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홈플러스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고객 개인정보 보험사에 팔아넘겨

경품추첨 비리 등 직원 윤리의식 바닥

매출 부진에 노조 파업까지 잇단 ‘악재’에 곤혹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김모(35)씨는 월드컵경기장 내에 있는 대형마트 홈플러스를 자주 이용한다. 거리도 가깝지만 ‘고객 사은대잔치’라는 명목으로 자주 경품행사를 열기 때문이다. 매번 응모권에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 신상정보를 기재했지만 당첨 소식은 항상 ‘먼 나라 이야기’였다.

최근 김씨는 홈플러스 몇몇 직원들이 고가의 수입차 등 경품행사 추첨 결과를 조작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홈플러스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팔아 부당이득까지 챙겼다는 말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김씨는 “홈플러스의 조직적인 짬짜미에 속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할인점업계의 강자 홈플러스가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다. 매출 감소 등 실적 부진에 임금협상을 둘러싼 노사갈등, 회사 기강을 무너뜨리는 직원 비리가 연달아 발생했다. 더구나 경품행사 추첨 조작과 고객 개인정보 불법 판매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홈플러스가 당시 직원들에게 응모권 실적 올리기를 강요하는 등 조직적으로 경품 사기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 홈플러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본사 차원에서 지침을 내려 직원들에게 응모권 할당량을 제시하는 등 실적 올리기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홈플러스는 경품 행사 응모권에 직원 사원번호란 기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입력을 위한 도장을 점당 2개씩 배포했다. 계산원들에게 응모권 한 장 당 100원의 인센티브를 걸고 개인별 300장, 일 50장씩의 목표를 할당해 관리자들을 통해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 점포별로 경품 응모권 수집실적 순위에 따른 시상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홈플러스 노조가 공개한 경품행사 강제 동원 SNS 채팅창을 보면 “개인별로 기본 300장은 하셔야 합니다. 개인별 기본 목표를 채울 수 있도록 기록 체크하겠습니다”, “체크사무실에 스탬프랑 도장 준비해두었습니다. 응모함 뒤에 직원확인란에 본인사번 찍으시면 됩니다. 일 50장씩은 채워지기를 바랍니다”라는 할당량을 강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홈플러스에서 7년째 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36·여)씨는 “경품행사를 크게 하려는 것으로만 알았지 이런 행사인 줄 전혀 몰랐다”며 “일선 직원들은 목표 할당에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고객들에게 응모권을 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객정보 불법판매로 수십억 챙겨

이렇게 조직적으로 수십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를 모은 홈플러스가 제휴마케팅 계약을 맺은 국내 보험회사들에게 고객정보를 돈을 받고 넘겨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반(합수단)은 지난 4일 서울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를 압수수색한 결과 홈플러스가 최근 5년간 경품행사에 응모한 고객의 개인정보 250만건을 다수의 보험사에게 넘겼다고 발표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고객의 휴대폰 번호, 가족사항, 주소 등 개인정보를 건당 2,000원에서 4,000원을 받고 보험사들에게 팔아 수십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합수단은 이 과정에서 이승한 전 회장과 도성환 사장 등이 의사결정에 깊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이승한 전 회장은 경품 사기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직후인 지난달 초 전격 사퇴했다. 이번 사건이 유통업계 최악의 경품사기로 꼽히는 만큼 회장직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추측이다.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면서 이 전 회장이 미리 꼬리를 자른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제공하는 데 고객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라며 “우리가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제공하면 보험사들은 (고객정보를 토대로) 영업을 해서 가입자를 늘린다. 이 때 보험사가 우리한테 수수료를 주는데 이는 합법화된 사업으로 다른 대형마트와 11번가와 같은 오픈마켓에서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업 자체는 외국의 유통사들도 하는 사업으로 불법이 아니다”라며 “2000년 초반부터 보험, 이사서비스, 금융, 알뜰폰 등 신유통사업을 하면서 고객 데이터베이스 제휴사업을 하고 있다. 응모권에 고객이 동의한 제한된 개인정보만 넘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팔아넘긴 개인정보에는 고객이 활용에 동의한 정보와 동의하지 않는 정보가 섞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은 제휴 보험사의 마케팅 자료 활용에 동의한 것이지 개인정보를 돈 받고 빼돌리도록 용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전에 개인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줄 알았다면 경품행사에 응모했을 고객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는 ‘비겁한 변명’이자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직원들의 인건비를 파견업체에 부담시키는가 하면 노조원들에게 10분 단위 계약을 맺도록 강요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 번번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라며 “이번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경품사기 사건이 자칫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는 유통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전했다.

홈플러스의 도덕적 해이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홈플러스 직원 중에는 추첨결과를 조작해 고객 경품용으로 내놓은 승용차를 가로채는 후안무치한 일을 저지른 이들도 있었다. 홈플러스 보험서비스팀 정모(35) 과장과 공범인 팀원 최모(32)씨와 최씨의 친구 A씨, 경품추천을 담당한 협력사 직원 B씨 등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진행된 네 차례의 고객 대상 경품행사에 지인의 명의로 응모한 뒤 1등으로 당첨되도록 결과를 조작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손에 넣은 경품은 BMW 320d 2대와 아우디A4 1대, K3 1대 등 시가 1억5,000만원 상당의 승용차 4대였다. 정씨와 최씨는 이를 되팔아 약 1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과적으로 정씨가 7,000만원, 최씨가 3,000만원 정도를 챙겼고, A씨 등 명의를 빌려준 지인들에게는 1인당 100만∼200만원이 주어졌다.

홈플러스 노조는 “직원들은 경품 행사가 고객서비스 차원의 일로 인지하고 열성적으로 임했다”며 “하지만 경품 행사가 보험사를 상대로 한 개인정보 장사와 일부 직원들의 배불리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적 부진까지 겹쳐 최대 위기

홈플러스는 전국에 대형마트 130여 곳, 슈퍼 형태의 직영점 300여 곳을 갖고 있는 국내 매출규모 3위의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다.

지난해 매출액 8조1,454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3%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년 연속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509억원, 4,633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대비 23.7%, 5.3% 떨어졌다.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은 지난 2011년 4,24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2년 3,292억 원, 지난해 2,509억 원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 또한 6.1%에서 3.4%까지 낮아졌다.

올 해에도 실적 부진은 여전하다. 올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대비 4.1% 줄었다. 같은 기간 이마트 0.6%, 롯데마트가 2.9% 감소한 것에 비하면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이처럼 실적 부진에 최근의 경품추첨 비리, 회사 차원의 고객 정보 불법판매, 노조 파업 등이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지난해 5월 취임한 도성환 사장의 위기관리 능력에도 회의적인 시선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달 초, 이승한 전 회장이 홈플러스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단독으로 홈플러스를 이끌어온 도 사장은 소비자 신뢰가 땅에 추락하고 있는데도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향후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도 사장의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홈플러스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경영과 상생, 노사, 고객 등 전반에 걸쳐 악재를 맞고 있다”며 “특히 이마트나 롯데마트에 비해 개인정보에 대한 중요성을 안일하게 대응하다 일이 커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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