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로 뿌려진 출처불명 자금 흐름 잡는다이건희-홍라희 부부 하와이 부동산 매입… 오는 2016년까지 별장을 지을 계획 수립조현준 사장 만 18살에 44만불 저택 매입조중건 전 부회장 출처 불명 자금 동원… 하와이에서 13차례에 걸쳐 부동산 거래

사정기관이 주요 재벌가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촉발된 건 국내 재벌의 해외 부동산 투자 실태가 방송을 탄 이후다. 부동산 매입을 위한 자금이 국내외로 오고가는 과정에서 불법외환거래가 있었는지 여부 등이 조사 대상이다.

타깃은 일단 방송에 사례로 제시된 주요 대기업 오너가다. 방송이 조사대상 중 상당수 부동산 거래에서 불법 의혹에 얽혀있다고 밝힌 만큼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 사정이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가족 LG가 거래 건수 많아

KBS ‘시사기획 창’ 탐사보도팀은 국내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보유 실태를 6개월 동안 추적 조사해 지난 6월 방송했다. 8대 재벌 일가와 300대 부호, 횡령·배임·추징금 미납 등으로 논란이 된 기업인 등 1,825명이 조사 대상이었다.

지역은 한인들이 선호하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와 동부 뉴욕과 뉴저지, 매사추세츠, 하와이 등 5개주 35개 카운티로 정했다. 조사 결과 주요 재벌과 부호들의 미국 부동산 거래내역 272건이며, 총 거래 액수는 수천억원으로 확인됐다.

위 사진 왼쪽부터 구자홍 LS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아래 사진 왼쪽부터 조현상 효성 부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홍라희 리움 관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방송은 주요 재벌들의 부동산 매입 사례를 담았다. 방송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말 하와이 오하우섬 최고의 부촌인 카할라 해변 별장촌 중심에 땅을 매입했다. 매입가는 1,325만달러. 한화 136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건희 회장은 이 지역에 오는 2016년까지 별장을 지을 계획이다. 하와이 주 정부에 별장 건설 계획서를 내고 사전 환경영향평가도 신청했다. 예상 건축 비용은 2,500만달러에서 3,000만달러로 한화 300억원에 해당하는 자금이 소요될 예정이다.

부인인 홍라희 리움 관장도 지난 4월 말 하와이 빅아일랜드섬의 땅을 사들였다. 매입가는 89만5,000달러다. 홍 관장은 해당 지역의 골프장 회원이 되기 위해선 리조트 단지 내의 부동산을 사야한다는 규정에 따라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는 입장이다.

해외 부동산 거래 건수로는 LG가가 많았다. 대가족인 만큼 식솔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먼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구미정씨는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 소형 아파트를 샀지만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또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며느리도 하와이 해변에 위치한 워터마크라는 콘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LG가에선 여성들이 결혼 뒤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가 부동산을 사고 판 경우가 많았다. LG가에서 분리된 LS그룹의 구자홍 회장은 2008년 360만달러를 송금해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지역에 고급주택을 매입했다.

재벌가 상당수 미국서 부동산 거래

한진가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먼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1990년대 중반 하와이 마우이섬에 여의도 면적의 거대한 농경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5년 뒤 2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았다.

조중건 전 부회장은 이밖에도 해외 부동산 투자 전면 금지이던 시절부터 하와이에서 총 13차례에 걸쳐 20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거래해왔다. 특히 거래에 사용된 자금이 국내에서 송금된 흔적이 없어 자금 마련에 의문점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미국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 60억원 짜리 저택을 보유하고 있다.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역시 뉴욕에서 근무할 당시 5억원에 집을 매입하고 20년 23억원에 되팔아 차익을 챙겼다.

효성가에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이 만 18살에 미국 뉴욕 웨체스터의 저택을 44만달러에 사들였다. 매입 자금 출처는 모호한 상황이다. 삼남 조현상 효성 부사장도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워터마크’의 34층 26억원 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다.

조현준 사장의 사촌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도 10대부터 미국 부동산의 주인이 됐다. 모친이 1990년 하와이 마우이섬의 고급 리조트를 80만달러에 사들인 뒤 조현범 사장이 만 19세 되는 해에 공동 명의로 등기하면서다.

두산가의 경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의 ‘셰필드’라는 이름의 50층짜리 콘도 43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 콘도는 2007년 리모델링해 깔끔한 내부 시설과 도심 접근성 때문에 인기가 높다. 집값은 20억원에서 30억원대다.

특히 이 콘도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등재된 한국인 소유주도 50명 가까이 되는데 재벌들의 이름이 적지 않다. 당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과 신동원 농심그룹 대표가 이 콘도 39층과 46층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SK가의 경우 인사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 법인으로 통한 부동산 거래에 오너가가 얽혀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문제의 회사는 미국 설립한 티볼리라는 법인이다. 이 회사는 뉴욕 맨해튼 등지에서 모두 7건의 부동산 거래를 했다.

거래 금액은 3,000만달러가 넘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부동산 거래는 티볼리 이사로 등재된 바 있는 당시 SK 미국 법인장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티볼리가 매입한 부동산에 한동안 거주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티볼리의 사명이 OCMP로 바뀌는데 이 단어가 SK 미국법인에서는 ‘회장실’로 통했다는 제보도 나왔다. 최태원 회장 일가와 티볼리란 회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정기관 불법외환거래 주시

사정기관은 최근까지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과 이승관 경신 대표 일가의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소재 부동산 매입과정의 불법외환거래 여부를 조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타깃을 확대한 상황이다.

당장 들여다보고 있는 건 방송에 사례로 등장한 주요 대기업으로 알려졌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전면 허용된 2008년 이전 해외 부동산 매입 한도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또 해외 자본거래에 대한 신고 규정 절차를 정상적으로 마쳤는지 여부가 핵심 조사 내용이다.

파장은 적지 않은 전망이다. 방송에서 구체적인 기업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전체 부동산거래 272건 중 외국환관리법 위반이 의심되는 거래가 133건, 탈세 의심 거래는 63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으로 정한 투자 한도를 지켜 신고한 경우도 30%가 안됐다.

해외 부동산 거래를 한 재벌가 상당수가 불법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대기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른 기업으로의 사정권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에 막대한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방송을 통해 제기된 재벌가의 해외 부동산 투자 실태 상당수는 앞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나 사정기관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수”라며 “방송 이후 사정기관이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기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