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선포했다 하면 비리 펑펑새 출발 다짐한 지 2개월 만에 수억원대 로비사건 터져 나와청렴대회 가진 지 이틀 만에 뇌물 수수 사건 불거져 당황

[주간한국 송응철 기자]한국전력이 연이은 직원들의 뇌물 사건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윤리경영 선포식을 가진 직후마다 비리가 불거져 더욱 그렇다. 지난해 말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한 지 2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수억원대의 로비사건이 터졌다.

또 이로 인해 청렴대회를 가진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한 번 뇌물 수수 사건이 불거졌다. 한전은 자정활동 강화와 청렴대책을 마련하며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태다. 청렴대회 직후마다 비리가 불거진 전력 때문이다.

비리 수사 중에도 뒷돈 챙겨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14일 뒷돈을 받고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로 전 한전 나주지사장 A씨 등 한전 직원 3명을 구속했다. 법원은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이들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나주지사 재직 시절 전기공사업체로부터 각각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하고 공사계약 과정에서 일감을 몰아주는 등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제3자 뇌물취득이나 뇌물공여 혐의로 한전 관련 업체 관계자 3명도 구속했다.

문제는 이들이 뇌물을 받은 시점이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라는 점이다. 한전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다. 그럼에도 '간큰 직원'들은 여기에 전혀 아랑곳 않고 뒷돈을 챙기는 데 골몰했던 것이다.

특히 한전은 앞서 지난해 12월 나주 본사에서 경영진과 직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렴윤리 다짐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윤리경영을 위한 4개 항목에 서약을 시행하고 결의를 다졌으며, 인사·조달·감사분야에 대한 각종 청렴윤리 과제도 발표했다.

그 직후 뇌물 사건이 터지자 한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전은 사건을 일부 직원의 일탈로 규정하고 지난달 26일 부랴부랴 광주전남지역본부 차원에서 '청렴윤리 자율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사태 파장 확대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날 금품수수를 일벌백계하겠다던 윤리 경영 서약엔 찬물이 끼얹어졌다. 공교롭게도 불과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전 상임감사부터 자회사 팀장까지 업자들로부터 뒷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서다. 한전의 표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해졌다.

윤리경영 선포 직후 뇌물 비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이날 한국전력과 한전KDN,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들이 전기통신장비 납품회사인 A사로부터 3억5,69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 10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06년 설립된 신생회사인 B사는 전방위 로비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총 412억원어치의 납품계약을 따냈다. B사 측은 한전 고위 임원부터 팀장까지 뇌물을 받을 사람의 수요와 취향을 고려한 '맞춤식 뇌물'을 건넸다.

아들이 프로골퍼 지망생인 한수원 본부장 C씨에게는 레슨비와 해외 전지훈련비 2,700만원을 골프 코치 계좌로 입금했다. 또 한전 전력IT추진처장이던 D씨에게는 딸이 수입차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폭스바겐 뉴비틀 승용차를 제공했다.

이외에 자전거 마니아인 한전KDN 팀장 E씨에게는 360만원짜리 독일제 자전거를 선물해주는가 하면, 카 오디오 마니아인 F씨에게는 990만원짜리 차량용 오디오를 설치해주는 등 취미 정보까지 파악한 로비가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비리를 감시하고 직무를 감찰하는 위치에 있던 뇌물 잔치에 가담했다. MB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인 강승철 전 한전 상임감사는 현금 1,500만원과 퇴임 후 타고 다닐 제네시스 렌터카를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 특별감찰반에 파견 근무를 하던 강승관 경정도 이번 뇌물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B사로부터 수사 무마와 경쟁업체를 수사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실제 근무하지도 않은 부인의 월급 명목으로 3,8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내부관리 시스템 부재 지적

한전 납품과 관련한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에는 부사장이 체포된 적이 있었다. 이외에 크고 작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이를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내부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전 나주지사에서는 수년에 걸친 정기 상납을 감사를 통해 적발해내지 못했다. 한전KDN에서는 제품검수·발주 담당자부터 IT사업 총괄책임자까지 금품비리를 저질렀는데도 이를 적발해야 할 상임감사마저 검은돈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를 의식한 듯 한전KDN도 뇌물 수수 사건 공표 직후인 지난 3일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정부패 척결 4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혁신에 돌입했다. 4대 핵심과제는 ▦금품향응 수수 ▦예산의 목적외 사용 ▦인사운영 비리 ▦계약업무 혁신 등이다.

그러나 한전 내부에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 관계자는 "아직 검찰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데다 우연이겠지만 앞서 청렴대회 직후마다 비리 사실이 터져 나와 긴장감이 유지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