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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연말, 2014년 '건배사 사전'을 찾아보면...


"미사일" 등 클래식에서 "미생" "새양말" 등 뉴트렌드까지
‘구호형’ 건배사보다 ‘스토리’ 있는 건배사가 더 진한 여운
참석자·분위기 고려 않고 선을 '오버'하는 건배사는 위험
  • 연말 술자리에서는 건배사 제의가 이어진다. 이럴 때를 대비해 건배사를 준비하는 것도 직장인의 센스 중의 하나이다. 사진은 가수 싸이의 ‘행오버’ 뮤직비디오 한 장면.
[장원수 기자] 개인 사업을 하는 남모(53·남)씨는 연말이면 건배사 때문에 걱정이다. 매일 있는 연말 모임마다 성격이나 참석자 연령대가 다르고, 목적도 상이해 그 때마다 다른 건배사를 해야 하는 고민거리가 있다. 인터넷을 뒤져 괜찮은 건배사를 휴대전화에 적어가 술자리에서 슬쩍슬쩍 곁눈질로 훔쳐보며 건배사를 마치곤 한다.

갑오년 한 해의 끝이 보인다. 한 장 남은 12월의 달력은 마지막 잎새처럼 벽에 달려 있다. 가는 해를 서러워하고, 오는 해를 부푼 기대를 기다리면서 여기저기서 술잔을 부딪치는 송년의 달이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모임에서 건배사 구호를 외치는 일이 흔해졌다.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건배 구호 한두 개쯤은 준비해야 한다. 건배 구호를 모은 책자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건배사를 모은 책이 발간되어 팔리기도 한다.

실제로 광주광역시의 한 간부 공무원은 450여 가지의 건배사와 술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이 공무원은 젊은 시절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 회식 자리 등에서 쓸 건배사를 미리 찾아 수첩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량이 쌓이자 주변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위해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책자로 만들었다.

그는 ‘오바마’(오 바라만 보아도 좋은 마이 프렌드), ‘하쿠나 마타타’(아프리카 스와질리어로 걱정하지 마라, 다 잘될 거야라는 뜻), ‘이멤버 리멤버’(이 모임의 멤버를 기억하자) 등 모임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함축하고 따라하기 쉬운 것을 좋은 건배사로 꼽았다.

  • 연말 술자리가 잦은 만큼 건배사를 권유받을 때가 많다. 건배사는 평소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곤란한 상황이지만 미리 준비한 사람은 주목을 받는다. <사진=데일리한국 자료사진>
최근에는 상황별로 건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어플)도 나왔다. 특히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 평소 갖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스마트폰 어플들은 술자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폭탄주 만드는 비율에 음주량 관리, 건배사 찾기까지, 술자리에 관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정치권, 드라마, 영화 패러디까지 다양한 건배사

건배사가 어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다만 건배는 고대 로마시대 지중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카르타고의 병사가 로마군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에 독을 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후 로마에서는 반드시 건배를 하고 독이 없음을 확인하고 술을 마셨다. 또 종교 시설의 종소리처럼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 건배 구호를 포함한 건배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가 쓰는 건배(乾杯)라는 말은 ‘잔(杯)을 깨끗이 비운다(乾)’라는 뜻이다. 중국과 일본도 발음만 다를 뿐 같은 말을 사용한다. 건배 문화가 독특한 나라로는 러시아가 꼽힌다. 식사 모임에서 보드카를 한 잔 마실 때마다 각자 건배사를 하고 ‘다 드나'(Do dna·다 마시자)를 외친 뒤 잔을 비운다. 건배사가 너무 짧거나 잔을 비우지 않으면 무례하거나 불만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술자리 문화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듯 건배사도 변해왔다. 그래도 가장 사랑받는 구호는 ‘위하여’다. 그러나 이 말이 군사문화에서 나온 충성 구호였음을 아는 이는 적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 군국주의의 소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에도 여당인 민주당은 ‘위하여’로, 야당인 한나라당은 ‘위하야’로 널리 사용했다.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유행했다. 수년 전부터는 이런 단조로운 구호 대신, 유머 섞인 말의 첫 글자를 딴 세 글자 단어 건배 구호가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면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란 뜻을 담은 ‘사. 우. 나.’ 같은 식이다. ‘지금부터 화합하자’면서 ‘지. 화. 자.’를 외치는 경우도 있다. ‘재. 건. 축.’은 ‘재미있고 건강하게, 축복하며 살자’라는 뜻이다.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우아미(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재개발(재미있고 개성있게 발전적으로 살자), 사이다(사랑하자 이 세상 다 바쳐), 주전자(주인의식을 갖고 전문성을 갖추고 자신있게 살자), 나가자(나라, 가정,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이기자(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등도 있다. 물론 '해당화' 등은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가령 부부 동반 모임에서 여성이 남편을 향해 유머를 섞어서 "해가 갈수록 당신만 보면 화가 나"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변사또(변함없는 사랑으로 또다시 만나자), 소나무(소중한 나눔의 무한 행복을 위하여), 대나무(대화를 나누며 무한성공을 위하여), 참이슬(참사랑은 넓게 이상은 높게 슬(술)잔은 평등하게) 같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야기가 담긴 문장을 선창과 후창으로 나눠 외치는 건배사가 늘고 있다. 삼행시 건배사는 직장인들을 순발력과 암기력의 시험에 들게 하는 반면, 이야기 건배사는 문장에 담긴 배경과 정서를 강조해 좌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한 해 동안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나 영화, 예능프로의 대사를 패러디하는 것이 유행이다. 예를 들어 "미생에서"라고 선창하면 "완생으로"라고 구호를 받아 주는 건배사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을 소재로 했다. 또 ‘신에게는 아직’ ‘12병의 소주가’라는 건배사는 영화 ‘명량’을 패러디한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카사블랑카’의 건배사였다. 이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먼과 잔을 부딪치며 속삭인 명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연인을 앞에서 반복했다.

이전까지 인기 건배사의 진원지는 주로 정치권이었는데, 최근에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답게 단결력이나 국가의 성공을 강조하는 건배사가 많다.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소화제’(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 ‘오징어’(오래오래 징하게 어울리자), ‘마당발’(마주 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등이 있다.

민주당에는 호남 출신 의원들이 많은 만큼 사투리가 들어 있는 건배사도 있다. ‘거시기’(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마시자)는 단골 건배사다. 또한 ‘이게 술이여~아니여~그럼 뭐여~정이여’라며 서로 주고받는 건배사도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난해 총선 당시에는 ‘진달래’(진짜 찍어달라면 찍어줄래)가 사랑을 받았다.

포털 사이트와 SNS(소셜네트워크)를 찾아보면 건배사가 숱하게 올라 와 있다. 이를 잘 참고하면 상황별로 건배사를 준비하는 것이 용이하다. 예컨대 부부 동반 모임에서는 여보당신(여유롭고 보람차고 당당하고 신나게), 회식에서는 소화재(소통하고, 화합하고, 재미있게 마시자), 골프장에서는 올버디(올해도 버팀목이 되고 디딤돌이 되자)가 있다. 직원 회식, 송별 모임, 친구 모임, 남녀동반 모임 등 모임 성격 외에도 성공·행복 기원, 사랑·우정 기원, 건강 기원 등 무엇을 기원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건배사가 이어진다.

건배사를 할 때 선을 넘어 '오버'하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오바마는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등의 뜻을 담고 있는데 이를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봐'로 해석되면서 논란을 빚어 곤욕을 치른 고위 인사들이 적지 않다. 2010년 적십자사 부총재는 이 건배사를 잘못했다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여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를 잘못 줄여서 외쳐도 안된다. 경우에 따라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지화자(지금부터 화끈한 자리를 위하여) 단무지(단순 무식하게 지금부터 즐기자) 등도 자리를 가려서 써야 한다.

한편 주류 회사들도 홍보 차원에서 추천 건배사를 내놓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천받은 송년회 건배사를 15일 공개했다. 하이트진로 직원들의 추천 건배사들에는 새양말(새해가 밝아, 양(2015년 청양)이 오고, 말(2014년 청마)이 갑니다), 통통통(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해)와 같이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을 담은 메시지가 많았다. 하이트진로 직원들이 추천한 건배사는 다음과 같다.

- 통통통 : 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 새양말 : 새해가 밝아, 양이 오고(2015년 청양), 말이 갑니다(2014년 청마)
- 오바마 :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길
- 오바마2 : 오빠가, 바래다줄게, 마셔~
- 소화재 : 소통하고, 화합하고, 재미있게 마시자
- 진달래 :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해
- 주전자 :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세요, 자주 봅시다
- 참이슬에는 (아)이유가 있다
- 미생에서, 완생으로
- 술잔은 비우고, 사랑은 채우고
- 오늘은~ 이 잔이 마를 때까지, 내일은~ 승리의 그날까지

'새양말'처럼 양띠 해에 맞는 건배사로는 '양탄자'도 있다. 말 그대로 '양을 탄 사람'이란 뜻이다. 한 스피치업체 관계자는 “건배사는 되도록 짧고 강해야 인상이 남는다”며 “특히 잔을 들고 시작한 건배사가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배사를 제의한 사람의 말이 잔소리로 들려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배사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건배사를 해서 물의를 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밖에도 술 자리에서 자주 쓰이는 클래식 건배사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싸(아끼고 사랑하자)
-원더풀(원하는 것보다 더 잘 풀리는)
-소취하 당취평(소주에 취하면 하루를 가고, 당신에 취하면 평생을 간다)
-새신발(새해에는 신바람나게 발로 뛰자)
-맨붕(맨날 붕붕 뛰어라)
-윈윈! 롱롱!(승승장구)
-미사일(미치도록 사랑하고 일하자)
-고감사(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사리(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
-사우디(사나이 우정은 디질(?) 때까지)
-걸걸걸(더 사랑할 걸, 더 참을 걸, 더 즐길 걸)
-당신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
-고도리(고통과 도전을 즐기는 리더가 되자)
-동사무소(동료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무조건(무지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건승하자)
-CEO(시원하게 이끌어주는 오너)
-의자왕(의욕과 자신감을 갖고 왕창 돈 벌자)
-상아탑(상심 마라 아직이다. 탑이 되는 그날까지)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공을 위하여)
-마무리(마음먹은 대로 무슨 일이든 이루자)
-명승부(명년에는 승진하고 부자되자)
-오행시(오늘도 행복한 시간 되세요)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당신과 함께 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라면은?' '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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