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발로 '갈등의 불씨' 재점화문 "배척·음해" vs 재계 "너무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연초 '지분 매각' 이 부동산 관련 그룹 계열사 상대 소송
사실상 형·동생 상대 형사고발

"등기이사에 이름만 올렸을 뿐 경영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이혼·배후설 등 음해 시달리기도" 그룹 떠나게 된 배경 처음 밝혀

효성가 '형제의 난' 2라운드 막이 올랐다. 진원지는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타깃은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과 효성 부사장이다. 오너가에 대한 검찰수사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악재가 불거지자 효성그룹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고발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조현문 전 부사장 집안과 회사를 등지게 된 배경에 대해 일부 입을 열었다는 점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부친과 형제를 상대로 이처럼 날을 세우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그 내막을 집중 추적해봤다.

조현문 지휘봉 놓으며 '난' 조짐

장남 조현준
효성가 형제의 관계가 처음부터 안 좋았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주력사업을 분담해 경영하며 선의의 경쟁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장이 섬유PG장을, 부사장과 부사장이 중공업PG장과 산업자재PG장을 각각 맡았다.

형제 간 우애에 금이 간 건 지난 2월, 3세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하던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보유 중이던 효성 지분 7% 가량을 장내에 전량 매각했다. 자녀가 소유한 지분도 내다팔았다.

지분을 매각하면서 '집안'에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이 일로 오너가는 경영권 보호차원의 지분 확보에 진땀을 빼야 했다. 실제 조현상 부사장과 조현준 사장은 주식담보대출로 각각 164억원과 124억원을 조달, 효성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당시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회사를 등진 이유에 관심이 집중됐다. 세계적인 법률회사를 만들겠다는 오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룹을 떠나는 변이었다. 그러나 재계에서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버지나 형제 등 가족들과 경영 방식을 두고 벌어진 갈등이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었다. 회사를 떠나면서 남긴 "적절한 시기가 오면 떠난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차남 조현문
이를 두고 재계에선 설왕설래가 오갔다. 하지만 이뿐,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회사와 결별을 선언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불화는 이렇게 잦아드는 것으로 보였다.

검찰 고발로 갈등 불씨 재점화

이런 가운데 최근 갈등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난 10일 그룹 부동산 관련 계열사인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의 최모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는 조현준 사장의 지분이 80%와 조현상 부사장 지분이 10%를 보유하고 있다. 신동진은 조현상 부사장의 지분이 80%, 조현준 사장의 지분이 10%다. 사실상 형과 동생을 상대로 형사고발에 나선 셈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고발장을 통해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가 조현준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에 자금을 대여하고 신주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100억원대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남 조현상
고발장엔 신동진과 부실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수십억원대의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일들에 대해 조현문 전 부사장은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의 지시나 묵인 아래 이뤄진 일로 결국 이들이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효성그룹은 즉시 입장자료를 배포해 조현문 전 부사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효성그룹은 "적법한 경영판단에 따른 정상적인 투자활동"이라며 "퇴직한 뒤 몸담고 있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불순한 의도로 보인다"고 반격했다.

형제 상대로 고발 진행한 이유는?

이번 효성가 '형제의 난' 2라운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는 점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회사의 부정을 시정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이번 고발 이후 홍보대행사를 통해 "그룹 내의 불법행위를 바로 잡고 진실을 밝히려고 해왔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룹을 떠나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효성 전직 관계자는 "여느 재벌가 자제들과 다르게 진보적인 성향의 조현문 전 부사장은 그룹 내부 비리 등을 직면하고 고민이 적지 않았다"며 "갈등이 극에 달한 건 2009년 미국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직언'을 하면서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직언' 이후 조현문 전 부사장은 사실상 경영을 손에서 놓게 됐다. 당시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측근으로부터 업무보고만 받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영에 복귀했지만 앙금은 남았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전언이다.

실제 조현문 전 부사장도 이번 검찰 고발 당시 홍보대행사를 통해 "나는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라 있었을 뿐 경영에서 배제돼 있었다"며 "그간 이사회가 열린 적이 없으며 이사회 회의록에 도장이 찍혀 있다면 허위로 추가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가족인 자신을 불법행위에 가담시켰다는 주장도 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등 내가 정당하게 독립해서 바르게 새출발하는 삶을 살려는 것을 방해하고 나를 저들의 불법행위에 얽어매려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가 효성캐피탈 차명대출이라는 분석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효성캐피탈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도명대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이 일로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일반인 상상할 수 없는 음해"

갖은 음해에 시달린 사실도 토로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그동안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그리고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음해와 모욕을 당해 왔다"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번에 모든 불법행위들을 바로잡고 정리하려 이번 고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회사를 떠나기 전후로 수많은 음해에 시달린 바 있다. 대표적인 게 '이혼설'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바람을 피워 이혼 위기에 몰렸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외인'이 된 이후 또다른 소문이 등장했다. 지난해 5월 국세청 세무조사와 같은해 10월 검찰 수사가 집안에 불만을 품은 조현문 전 부사장의 혀끝에서 촉발됐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른바 '조현문 배후설'이다.

배후설은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회사를 떠나며 챙겨나온 내부 문건을 사정기관에 흘렸다는 의혹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부모와 형제를 배신한 '패륜아'쯤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국세청과 검찰은 제보로 사정이 시작된 게 아니라고 밝혔다.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이런 소문들은 증권가 찌라시에 오르내리며 마치 진실인양 받아들여졌다. 참다 못 한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 3월 귀국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악의적인 찌라시와 기사로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재계 "차남이 너무한다" 시선도

재계 일각에선 조현문 전 부사장에 대해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부친의 건강이 악화돼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집안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효성그룹은 어수선한 상황이다. 먼저 조석래-조현준 부자가 나란히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조석래 회장은 7,9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조현준 사장은 법인자금 16억원을 횡령하고 70억원대의 증여세 포탈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상황이다.

여기에 올해 79세로 고령인 조석래 회장의 건강도 좋지 않다.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은 바 있는 조석래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던 가운데 전립선암이 발견돼 지난 4월부터 방사선과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년 넘게 앓아온 심장부정맥도 악화됐다. 이로 인해 조석래 회장은 지난해 10월 입원해 2주 가량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리나 퇴원 후 불과 20여일 만에 심장부정맥 증상이 다시 악화되면서 병원에 재입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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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희 기자

비단 효성 뿐만이 아니라 각 가문의 수치이자 재계 전체의 불명예인 대기업 오너가의 형제 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에서부터 2002년 한진그룹의 유산다툼, 2005년 두산그룹의 형제 간 분쟁, 2009년 이후 쭉 이어진 금호가 형제 갈등, 올해 삼성가의 상속재산 법정다툼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가장 최근에는 롯데의 혈투가 이목을 끌었다.

롯데는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본격적인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격호(92)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최고령인 만큼 사실상 후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에 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 부회장은 지난해 롯데제과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동생인 신 회장의 지분율과 격차를 줄이며 추격하고 있다.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각각 5.34%, 6.83%다.

롯데제과는 롯데그룹의 모태 회사라는 상징성이 있는데다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 부회장이 롯데제과의 지분율을 높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롯데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생인 신 회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신 회장도 각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며 방어에 나섰다. 이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조만간 벌어질 가능성을 높이며 재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최고 재벌가인 삼성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삼성가의 장남 이맹희(전 제일비료 회장)씨와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 소송은 큰 화제를 낳았다. 두 형제는 송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거친 막말 공방을 펼치기도 해 비난 여론을 부르기도 했다. 형제간 갈등은 이후 이씨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가세해 삼촌과 조카의 갈등으로 확산됐다. 재계 1위 그룹의 낯뜨거운 형제의 난이었다.

금호가 형제의 난 역사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금호가는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 이후 '형제 공동경영 원칙'을 지켜왔지만 지난 2009년부터 3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경영권 분쟁, 계열 분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재계에서 드물게 우애를 자랑하던 금호가도 돈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한국 재벌의 혈족 다툼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뭘까. 이는 한국 재계의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총수 한 사람이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특성 때문인 것이다. 이는 결정권을 쥔 총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총수 일가에서 내부 분쟁이 일어나면 그룹 전체에 큰 분란을 초래한다. 총수의 2ㆍ3세가 경영 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통해 후계자나 경영자가 된 게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재벌가 형제의 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과거 형제간 갈등의 끝은 좋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은 투자자와 임직원, 거래 기업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다며 이들 모두를 개인 소유로 보는 인식을 바꾸고 국민들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상기해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올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해 발표한 2013년 기업호감지수에 따르면 국민들은 기업에 100점 만점에 51. 1점을 줬고, 반기업 정서는 여전히 높았다"며 "기업 오너 일가가 '비윤리적 경영' '사회 공헌 등 사회적 책임 소홀' 등의 이유를 들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한 국민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