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횡령… '비리백화점' 오명엉성한 조직관리, 안일한 대처, 방만 경영 등 개선 못해국민 혈세로 돈잔치 '도덕적 해이'

최근 직원이 고객 돈 2억5000만원을 몰래 빼돌렸다가 적발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는 수협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몇 년간 수협(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직원의 뇌물수수와 횡령, 성 접대, 부실·불법대출, 내부고발자 해임, 직원채용 특혜 등 그 종류도 다양해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의 생업 지원과 복지를 위해 일해야 할 수협이 오히려 각종 비리로 조합원과 어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협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반성 없는 '방만 경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협은 그동안 '수산인의 수익증대와 복지향상', '국민건강을 위한 안전 먹거리 제공', '임직원의 자긍심 고취'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렇지만 한 달 걸러 터지는 수협 임직원의 각종 비리에 '비리종합선물세트'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잇단 비리에도 경각심 없어

이달 1일 수협중앙회 신용사업부문(수협은행) 직원이 고객 돈 2억5,00만원을 몰래 빼돌렸다가 적발돼 물의를 빚었다. 그는 지난해 6월 고객 돈 1억7000만원을 가로채고, 지난달에는 고객 부동산 근저당권을 해지한 뒤 이를 담보로 몰래 8,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번 횡령 사건은 고객이 다른 은행과 거래를 하려 했다가 수협에 대출이 있다고 하자 항의를 하면서 적발됐다. 수협 내부 직원이 마음대로 부동산 근저당권을 해지하고 고객 돈을 가로채는 등 내부통제가 엉망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5월 제주 해경은 꽁치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 납품 운송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수협 직원 A(47)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A씨와 연루된 직원 4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지난 2001년부터 최근까지 꽁치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납품 운송업체로부터 4,0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협 측은 "개인적인 비리일 뿐 수협과는 무관하다"라며 선을 그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남 통영 사량수협 유통판매과장 안모(40)씨가 5년 동안 마른멸치 주문 내역을 조작해 공금 19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안씨는 경남 사천과 창원, 전남 여수의 중간 도매인 3명에게 마른멸치를 구매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대금을 송금하고 판매수익금 명목으로 일부만 수협에 납입하는 방법으로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횡령한 돈으로 부동산과 고급차량을 구입하고, 귀금속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등 본인의 유흥비와 사치생활에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심 판결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문제가 드러나자 수협중앙회 측은 2년마다 전국 수협을 상대로 정기 감사를 실시한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이는 그동안 진행된 감사에 대한 실효성과 의문만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게다가 사량 수협 역시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 두 차례의 감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안일한 조직관리에 대한 비난만 높아졌다.

특히 수협은 연간 5조원에 이르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전국 92개 조합에서 벌이는 각종 경제 사업 부문에 대한 통합전산망도 아직 구축하지 못한 상태다. 수협과 유사한 농협이 지난 2008년부터 경제통합전산망을 가동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이 황당한 범죄가 장기간 가능했던 주된 원인으로 낙후된 시스템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금융 관계자는 "수협 비리의 가장 큰 원인은 부실화된 조직 관리체계와 방만한 경영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횡령 사건의 경우, 한 직원이 무려 5년 동안 190억원을 빼돌리는 대범함을 보였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해 구멍 난 내부통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신도수 부풀려 황당한 교회 대출

지난해 6월 포항해양경찰서는 선주들과 짜고 어선 부품 중고를 신품인 것으로 위조해 9억원을 불법대출해 주고 향응과 금품 및 성 접대를 받은 혐의로 울릉수협 대출담당자를 구속했다.

수협은 지난해 금감원 종합검사에서도 직원 29명이 배우자 및 동료직원 등 195명의 개인신용정보를 784차례나 무단 조회한 사실이 적발돼 해당 직원들이 징계를 받았다.

수협중앙회 직원들의 황당한 교회 대출은 일반 금융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지난 2008년 9월 수협 A지점은 B교회에 대해 교회건축 건으로 150억원을 추가 대출해주는 과정에서 신용등급이 2등급 판정을 받아 추가대출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1등급으로 부당하게 상향 조정했다. 결국 교회의 재무건전성 등에 대한 여신 심사를 소홀히 해 현재 46억원의 부실이 발생했다.

금융 관계자는 "대출을 받는 쪽이 아닌 지급하는 쪽에서 신용등급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경쟁 은행보다 취약한 영업망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 부실에도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한 수협의 편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수협이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은 오랜 세월 손쉬운 신용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보조금을 집행하면서 어민 위에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임직원의 급여와 복지 수준을 올리고 조직을 불리는 데 골몰해 왔다"라며 "수협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날로 심각성을 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통제는커녕 외부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투입 후 연봉 등 인상

수협은 매번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방만한 경영으로 질타를 받는다. 특히 결손금(적자) 잔액이 1,633억원에 달하는데도 2002년 이후부터 임직원들의 급여와 업무추진비를 꾸준히 인상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1년 정부로부터 1조1,581억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지원된 이듬해 회장의 연봉은 8,752만원에서 1억9,560만원으로 무려 1억808만원이나 올랐다. 대표이사와 감사의 총 급여도 7,232만원에서 1억5,600만원으로 116%나 인상했다.

임원들의 퇴직금도 일반인의 상식과 어긋난다. 수협 신용사업 부문 대표이사의 퇴직금 지급률은 연봉의 50%에 달한다. 4년을 일하면 2년치 연봉을 챙겨가는 셈이다. 억대 연봉자의 수도 급격하게 늘었다. 구체적으로 수협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4년간 억대 연봉자가 없었으나 지난 2005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11년에는 65명이 억대연봉을 받아 2005년 대비 7배가 넘었다.

수협 임원은 지난해 연봉 외에도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협 신용부문 대표이사는 지난해 4,650만원에 달하는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으며 경제부문 회장 역시 4,500만원에 이르는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여기에 경제부문 대표이사와 감사위원장도 지난해 3,000여만원, 2,3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지난해 전체 92개 조합 중 4분의 1이 자본잠식 상태이지만 59개(64%) 조합의 조합장 임금은 오히려 올랐다. 또 조합장의 임금이 상승한 59개 수협 가운데 36%인 21곳은 순자본 비율이 오히려 하락했다. 한편 수협의 공적자금 회수는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동헌 기자 ldh14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