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시행된 규제법… 대기업들 철퇴 피해 다양하게 활로 모색삼성·현대차·SK 규제 대상 줄어한진^두산그룹 공정위 판단과 관련법으로 규제 대상 증가해규제 대상 변화없는 기업 다수 내부거래율 희석위해 각고 노력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이달 본격 시행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중 총수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사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매출의 12% 이상인 경우가 공정거래위원회 규제 심의 대상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일가의 부당이익 편취 관행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해당 법안이 시행된 건 지난해 2월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신규 내부거래에만 제동을 걸고 기존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1년간 적용을 미뤄왔다. 대기업들에게 '시정'할 시간을 준 셈이다.

이후 1년 사이 대기업들은 저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탈출을 위한 노력을 했다. 여기엔 계열사 간 사업구조를 재편이나 회사 청산,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렇게 1년 사이, 대기업들의 내부거래 관행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다양한 방법 동원해 규제 회피

개정안은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그룹 총수 일가가 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30% 넘게 보유한 기업이 200억원 이상 또는 매출의 12%에 달하는 규모의 계열사 거래가 있을 경우 제재대상이다. 이를 어기면 매출액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된다.

먼저 재계 맏형인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계열사는 총 1곳이다. 삼성은 이 기간 회사를 청산하거나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규제 대상을 2곳 줄였다. 그러나 그룹 순환출자의 핵심인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은 여전히 타깃으로 남아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분 33.17%를 갖고 있던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8월 삼성종합화학에 흡수하는 방식으로 오너 지분율을 낮췄다. 이후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삼성테크윈 등과 함께 삼성종합화학을 넘기기로 하면서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분 36.69%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던 인터넷 금융 플랫폼업체 가치네트도 지난해 8월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 해산을 결정했다. 가치네트는 이 부회장이 2000년 인터넷·벤처 신사업에 뛰어들며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는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증권·보험·은행 등 모든 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비즈니스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설립 직후 인터넷 거품 붕괴로 큰 폭의 적자를 내면서 사업 정리 수순을 밟아왔고 2005년 이후 서류상 회사로만 명맥을 이어 왔다.

삼성은 앞서 2013년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45.69%)로 있던 삼성SNS를 삼성SDS에 합병시키기도 했다. 삼성SNS는 2012년 기준으로 내부거래 비율이 55.62%에 달했지만 합병 이후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은 11.25%로 낮아졌다.

반면 삼성그룹 비금융 계열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제일모직은 아직 규제 대상인 상황이다. 하지만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넘겨받고 내부거래 성격이 강한 건물관리사업과 급식사업을 사업 이관·분사하는 방식으로 떼 규제망을 피했다.

다만 제일모직 건설 부문은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다. 해당 부문의 내부거래 비중은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안팎에선 예외 요건인 긴급성·보안성 등에 해당하는 공사 물량이 있어 규제 심사에 쉽게 걸리지는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은 11곳에서 8곳으로 축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4월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이다. 합병 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엠코 지분 35.06% 지분을 보유했고, 2012년 내부거래 비중은 61.19%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 간 합병으로 현대엔지니어링으로부터 16.4%의 신주를 교부받아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보유했던 현대엠코 지분은 4.68%와 11.72%로 각각 줄었다. 비상장사 기준 총수일가 지분한도인 20% 미만으로 떨어진 셈이다.

현대위아에 흡수 합병시킨 현대위스코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해 8월에는 정 부회장이 지분 57.87%를 보유한 현대위스코를 현대위아에 합병시켰다. 또 정 부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광고업체 이노션 지분 30%도 모건스탠리PE 등에 매각했다.

여기에 현대글로비스도 최근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지분 블록딜에 성공하면서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왔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 지분 4.8%와 8.59% 등 총 13.39%를 매각했다. 이를 통해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29.99%로 낮아지게 됐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규제 대상에 이름을 올린 계열사가 다수다. 현대오토에버, 이노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등이다. 이들 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이노션이 50%, 현대오토에버 29.1%,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28%, 현대커머셜 50% 등이다.

SK그룹은 지분 매각을 통해 규제 대상이었던 계열사 5곳 중 2곳을 줄였다. 먼저 최신원 SKC 회장은 지난해 3월 사업 부진을 이유로 자신이 보유하던 앤츠개발 지분 91.9% 전량을 부동산 개발업체에 넘겼다. 앤츠개발은 골프장 건립을 위해 2007년 설립된 회사다.

SK텔레시스도 지분 변동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최신원 회장은 자신이 추진한 휴대폰 제조사업이 실패하면서 적자전환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유 지분 39.27% 중 21.98%를 SK텔레시스에 무상증여해 총수일가 지분율을 20% 미만으로 낮췄다.

SK그룹 내에서 규제 대상에 올라있는 회사는 에이엔티에스와 SK C&C, SK D&D 등이다. 이 가운데 부동산개발업체인 SK D&D는 총수일가 지분은 37.36%로 높지만 내부거래비중은 6.9%에 불과하다.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리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SK C&C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 지분이 43.43%나 되는데다 내부거래 비중도 50%에 육박한다. 그러나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어 지분 매각은 어렵다. 매출을 내부거래액 규정인 200억원 이하로 줄일 수도 없다.

증권가에서는 지분 매각보다는 SK C&C가 내부 거래 비중을 줄이면서 결국 SK와 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의 해결은 물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안정적인 지배력 확보를 위한 방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비상장사인 한화관광을 지난해 12월 청산하면서 규제 대상 계열사가 5곳으로 줄었다. 지주사인 한화와 광고회사인 한컴, 경비업체 에스엔에스에이스, 화학물질 판매업체 태경화섬, IT서비스업체 한화S&C 등이다.

이들 기업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한화S&C다. 현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가 지분 50%를, 차남 김동원 디지털팀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가 각각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 기준 내부거래율은 55% 수준이다.

한화S&C는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회사다. 한화S&C의 덩치를 불려 한화와의 합병을 통해 그룹을 승계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게 회자된다. 한화S&C가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낮춰 규제를 피하지는 않으리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한화S&G 역시 지분 매각보다는 규제의 예외 조항을 중심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공정위는 보안성에 위험이 인정될 경우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해준다. 한화S&C는 그룹 계열사의 IT인프라 구축 등 그룹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이다.

규제 대상 늘어난 곳도

이처럼 규제 대상을 줄인 그룹이 있는 반면 늘어난 곳도 있다. 한진그룹과 두산그룹이 바로 이런 경우다. 물론 이들 그룹은 모두 의도적으로 회사를 늘린 건 아니다. 관련법이나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 불가피하게 규제 대상에 올랐다.

먼저 한진그룹은 규제 대상 기업이 1곳이 늘어 모두 5곳이 됐다. 규제 대상 리스트에 새로 이름을 올린 회사는 유수홀딩스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자녀들이 보유한 유수홀딩스 지분이 2013년 말 16.59%에서 올해 초 36.11%로 늘어난 결과다.

그러나 유수홀딩스는 이미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된 상태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한진해운 지분 전부를 한진그룹에 매각하고 한진해운홀딩스에서 유수홀딩스로 사명을 교체했다. 앞서 대한항공과 한국항공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유수홀딩스를 한진그룹의 일원으로 판단했다. 이들 기업이 '한집안' 회사라는 이유에서다. 최 회장의 남편인 고(故) 조수호 회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조 회장이 최은영 회장의 시아주버니가 되는 셈이다.

이밖에 한진그룹은 앞서 규제대상이던 사이버로지텍과 사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정석기업 등 4개 기업에 대해서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항공 물류와 관련된 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 비상장 기업이다.

두산그룹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이 1곳 늘어 총 4곳이다. 두산, 네오홀딩스, 네오플럭스, 빅앤트 등이다. 이 중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대표가 설립한 광고대행사 빅앤트는 지난해 초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그룹에 합류됐다.

이로 인해 두산그룹은 기존의 오리콤을 포함해 두 개의 광고 계열사를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박 대표가 설립한 회사이기 때문에 지분율 변동은 없다. 오리콤은 광고 제작을, 빅앤트는 브랜딩 및 아이디어 콘텐츠 중심의 비광고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LG·롯데·GS·CJ 등 변화 없어

LG그룹은 규제 대상에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구형모씨가 소유한 지흥의 경우 2013년 내부거래 물량을 전년 동기보다 30% 가량 줄이면서 내부거래비중을 15%까지 낮췄다. 이로 인한 매출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가전 센서시스템 업체인 센시스를 인수했다.

CJ그룹도 규제 대상 계열사 수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규제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0월 규제 대상인 CJ시스템즈를 CJ올리브영과 합병시키면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보유한 CJ시스템즈 지분 31.88%는 20% 초반대로 희석됐다.

롯데그룹도 규제 대상에 속한 계열사가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한국후지필름 등 4개로 변동이 없었다. 영화관 매점사업체인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 부동산 임대업체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최대주주다.

신 이사장은 시네마통상 지분을 28.3% 소유하고 있고, 시네마푸드와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지분은 각각 33.06%, 55% 지니고 있다. 한국후지필름은 신동빈 회장이 지분 22.08%를 가지고 있다. 2013년 내부거래액은 전체 매출 714억 원의 3.5%에 그쳤다.

GS그룹도 마찬가지다. 다만 제제 대상이 모두 18개로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다. 담배유통업체 옥산유통, 전기·환경설비업체 GS네오텍, 코스모산업 등 대주주 일가가 소유한 방계 회사들을 중심으로 10개가 제재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이 다양한 방법으로 내부거래 비율과 총수 일가족 지분율을 감소시켜 규제대상에서 빠져 나가게 됐다"며 "하지만 내부거래 규모 자체가 줄거나 총수 일가족의 지분가치가 감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또다른 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