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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⑧]갈물 이철경‥청청히 흐르는 한글 궁체의 정수

여백과 공간의 구조적 원리,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 구현
  • 갈물 이철경<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갈물 이철경(李喆卿,1914-1989)의 부친은 한글학자이자 교육학자로 한글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이만규(1882-1978)이다. 남궁억(1863-1939)이 편찬한 ‘신편언문체법’이라는 한글서예교본을 접하면서 성장한 그는 조선 후기 궁중여인들에 의해 정착된 궁체를 정리하여 품위 있는 20세기 한글서체의 전형을 제시한 서예가로 평가된다.

이철경은 배화여고와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했다. 전주 기전여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교육자, 음악가, 여성운동가 등으로 활동을 하면서도 한글서예 연마와 서예 교육에 열정을 기울였다. 갈물의 쌍둥이 언니 봄뫼 이각경은 북한에서, 갈물과 동생 꽃뜰 이미경은 남한에서 한글서예로 일가를 이루었다.

이철경은 1940년대에는 ‘초등글씨교본’, ‘중등글씨교본’, ‘한글글씨체’(1946) 등을 저술했다. 1950년대 이후 ‘중학교 글씨교본’(1958), ‘중학교 글씨본’(1966) 등을 간행하여 초중등 학생들의 한글서예교육에 크게 기여했다. ‘한글서예’(1980), ‘한글’(1981) 등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서예교본을 저술하여 한글서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 한용운의 님의 침묵, 119×49㎝ 종이에 먹, 1983<갈물한글서회 소장>
◇궁체의 고전, 갈물체

“이철경이 일생동안 각고의 연찬 끝에 이루어 낸 ‘갈물체’는 ‘궁체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저술한 서예 교본 혹은 직접 지도받은 학생들에 의해 한글서예의 수준이 크게 올랐다. 그 밖에도 이철경은 한문 족자나 종액의 큰 글씨를 참고하여 잔글씨로만 남아 있던 궁체의 자형을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게 수정 확대하여 큰 글씨체를 개발했으며, ‘신사임당동상 명문’, ‘유관순열사 기념비’, ‘고당 조만식선생 어록비’ 등 수많은 비문을 남겨 20세기 한글궁체의 전형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박정숙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한글 궁체(宮體)를 수호하다’ 中>

작품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받침 ‘ㄹ’과 ‘ㅁ’을 정자로 쓴 반흘림체 작품이다. 강한 필력과 순수한 정연미로 궁체 흘림의 미적 가치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빳빳하여 강직한 지조와 숙연함이 느껴지며, 갈물 살아생전의 야무지고 단정한 모습을 보는듯하다. 갈물은 정자체를 여백과 공간을 구조적 원리에서 처리하여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었다. 그리고 1980년 이후에는 정자를 바탕으로 한 궁체 흘림의 전형을 모색하게 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흘림이 잘 구현된 대표적 작품이다. 갈물의 말처럼 청청히 흐르는 창해(滄海)의 위엄이 느껴진다.

“갈물은 60여년의 서예 활동을 펼치면서도 국전 같은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심사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업이 아닌 여기(餘技)로 일관했다. 대신 여성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한 면모를 보였는데, 1960년에 금란여중고 교감으로 취임하여 79년 교장으로 퇴임하였고, 1969년에는 제1회 신사임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8년 창설한 갈물한글서회는 현재까지도 7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한글 궁체의 정수를 계승하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Curator Bae Wonjung,裵原正,미술사학 박사)>

한편 갈물 이철경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덕수궁관에서 4~7월 전시 중인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Writing)’의 두 번째 주제 ‘글씨가 그 사람이다(書如其人)-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 12인 중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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