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현대중공업 '친정체제' 구축 배경은

'회사 살리기' 차원… 정치적 시각도
최길선·권오갑 등 최측근 전면 배치 회사 위기 대처
업계, 정몽준 경영 복귀 분석…정치적 행보 시각도
  •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이 ‘친정체제’ 구축에 나섰다. 과거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이끌었던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 전 의원이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지키며 회사와 거리를 둬 온 정 전 의원이 사실상 경영에 복귀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정 전 의원이 회사 부진에 따른 정치인으로서의 입지 축소라는 위기감을 반영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측근 중심 경영체제 전환

현대중공업의 시니어들이 돌아왔다. 최근 조선ㆍ해양ㆍ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으로 복귀한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대표와 현대중공업 사장 겸 그룹기획실장에 임명된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공석이 된 현대오일뱅크 사장엔 문종박 부사장이 선임됐다.

이들은 모두 과거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이끈 ‘공신’들이다. 먼저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권 사장은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장, 서울사무소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그룹 내 한축을 담당하는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맡아 내실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연합뉴스
권 사장은 특히 현대오일뱅크를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유사업부문 이익률 1위 기업으로 만들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 정유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올해 상반기에도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일궈냈다.

최 총괄회장도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은 조선업계의 대표 경영인이다. 1972년 입사해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을 두루 거치며 지금의 회사를 만든 최 총괄회장은 조선업계 최고의 현장 전문가로 꼽힌다.

문 사장 역시 현대오일뱅크의 사업다각화를 주도하며 실력 검증을 마친 인물이다. 롯데케미칼과 1조원 규모의 혼합자일렌(MX) 합작사업을 위한 현대케미칼 설립이나 쉘(Shell)과의 합작을 통해 윤활기유 사업에 뛰어든 건 모두 문 사장의 작품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또 있다. 바로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최측근이라는 점이다. 먼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직접 발탁한 것으로 알려진 최 총괄회장은 정 전 의원이 현대중공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던 1980년대 초반 함께 손발을 맞춘 바 있다.

최 총괄회장에 대한 정 전 의원의 신임은 대단하다. 2000년대 초반, 현대중공업을 글로벌 1위 기업으로 키워낸 일등공신인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이 대권레이스에 뛰어든 2011년 당시 현대중공업 퇴직 임원 모임인 ‘중우회’를 이끌며 물밑 지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
권 사장도 정 전 의원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을 거쳐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는 권 사장은 현대중공업 내에서 정 전 의원의 의중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문 사장은 정 전 의원의 직계 라인은 아니다. 현대중공업 출신인 문 사장은 2010년 권 사장이 현대오일뱅크로 옮겨갈 당시 함께 움직여 호흡을 맞춰오면서 ‘권오갑 라인’으로 분류된다. 정 전 의원의 ‘한 다리 건너 측근’인 셈이다.

재계에선 정 전 의원의 ‘친정체제’ 구축을 본격적인 ‘회사 챙기기’ 행보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그동안 지켜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정 전 의원의 의중이 적극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됐다는 평가다.

현대중, 사상 최대 위기 직면

정몽준 전 의원은 1980년대 중반 현대중공업 CEO를 맡았던 때를 제외하곤 경영에 관여를 하지 않았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현대중공업이 승승장구해온 까닭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2분기 성적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2분기에만 1조1,0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조원대의 분기손실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야말로 ‘어닝쇼크’ 수준이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현대중공업의 실적이 급락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해양플랜트의 부진이 꼽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하기 시작한 해양플랜트의 생산 비용이 해가 갈수록 치솟으며 결국 대규모 손실충당금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은 비교적 뚜렷하지만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해운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중국 조선업체들의 수주량 증가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해양플랜트 부문의 불확실성도 몇 년 더 이어지리란 어두운 전망마저 나온다.

회사 위기=정치적 입지 하락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내리막 행보가 계속될 경우 정 전 의원의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도 줄어든다는 데 있다. 직접 경영에 관여하고 있진 않지만 회사의 실질적 오너라는 이유에서 현대중공업은 정 전 의원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던 게 사실이다.

현대중공업을 배경으로 한 정 전 의원은 차기 대선 주자들 중 경제부문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잠룡’으로 꼽힌다. 향후 몇 년 간 한국 경제가 내리막을 걷게 될 상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표방했던 ‘CEO형 대통령’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인 셈이다.

반대로 현대중공업의 적자행진이 지속된다면 ‘자기 회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한국 경제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공격에 노출될 여지가 있다. 측근을 통한 현대중공업 챙기기에 나선 게 바로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사장단 인사와 정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를 연관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며 “현대중공업의 경영정상화를 통해 ‘경제를 아는 정치인’ 이미지를 완성, 대선을 준비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전 의원 측과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최근 인사는 국내외 경영 위기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조치로 정 전 의원의 정치적 행보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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