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 8월 23일까지 연장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왼쪽)이우환 作=동풍84011003, 227×181㎝ 캔버스에 석채, 1984<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김종영 作=작품58-4, 64×51×24㎝ 철 용접, 1958<김종영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지난 5월 6일 오픈, 8월 23일까지 연장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에도 관람객들이 꾸준하게 방문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하는 본격 서예전이니만큼 2~3층 전관에 서예, 전각, 회화, 조각, 도자, 미디어아트 등 총 300여 작품과 70여 점 자료가 한국현대미술사를 관통해 온 웅혼한 정신사의 위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전시는 총 1~4부로 기획되었다.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동아시아 회화사에서 전통적으로 내재돼 있던 ‘서화동원론((書畵同原論)’은 20세기에 들어와 ‘미술(美術)’이란 개념이 등장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급기야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예는 미술영역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화가와 조각가들은 서예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고 해방이후 미술작품에 서예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다. 글씨와 그림을 한 화면에 병치하고, 서예에서 추상성을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서예요소를 소환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관점에서 서예로부터 영감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현대미술과 서예는 종래의 서화전통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응노, 남관, 김종영, 이우환, 박대성, 오수환, 황창배 등 서예전통을 바탕에 두고 독자적 조형세계를 창출한 작품들을 만나고 현대미술과 서예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김충현 作=이색 서대행(李穡, 犀帶行), 166×30×(12)㎝ 종이에 먹, 1977<일중선생기념사업회 소장>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 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일제강점기 때 출생하여 사회·예술적으로 격동기를 건너온 세대(世代)다. ‘서화’와 ‘미술’이라는 갈림길에서 서예가 새로운 조형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의 정신을 반영한 예술이라는 점을 이들은 잊지 않았다. 그런 만큼 서예의 현대화에 앞장서서 치열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한국적예술혼의 열망에 고뇌했다. 이들의 전시작품 앞에서 감동이전에 시대를 뛰어넘어 예술가의 치열함이 애련하게 밀려왔다면 지나치게 주관적일까. 소전 손재형, 석봉 고봉주, 소암 현중화, 원곡 김기승, 검여 유희강, 강암 송성용, 시암 배길기, 갈물 이철경, 일중 김충현, 철농 이기우, 여초 김응현, 평보 서희환 등 12인의 서예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설렘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3부 다시, 서예: 현대=국전1세대들에게서 교육받았던 2세대들의 작품을 통해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 서예의 창신(創新)과 파격, 한글서예의 예술화 등을 만난다.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서예 문화의 확장과 다양성의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 등 활발한 문자예술디자인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한편 김이순 홍익대학교 교수는 ‘서예는 어떻게 현대미술 속으로 스며들었는가: 한국 현대미술가의 서예 인식’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21세기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예전은, 전통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포스트모던시대의 탈장르적 맥락에서 미래에 대한 모색이라고 하겠다. (중략) 모필의 필획에 중심을 둔 서예와 회화는 새끼줄처럼 꼬여 있었으며 현대에는 그 경계가 확장되었다. 더욱이 서양미술과 직접 대면한 미술가들이 서예를 우리 고유의 전통으로 인식하기 시작함에 따라 현대미술에서 서예와 회화는 분리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