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설 수면 위로… '여론 떠보기'?

최경환ㆍ황교안 의미심장한 동시 신호 왜?
기업인 면죄부 논란… SKㆍCJ ‘희망적 기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감돼 있는 일부 기업인들에 대해 가석방과 사면을 암시한데 이어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기업인 사면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사면은 성탄절 전에 단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형기의 3분의1 이상을 복역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이재현 CJ회장이 유력한 사면ㆍ복권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기업인 사면이 없었고 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기업인 사면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사면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황 장관은 사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민여론의 형성’을 전제로 달았다. 이 때문에 개별 피해자들과 관련이 있는 범죄로 구속 수감된 기업인들은 사면 복권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능성 커도 실현엔 난관

사면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기업 총수들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일부 로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성탄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모 변호사가 여권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면이 성탄절 전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구정 전후에 가석방과 특사의 형태로 이뤄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경제인은 SK 최태원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이다. 지난해 1월 31일 법정구속된 최 회장은 지난 23일로 징역 4년 중 600일을 채웠다. 대기업 회장 중 최장 기록으로 가석방 요건인 형기 3분의1(형법 72조)을 넘긴 것이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재현 CJ 회장은 지난 18일 검찰과 이 회장의 변호인 측은 모두 항소심 결과(징역 3년)에 상고한 상태다. 이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최 회장보다 특별사면 또는 가석방 혜택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이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려면 양측이 상고를 취하하거나 대법원이 신속하게 형을 확정해야 한다. 이에 CJ 주변에선 “이 회장이 사면 결정을 앞두고 상고 취하여부를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말도 무성하다. 특히 이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범삼성가는 총수 공백으로 인한 투자 위축, 경영 의사 결정 지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탄원서를 내 이 점을 정부가 감안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 회장의 경우 이미 지난해 받은 보수 187억원 전액을 사회적 기업 지원과 출소자 자활사업 등에 기부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사면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최 회장은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는가 하면 김원홍씨 등 정체가 모호한 이들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등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의 이 같은 진술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를 보는 여론의 시선도 좋지 않다. 일부에서는 “최 회장은 반성의 기미가 없어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에 대한 특사나 가석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연달아 이어질 당시 검찰 수사를 보는 사회적 시선은 정의실현에 대한 기대였다. 그렇게 잡아들인 총수들을 이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특혜를 준다면 사법부에 불신이 커질 뿐만 아니라 향후 기업수사가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황ㆍ최 수상한 특사 합창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월 24일 “구속된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살리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한다면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황 장관은 이날 “기업인이라고 가석방이 안 되는 건 아니다”며 “잘못한 기업인도 여건이 조성되고 국민여론이 형성된다면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초기 대대적인 기업수사를 추진하면서 기업 비리에 대해 무자비 원칙을 천명한 적 있다. 이에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 총수들의 가석방이나 사면·복권에 대해 원칙적으로 불가 방침을 세우고 지금까지 사면을 단행한 적이 없다. 이런 가운데 황 장관의 사면발언이 나오자 이를 두고 법조계와 재계에서 여러 추측과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황 장관은 “지금 경제에 국민적 관심이 많으니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라면 일부러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지금은 그런 검토를 심도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속된 일부 기업 총수에 대한 선처 가능성을 황 장관이 시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실제 사면 계획이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론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속칭 ‘떠보기’에 불과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또 사면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금과 같은 정국에 재벌 총수에 대한 면죄부까지 더해질 경우 야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혜 총수들의 경제기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장관의 발언 이후 최 장관은 “경제살리기에 헌신한 기업인에게 사면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지원하고 나서서 눈길을 끌었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난 9월 25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방문해 “지금 여러가지 투자부진 때문에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인들도 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경제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투자활성화”라며 “주요 기업인들이 계속해서 구속상태에 있으면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아무래도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잇단 기업인 사면 발언이 이어지면서 비리행위로 유죄를 선고받은 대기업 총수에 대해 가석방 등을 불허해온 ‘공정 법집행’, ‘불관용 원칙’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재계 일부에서 “정부가 기업인의 가석방이나 사면ㆍ복권을 언급해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기업들의 협조를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상황에서 황 장관의 발언이 나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날 오후 “가석방 등 법집행에 있어 ‘특혜 없는 공정한 법집행’ 기조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며 “원칙에 부합되고 요건이 갖춰질 경우 누구나 가석방 등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억측을 경계했다.

한편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이나 사면ㆍ복권이 이뤄질 경우 현재 형량이 확정돼 구속 수감 중인 최 회장과 그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을 비롯해 보석 허가를 받아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복역 중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이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CJ의 이 회장 등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 당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제한을 공약으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한 게 하나도 없다는 비판을 사고 있어 특별사면을 단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광복절에도 특별사면을 단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설 명절을 맞아 생계형 민생사범 6,000여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한차례 시행한 게 전부다.



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