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총수 사면' 거론됐지만 현재는 사실상 무산된 상태몇몇 총수 건강 심각하게 악화…건강 적신호 외부에는 '쉬쉬'재벌가 '총수 구하기'에 전력… 정치권 여론, 청와대 실세 접촉 시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주간한국 송응철 기자] 차가운 겨울, 재벌가 총수들이 고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수감된 신세가 언제 마침표를 찍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수감 중인 재벌가 총수는 역대 최다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재벌 총수 사면론’이 거론됐지만 현재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총수들은 당분간 꼼짝없이 수감생활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수감된 총수 일가들의 측근과 교정당국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최근 총수들의 근황을 들여다봤다. 아울러 ‘총수 구하기’에 나서고 있는 재벌가의 전방위 움직임을 살펴봤다.

수감 중인 총수 일가 누구?

현재 형을 선고받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30대 그룹 총수는 모두 12명이다. 역대 최다수다. 먼저 형을 확정받고 구속된 이는 4명이다. · 형제와 · 형제가 그 장본인이다.

먼저 최태원 회장은 회삿돈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2년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2012년 9월 2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전 부회장과 구본엽 전 부사장은 2012년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구속돼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확정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부친인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가까스로 구속을 면했다.

구치소에 갇힌 채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회장은 두 명이다. 1조3,000억원대 CP를 사기발행한 이른바 ‘동양사태’로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이런 경우다. 현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전 STX 회장도 같은 처지다. 강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 배임·횡령과 2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5월 구속기소됐고, 이후 같은 해 9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건강 문제로 구치소 대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총수도 있다. 과 등이다. 비자금 조성과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된 이 회장은 집안 내력이자 희귀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지난해 8월엔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를 위해 2013년 8월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해야 했다. 4월 한 차례 연장신청이 기각돼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었지만 두 달 뒤인 지난 6월 다시 구속집행정지를 허가받은 뒤 줄곧 외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던 2011년 건강이 악화돼 영등포구치소 지정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았고, 간에 심각한 질환이 발견됐다. 당시 이 전 회장의 주치의는 각종 검사와 외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소견이 내놨다.

이후 이 전 회장은 간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다. 하지만 간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의학적 견해가 나왔다. 이 전 회장은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간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이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된 모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중이다. 올해 87세로 고령인 이 전 상무는 수감생활을 하던 중 급성뇌경색과 치매 등으로 2013년 3월부터 3개월 단위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4번째 형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이후 같은 해 7월 3개월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아냈고, 이후 추가로 6개월 형집행정지가 결정됐다. 이 전 상무는 형기를 3년6개월 가량 남겨두고 있다.

탈세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의 경우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한 차례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고령과 건강 등을 이유로 기각됐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올해 80세인 조 회장은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지난해 초에도 전립선암이 발견돼 지난해 4월부터 방사선과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또 지병인 심장부정맥으로 2013년 10월 입원해 2주 가량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총수 사면론 거론되다 무산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들 총수에 대한 사면론이 거론됐다. 청와대 안팎에서 기업 자금이 풀려야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구속된 기업인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당초 정부는 기업인 사면에 강경모드로 일관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부터 비리 기업인 ‘불관용 원칙’을 천명해 온 때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과 3·1절, 광복절, 성탄절 등에 정치인 및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특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

그런 정부가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 황우여 사회부총리 등 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제인들에 대한 무자비원칙에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강덕수 전 STX 회장. /연합뉴스
청와대 안팎에 따르면 기업인 사면은 크리스마스 직후나 연말에 추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파문’과 ‘조현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업인 사면에 부정적인 여론이 폭증하면서 결국 사면은 해를 넘기게 됐다.

다만 사면은 ‘특사’가 아닌 ‘가석방’ 형식으로 이뤄지리란 전망이 나왔다. 앞서 청와대 내부에선 특사를 통해 사면을 진행할 경우 2015년 총선 정국을 염두에 둔 여당이 본격적인 ‘거리두기’에 나서리란 우려가 만연했고, 이런 걱정을 감안한 판단이라는 전언이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와 구본상 전 부회장 등이 지목됐다. 이들은 모두 ‘형기의 3분의 1을 복역한 모범수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조건부 석방을 결정한다’는 가석방 요건을 채운 인물들이다.

이후 정부와 야당, 법조계, 재계에선 ‘군불 때기’에 나섰다. 최 부총리에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의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 이정현 최고위원, 김태호 최고위원 등 당정 핵심부가 기업인들의 사면·가석방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소하는가 하면 양승태 대법원장도 ‘기업인 역차별’에 대해 언급하고 나섰다. 청와대도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구본상 전 LIG그룹 부회장
그러나 연말을 전후해 ‘실현’ 가능성이 점쳐졌던 총수 가석방은 물거품이 됐다. 현재는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김무성 대표는 “형기를 80% 이상 채우지 않은 기업인을 가석방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렵다”며 가석방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결국 총수들은 당분간 꼼짝없이 구속돼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철창 속 총수들 근황은?

그렇다면 감옥 속 재벌가 총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먼저 A회장의 경우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이다. 현재 구속은 피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수감생활 당시 교정당국에서도 A회장의 건강과 관련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게 하고 사역 또한 최대한 가벼운 일을 시키는 등 A회장의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A회장이 수감 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A회장을 한때 특별사면 대상으로 거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안팎에선 A회장의 사면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A회장 측근에 따르면 당시 정부에선 사면의 대가로 일종의 ‘명분 쌓기’를 요구했다. 특혜 논란 방지는 물론 경제에 기여할 만한 카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유동성이 현저히 떨어져 자금을 움직이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정부는 A회장이 사면 노력을 포기했다고 판단해 결국 무산됐다.

구본엽 전 LIG그룹 부사장
B회장도 건강상태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지속적인 관리 없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으며, 향후 3~4년 간은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B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수감생활이 짧아 현재로선 사면이나 가석방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C회장은 앞서 두 회장과 다르게 비교적 건강을 지키며 수감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변호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회사의 중요 사안을 보고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영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하는 등 왕성한 옥중경영을 펼치고 있다.

다만 C회장은 최근 들어 종종 측근들에게 무릎과 눈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걸 꺼리고 있다. 다수의 총수들이 병석에 누워 구속을 피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자칫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D회장은 다른 이들과 달리 제3자를 통한 구명 노력을 별도로 하지 않고 있으며, 특사나 가석방에도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고 한다. 앞서 일각에선 D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죄질이 좋지 않아 재판부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법무부도 D회장을 풀어줄 경우 국민적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의견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D회장 본인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조용히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평가다.

E회장 역시 구명에는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정부 인사들과 가까웠던 E회장은 최근 ‘사자방(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산업)비리’수사가 진행되면서 연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가중 처벌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총수 구하기' 전방위 나서

총수들이 구속된 재벌들은 전방위로 ‘총수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검찰 등 힘있는 곳에 줄을 대거나 정치권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접촉하고 있다.

A 회장 측은 여권 실세와 청와대 쪽에 선을 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조속한 출소를 위해 청와대 행정관까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B회장 측은 현 정부 ‘친박(친박근혜)’ 인사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B회장 측이 ‘비선 실세’와도 접촉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B회장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C회장 측은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 등 전방위로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중진은 물론,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은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사를 접촉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청와대 실세와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수감된 회장의 재벌가는 공략 타깃을 크게 정치권과 청와대로 나눠, 회사 최고위층은 주로 정치권을 상대하고 법조팀은 청와대 실세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벌가의 ‘총수 구하기’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록 정치권과 정부 일부 인사들이 ‘총수 사면론’을 띄웠지만 박 대통령의 ‘불관용’의지가 워낙 강해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최근 청와대 안팎에서는 일부 총수의 경우 8월 즈음에야 사면이나 가석방으로 출소될 수 있다는 말이 들린다. 빠르면 5월 석가탄신일에 일부 총수가 나올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정치 일정상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