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나라 본사가 들어선 중구 충무로 빌딩 전경. 깨끗한나라는 이 건물 6, 8,12층에 입주해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종합 제지업체 깨끗한나라의 전신(前身)은 1966년 3월 설립된 대한팔프공업이다. 1991년 2월 대한펄프로 사명을 바꾼 뒤 2011년 3월 지금의 이름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포장재로 사용되는 백판지 등을 제조, 판매하는 제지사업과 두루마리 화장지, 미용티슈, 기저귀, 생리대 등을 제조, 판매하는 생활용품사업을 양대 축으로 사업하고 있다. 회사 매출 비중은 제지사업이 49%, 생활용품사업이 51%를 차지한다. 제지사업의 시장점유율은 27∼28%로 한솔제지에 이어 업계 2위(생산량 기준)이며, 생활용품은 두루마리가 15∼16%, 물티슈가 18% 전후, 생리대가 6∼7%, 기저귀가 평균 9%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연매출은 2011년 5,878억원, 2012년 6,334억원, 지난해 6,474억원을 기록하는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한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3,320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영업이익 역시 125억원(2011년), 169억원(2012년), 209억원(2013년) 등 꾸준히 성장곡선을 긋고 있다.

이렇게 6,000억원대의 안정된 매출과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깨끗한나라의 대물림, 즉 경영권 승계를 두고 업계에서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지난 7월 깨끗한나라 최병민 회장의 자녀들이 700억원을 들여 지분을 매입했는데, 이들의 돈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는 2009년 희성전자의 깨끗한나라 지분 인수와 최근 오너 일가들의 지분 되찾기라는 묘한 함수관계가 작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부도위기, 처가 쪽 도움 기사회생

최병민 회장이 아버지인 창업주 고(故) 최화식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한 때는 1980년. 부친이 타계하면서 자연스레 기업을 물려받았다. 최 회장은 부친이 닦아놓은 안정성장의 토대 위에 파죽지세로 외형을 불려나갔다. 1985년 11월에 금강제지를 인수해 화장지 생산에 뛰어들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설비 증설에 돈을 쏟아 부었다. 계열사들도 잇따라 늘려 1998년에는 6개사나 됐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최 회장은 정점에서 나락을 맛보았다. 제지업체간의 경쟁적인 설비 증설로 공급과잉 상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악화됐다. 매출은 줄고 판매가격은 수익성을 압박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게다가 IMF 이후 불어 닥친 경기침체까지 겹쳐 2003년 이후 소요자금을 차입금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2007년 198억원의 순손실을 본 데 이어 2008년에도 294억원 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거듭된 실적부진으로 깨끗한나라의 재무사정은 점점 악화돼 2008년에는 부채비율이 무려 1,496%에 달했다. 부도를 피하기 위해서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M&A(기업 인수&합병)를 진행해야 될 처지였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을 내민 곳이 희성그룹이다. 희성그룹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럼 희성그룹에서 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회사에 '백기사'를 자청해서 나선 것일까? 그건 최 회장의 부인이 구 명예회장의 둘째딸이기 때문이다. 즉 구본능 회장이 막내 여동생의 남편이 경영하는 회사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2009년 2월 최대주주로 있던 최 회장은 자신의 보유지분 66%(보통주 기준) 중 58%를 경영권과 함께 매부 구본능 회장이 주인으로 있는 희성그룹의 계열사 희성전자에 매각했다. 당시 최 회장은 지분은 잃었지만 160억원이라는 알토란같은 현금을 챙길 수 있었다.

깨끗한나라의 최대주주에 올라선 희성그룹의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깨끗한나라는 곧바로 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1,600만주)를 단행했는데, 유상신주의 가격은 액면가인 주당 5,000원이었다. 당시 최대주주인 희성전자는 할당받은 884만3,719주를 약 442억원에 매입한 것도 모자라 기존 주주들이 매입을 포기한 유상신주 360만주의 실권주까지 180억원에 사들였다. 비슷한 시기 최 회장의 동생인 최병준 회장의 주식 8만3,381주 또한 희성전자가 매입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약 8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한 희성전자의 깨끗한나라 지분율은 무려 70.75%에 달했다. 희성그룹의 자금수혈로 인해 깨끗한나라의 재무 상황은 한결 나아졌다. 2008년 1,500%에 육박했던 부채비율은 2009년 말에는 328%까지 떨어졌다.

희성그룹 품에 안긴 깨끗한나라의 실적도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8년 294억원에 가까웠던 당기순손실액은 2009년 30억원 규모로 축소됐다. 2010년에는 4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고 이후 2011년 12억원, 2012년 144억원, 2013년 161억원 등 당기순이익 흑자를 각각 기록하며 양호한 실적을 이어갔다.

지분 재매입, 우회 경영권 승계

희성그룹에 회사의 지분을 넘겼던 최 회장 일가는 올 7월에 다시 회사를 품에 안았다. 종전 최대주주인 희성전자가 보유지분 3분의 2를 내다 팔아 지분율을 53.29%에서 17.68%까지 낮추는 사이 그간 우선주 8주만 들고 있던 최 회장의 아들 최정규씨가 보통주 597만1,526주를 장내매수하며 단번에 최대주주(18.28%)로 올라섰다.

정규씨의 두 누나인 최현수 깨끗한나라 경영기획담당 이사와 최윤수씨도 각각 286만8,704주(8.78%), 286만7,326주(8.78%)까지 지분을 늘려 3,4대 주주가 됐다. 사실상 3세 승계를 위한 작업을 마무리지은 셈이다. 이밖에 최 회장(69만7,932·2.14%)과 어머니이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구미정씨(183만921주·5.6%)가 주요 주주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대주주측 지분율은 43.69%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의 지분 인수 대금이다. 깨끗한나라가 공시한 이들의 지분 취득 단가는 5,840원. 정규씨가 지분 취득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은 자그마치 349억원. 두 누나인 현수씨 168억원, 윤수씨 167억원까지 합하면 모두 684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올해 23세인 정규씨는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또 현수씨는 깨끗한나라 마케팅팀장을 거쳐 지난 1월 이사로 승진, 현재 경영기획실장을 맡고 있지만 35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그동안 받은 연봉을 다 모아도 168억원이란 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윤수씨 역시 입사 여부 등 근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32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167억원을 오롯이 자신의 손으로 마련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친가나 외가 쪽에서 지분 매입 자금을 지원해줬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자녀들에게 자금을 대줬다면 부과되는 증여세가 만만치 않아 부담이 됐을 터. 최 회장이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증여했을 것이라고 보는 이는 적다. 현행 증여세율은 1억원까지 10%가 적용되고 1억∼5억원은 20%, 5억∼10억원은 30%, 10억∼30억원은 40%를 적용받는다. 30억원을 초과하면 증여세율이 50%다.

결국 지분 매입 자금은 어머니 구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구씨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이자 국내 여성 주식부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엄청난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 소형 아파트를 샀지만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깨끗한나라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규씨는 아직 학생 신분이라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라며 "증여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기자금으로 주식을 취득한 것으로 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정규씨가 스스로 매입자금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결국 부모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왔을 확률이 높다"라며 "이럴 경우 증여세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증여세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규씨가 경영권을 갖게 됐는데,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어린 아들에게 주식을 물려준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라며 "한 가지 변수는 누나들이 어떤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경영권 승계가 무리없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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