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남단, 성황신을 모신 신비로운 숲이 있다. 원주 신림면 성남2리 마을숲은 성황림으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100여년 세월 안녕을 기원하며 숲을 지키고 섬겨 왔다. 걸어 잠궜던 비밀의 생태 숲이 슬며시 빗장을 풀고 있다.
성황림 당집.
원주 신림면의 ‘신림(神林)’에는 신령스러운 숲의 의미가 담겨 있다. 숲에 기댄 마을 이름도 성황림 마을이다. 치악산 상원사로 향하는 길목, 성황림 마을은 짐작했던 몽환적 분위기는 아니다. 계곡 옆 옥수수 밭이 펼쳐지고, 동네 입구에 찻집이 들어선 친근한 풍경이다.

치악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던 옛날 옛적, 치악산의 영물은 마을의 개, 돼지를 물어가며 혼을 빼 놓았다. 화전민이 주를 이뤘던 마을 사람들은 숲 당산나무에 제사를 올려 안녕을 빌었고, 숲은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채 마을의 버팀목이 됐다.

성황림 신목.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생태 숲

마을 외곽 길은 녹음 우거진 숲으로 연결된다. 성황림 입구에는 금줄이 걸려 있고 출입제한 간판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 매년 봄(4월), 가을(9월) 당제를 지낼 때만 개방되는 숲은 오랜세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정성을 다해 지켜온 숲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숲에는 졸참나무, 느릅나무, 복자기나무 등 50여종의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릴 듯 덮고 있다. 참꽃마리, 광대수염 등 90여종의 풀과 나무가 자연 그대로 서식중인 성황림은 천연기념물 93호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숲은 한때 지난한 과거를 겪었다. 숲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뚫렸고, 나들이객의 유원지로 변모하기도 했다. 훼손을 막기 위해 80년대 후반 보호철책을 두른 뒤, 수십년을 웅크렸던 숲은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당집, 신목(神木) 주변으로는 다시 금줄이 쳐졌다.

고판화 박물관 전시작품.
숲 명상, 인절미 만들기 체험

성황림에 들어서면 금줄 너머 당집이 있고 당집 옆으로는 숲의 신목(神木)인 전나무가 30m 높이로 뻗어 있다. 전나무는 어른 서너명이 손을 잡고 에워싸야 닿을 정도의 둘레다. 신목 옆으로는 잡귀를 쫓는다는 가시 돋힌 음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다.

성황림은 올해 생태 테마 관광지로 선정된 뒤 탐방 프로그램과 함께 일반에 다가서는 중이다. 마을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자물쇠를 열고 숲에 들어설 수 있다. 마을 이장님이 숲 해설사로 동행하며 숲이 간직한 비밀 얘기 보따리를 풀어준다. 솔숲 속에서 명상 시간을 갖고, 성황신에게 소원지를 적어 금줄에 거는 시간도 마련된다. 트렉터를 타고 숲을 오가는 길은 쾌청하다. 숲탐방 뒤에는 마을에서 취나물 섞은 인절미를 직접 떡메로 쳐 먹는 체험이 곁들여진다.

신림면에는 성황림 외에 이색 공간들이 들어서 있다. 영월로 이어지는 88번 도로에는 국내 유일의 고판화 박물관이 자리했다. 4000여점의 희귀한 동서양 고판화들이 전시돼 있으며 직접 판화체험도 가능하다. 솔치터널 지나 황둔리 찐빵마을에서는 막걸리를 넣고 반죽해 8시간을 숙성시킨 흑미빵, 쑥빵 등을 맛볼 수 있다.

글 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숲명상 체험.
여행메모

교통=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빠져나온다. 치악산 상원사 성남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성황림 마을이 위치했다. 원주시내에서 23번 버스가 다닌다.

음식=원주 반곡동의 ‘치악산 한우’는 신선한 한우를 현장에서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다. 계륜길의 ‘치악산묵집’은 묵밥과 콩국이 유명하다. 성황림 마을에 사전 단체 신청을 하면 치악산 곤드레 나물밥도 맛볼 수 있다.

기타정보=지정면의 뮤지엄 산은 원주를 상징하는 대표 예술공간으로 거장 안도 타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행구수변공원의 기후변화홍보관은 자연보호를 테마로 4D체험, 도룡뇽 가방 제작 등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한다.

소원지 적어 걸기.



서진 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