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수사 불길 KTNET으로 번져국민은행 심사위원 한명 타위원… 점수 확인 뒤 유리한 평가 의혹국민은행 전자등기 매출 2.5억원… 무차별 사업확장 논란'아랑곳'"사업 강행 배경 납득 어려워"

한국무역협회와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빌딩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최근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의 국민은행 로비 의혹이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다. 윤 회장이 자신이 주요주주인 회사가 국민은행이 발주한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도록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확인 결과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무혐의로 결론났다. 그러나 정작 뇌관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국민은행이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주간한국>은 국민은행 로비 사건의 전말과 새로 부상한 의혹이 담긴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로비 의혹 무혐의 배경은?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 로비 의혹의 핵심은 윤 회장이 전자등기 시스템 개발업체인 엘스트로가 국민은행 인터넷 전자등기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게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다.

전자등기사업은 과거 법무사 등 법률대리인이 등기소를 직접 방문해 처리해오던 근저당등기 설정업무를 전산화하는 사업이다. 근저당등기 설정에 필요한 정보를 전산으로 전달하고, 이를 법률대리인이 처리한 뒤 되돌려 받는 식이다.

그렇다면 국민은행 전자등기사업 과정에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사건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민은행은 전자등기시스템 개발사업 입찰을 실시했다. 여기에 사단법인 한국무역협회 자회사인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과 엘스트로가 참여해 경합을 벌였다.

그 결과 KTNET이 사업자로 단독 낙찰됐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국민은행이 엘스트로와의 공동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통보해온 것이다. 그즈음 윤 회장이 엘스트로가 사업자에 선정될 수 있도록 입김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로비설이 나돌았다.

로비설이 제기된 주된 이유는 엘스트로의 주주구성 때문이었다. 윤 회장은 지난해 말 현재 엘스트로 지분 6.22%을 보유한 4대주주고, 고려신용정보도 이 회사 지분 4.04%를 가지고 있었다. 윤 회장은 검찰 수사에 앞서 자신의 지분을 모두 정리한 상태다.

검찰도 이런 의혹을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윤 회장이 임 전 회장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장으로 근무하던 10여년 전부터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로비와 관련된 관련자 진술도 있었다.

그러나 수사 결과 로비 의혹은 무혐의로 결론났다. 다만 윤 회장의 회삿돈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결국 엘스트로는 자유의 몸이 됐다. 정작 불길은 다른 곳으로 옮겨 붙었다. KTNET이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수사 불길 KTNET으로 번져

<주간한국>이 입수한 국민은행의 '인터넷 전자등기 업무 추진을 위한 IT솔루션 업체 평과 결과' 문건에 따르면 기술 관련 심사는 총 6명의 심사위원들에 의해 진행됐다. 심사위원은 기술심사를 담당하는 IT부서 위원 5명과 여신기획부 소속 위원 1명으로 구성됐다.

기술 관련 심사의 배점은 70점이었다. 해당 심사에서 IT부서 위원 5명 전원은 0.1점에서 3.3점 차로 엘스트로의 손을 들어줬다. 기계평가인 재무상태 등 '비즈니스 요구사항' 항목에서 0.7점을 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승세는 엘스트로에 기울어 있었다.

상황은 여신기획부 심사위원이 KTNET에 엘스트로보다 4.3점 높은 점수를 주면서 달라졌다. 그 결과 평균점수 0.3점 차이로 KTNET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그러나 여신기획부 심사위원이 점수를 내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점이 발견됐다.

국민은행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여신기획부에선 IT부서 위원들이 심사 점수를 내놓은 이후 그 결과를 모아 가져간 뒤 KTNET에 대한 점수를 부여했다. KTNET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될 수 있도록 다른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확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공공기관과 일부 금융사들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준 위원들의 심사결과는 평가에서 배제하고 있다. 외부의 입김이나 로비에 따른 심사결과 왜곡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국민은행 전자등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선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시스템상 외부 개입 차단이 어려운 구조다. 만일 최고점과 최저점을 준 심사결과를 걸러낼 경우 4.9점 차이로 엘스트로가 사업권을 따내게 된다.

국민은행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IT부서에서 심사결과를 여신기획부에 알려준 일이 없다”며 “따라서 여신기획부에서 심사점수를 사전에 인지하고 그에 따라 KTNET에 유리한 결과를 내줬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은행은 현재 해당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정보 유출 문제를 우려해 외부 개발업체의 서버를 이용하는 것보다 내부의 은행 자체 서버를 이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추진 계획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도 KTNET 행보 의문 제기

KTNET은 그동안 전자등기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KTNET은 중소기업 업장을 침해한다는 업계의 문제제기에 따라 정치권의 지적에도 아랑곳 않고 사업 의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먼저 전자등기 사업이 당장 많은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 아니다. 국민은행에서 한해 진행되는 등기수는 20만건 가량이다. 여기에 전자등기가 적용되는 최대치는 10만건이다. 수수료를 1만원을 적용하면 한해 10억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KTNET과 엘스트로가 공동 사업자에 선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사에 돌아가는 매출은 한해 5억원 가량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등기 관련 시스템은 KTNET의 고유기술이 아니다. 시스템 개발업체인 A사가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윤을 50%씩 나눈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국민은행과의 거래를 통해 KTNET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한해 2억5,000만원이 전부인 셈이다. KTNET은 2007년 이래 매년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610억원 규모의 매출이 발생했다. 전체 매출과 비교해 속칭 '새발의 피'다.

더군다나 올해 국감에서도 KTNET은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본래 사업 목적과 무관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중소기업들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와 KTNET의 설립 목적은 전자등기사업과 사실상 무관하다.

먼저 한국무역협회는 정관을 통해 무역 진흥에 필요한 제반사업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밝히고 있다. KTNET 설립근거의 핵심 역시 전자무역서비스 확산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006년 KTNET을 '전자무역기반사업자'로 지정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KTNET의 사업확장을 규제할 장치는 사실상 없다. 한국무역협회와 달리 KTNET은 민간회사로 분류돼 산자부의 관리 밖에 있어서다. 그래도 KTNET이 일반 민간기업보다 정치권에 한발 다가가 있는 만큼 저수익 사업을 위해 '미운털'을 감수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