속에는 그 미니멀 아트에 대한 반발심. 그건 다 지워가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에 반발심도 있고 보통 뭘 내가 해야 화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늘 하고 있는 중에 종이를 가지고 작업을 79년도부터 아주 소극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뭐 나중에 한지라는 문제와 부딪히기 이전의 문제죠. 그 작업이 만족스러울 만큼 활발하게 전개도 못 했습니다. 또 목욕탕에 가면요. 나무를 패 가지고 불을 때요. 78, 79년 이때는 그런 목욕탕이 많았어요. 나도 가서 돈을 바꾸러 나무를 패는데 나무가 쪼개지는 이 장면이 굉장히 강렬해요. 서로 도끼를 쳤는데도 안 빠개지려고 합니다.

근데 그 광릉에서 겪은 느낌과 같이 굉장히 저에게는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무를갖다 놓은 작품으로 전람회도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놓고 보니까 이게 물질이 오는 강한 것 때문에 굉장히 생경해요. 그래서 이걸 한번 또 내면 어떨까 하는 스쳐가는 마음이죠. 그래서 종이하고 신문지 같은 거를 이겨서 이걸 떠내 봤는데 나뭇결이라든지 이런 게 생생히 안 나와요. 그래서 또 누군가가 ‘그걸 한지로 한번 해보면 어때?’이러더라고요.」 <아티스트 토크, 한기주 작가(HAN KIJOO)=‘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 도록 中, (재)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 刊, 2020>

  • 왼쪽 노란 벽 작품=장 뒤 비페, 오른쪽 이응노 <구성>작품들. <가나문화재단 소장><전시전경=권동철>
「1962년 5월 18일 파케티 화랑에서의 천람회 초대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꼴라주라기보다 종이로 그린 그림이다”라고 하는 말이 귀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꼴라주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미술용어라면 종이로 그린 그림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가 생각했다.

동양인에게 있어 공(空)과 충(充)의 일치하는 사상이 있다면 고암(LEE UNGNO)에게는 여백이라는 숨 쉬는 생명이 있다. 화면에 빈틈없이 밀착되어 있는 기존의 꼴라주와는 달리 무수히 겹치는 그 사이사이에서 숨 쉬는 여백이 있고 한 붓 두 붓 중봉을 움직여 가는 것 같은 행동에서 이루어지는 고암의 꼴라주를 보고 그때 사람들이 종이로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박인경, ‘그때를 회상하며’, 《60년대 이응노 꼴라주전》, 2001, p 5=‘이응노, 종이로 그린 그림’, 도록 中, (재)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응노미술관 刊,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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