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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⑦]시암 배길기‥서예의 본질 추구했던 전통주의자

전서의 대가, 서예는 전통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지론강조
  • 시암 배길기<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시암 배길기(是菴 裵吉基,1917-1999)는 경남 김해에서 부친 배익태와 모친 홍풍식의 3남으로 태어났다. 시암은 어렸을 적부터 가학으로 서예를 배우다 중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과를 졸업하였다.

대구의 서예가 박기돈(朴基敦,1873-1947)으로부터 시암이란 호를 받았고, 오세창(吳世昌,1864-1953)에게는 전서, 안종원(安鍾元,1874-1951)에게는 예서를 전수받았다. 그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미술과 교수 등을 역임하며 교육계에 몸담았고 건국초기 문교부 예술과장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예술 행정의 토대를 쌓았다. 1957년 최연소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 되었으며, 1960년부터 국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지냈다.

“그는 항상 후학들에게 ‘서예는 전통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통주의에 입각한 서예관을 나타내었다. 또한 서예를 조형예술 즉 시각예술이면서 추상예술인 서예는 문자를 떠날 수 없고, 회화에 접근한 ‘전위서도(前衛書道)’는 서예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그는 서예의 본질을 추구했던 전통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곽노봉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아정(雅正)한 풍격을 지키다’ 中>

  • 유우석-누실명, 종이에 먹 140×30.4㎝(each),1978<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中和의 미

고대 전통서예에서는 중화(中和)의 미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중화는 가운데에 적중하는 것으로 대립적인 조화와 통일을 강조한다. 정감을 펴낼 때에는 합리적인 규범을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고, 양강(陽剛)과 음유(陰柔)의 미를 서로 보완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용필은 굽은 것과 곧은 것, 장봉과 노봉, 방필과 원필, 끊어진 것과 연결된 것, 더딘 것과 빠른 것, 질(疾)과 삽(澁), 평평한 것과 기운 것 등의 대립적인 통일을 요구한다.

“그는 현란한 기교와 강한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서예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조화와 통일을 통해 중화미의 이상을 실천했다. 특히 서예의 원류인 전서를 통해 중화미를 실천함으로써 한국서단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공로가 있다.”<곽노봉 교수>

작품 <유우석(劉禹錫) 누실명(陋室銘)>은 1978년 당나라 유우석(772-842)의 ‘누실명’ 첫 구절에 나오는 ‘山不在高有仙則名 水不在深有龍則靈’을 전서 대련으로 쓴 작품이다. 자형은 ‘설문해자’의 소전(小篆)을 본받았고, 중복되는 ‘不·在·有·則’자들의 변화가 돋보인다. 소전의 용필 특징인 둥근 필획의 원필(圓筆)과 둥글게 전환하는 원전(圓轉), 결구에서 세로로 긴 장방형(長方形)과 좌우의 대칭을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안정된 장법을 잘 나타내었다.

또 <도잠(陶潛)-시작진군참군경곡아작(始作鎭軍參軍經曲阿作)>은 소전(小篆) 용필의 특징인 둥근 필획의 원필(圓筆)과 둥글게 전환하는 원전(圓轉)이 잘 나타나 있고, 결구는 가로로 가지런하지 않으면서 들쭉날쭉한 참치(參差)의 변화를 나타내었다.

그는 1952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부산과 일본에서 5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2000년에 출판한 ‘시암배길기서집(是菴裵吉基書集)’이 있다.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개인전 이전해인 1964년(48세)에서 마지막 초대전을 가진 1975년(59세)까지의 작품을 보면, 전서(41)·예서(18)·행초서(15)·해서(1) 등 75작품이 있다. 여기에서도 전서가 압도적이지만 예서와 행초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전성기에는 각 서체를 골고루 연마했고, 이후 출품작은 주로 전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배길기하면 전서를 떠올리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분석이라 하겠다.”<곽노봉 교수>

  • 도잠-시작진군참군경곡아작, 27.5×196.5㎝ 종이에 먹<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시암의 작품은 현대 서예가 요구하는 강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글씨는 아니지만 그의 고결한 인품처럼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절제된 세련미가 있다. 지나치게 조형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오늘날, ‘예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Curator Bae Wonjung,裵原正,미술사학 박사)>

한편 시암 배길기는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덕수궁관에서 4~7월 전시 중인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Writing)’의 두 번째 주제 ‘글씨가 그 사람이다(書如其人)-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 12인 중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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