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재계 전방위 사정… 칼끝 MB정권 향해 있나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신호탄… 일사천리로 재계 사정 확산
신세계·롯데·동부·동국제강·SK건설·금호·경남기업 등 타깃
친 MB정권 기업 많아 뒷말 무성… 정치권도 불똥 튈까 긴장
재계 총수 줄소환 가능성도… 기업들 바짝 엎드려 사태 파악 중

재계가 떨고 있다.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사정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어서다. 상황은 '속전속결' 한마디로 요약된다. 2013년 CJ그룹 수사 이후 사실상 2년 만에 기업수사를 재개한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이번 사정정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나서 부정부패 근절을 강조하며 시작됐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결과라거나, 지난 정권의 잔재 청산을 위한 행보라는 등의 분석도 나온다.

사정정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반대로 뒤집어 보면 향후 수사가 더욱 확산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다음 타깃이 되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검찰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기업비리 첩보 역시 상당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포스코건설 신호탄으로 확산

시민단체가 포스코 본사 앞에서 정준양 전 회장 비리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검찰의 전방위적 기업수사는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으로 시작됐다. 이 회사 임원들이 베트남에서 현지 하도급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런 사실이 적발된 건 지난해 7월 내부감사를 통해서다. 감사실은 이를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에 보고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인사위원회도 개최하지 않고 지난해 8월 두 임원을 보직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봉합했다.

포스코 안팎에선 비위 관련자에게 합당한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사건은 결국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청와대가 움직였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며 직접 관계 기관에 조사를 지시했다.

그 직후 검찰은 포스코건설 비자금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13일에는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포스코건설 10여명의 전·현직 임원과 실무자들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사건 당시 사장이던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도 소환할 방침이다. 그 다음 차례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다. 검찰은 포스코가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MB정부 실세들이 압력을 행사해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중점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다.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사정 칼바람 전방위로 진행

포스코건설 수사에서 촉발된 사정 칼바람은 순식간에 재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검찰은 지난해까지 6개월에서 2년여 동안 내사 단계에 있던 기업들에 대한 자료들을 이달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총수 일가의 비자금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대표적인 사정 대상 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최근 신세계 총수 일가의 계좌 추적에 나섰다. 신세계는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70억원 상당의 당좌수표를 물품 거래 대신 현금화해 총수 일가 계좌에 일부 입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대주주가 법인 재산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이는 지난해 금융 당국이 포착해 검찰에 통보했던 사안이다. 앞서 지난해 5월 검찰은 신세계 내부에서 거액의 수상한 뭉칫돈이 움직인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벌여 왔다. 검찰 주변에서는 신세계가 강남 센트럴시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에 대해서도 눈여겨보고 있다는 애기가 들린다.

롯데그룹도 타깃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2011년에서 2012년 사이 롯데쇼핑에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시네마로 수십억원대의 용처 불명의 자금이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자금이 모두 현금으로 인출된 사실도 파악했다.

해당 사건은 서울서부지검에서 내사를 진행해오다 지난해 롯데홈쇼핑 납품비리 수사 당시현재 수사팀으로 재배당됐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6월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를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한 뒤 이번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 왔다.

동부그룹에도 검찰의 칼이 정조준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흐름을 추적해 왔다. 2010년부터 2013년 사이 김 회장 계좌에서 자녀들 소유로 의심되는 계좌에 수십억원이 송금된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해당 자금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식 매입대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회장의 자녀인 남호씨와 주원씨는 2010년 제조업분야 주력 계열사인 동부팜한농 주식 212만7,000주(3.33%)와 78만주(1.22%)를 150억원과 55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검찰은 또 김 회장의 동서인 윤대근 동부CNI 회장에 대해서도 회삿돈 10억원을 빼돌린 단서를 잡고 사실을 확인 중이다. 검찰은 윤 회장이 동부하이텍 대표이사로 있던 2005년부터 2008년 사이 회삿돈 수억원을 주기적으로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은 동국제강에도 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미국 현지 납품업체로부터 110억원을 미국법인 계좌를 통해 받은 뒤 그중 수십억원을 손실처리하고 빼돌렸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장 회장이 해당 자금을 도박에 사용한 정확도 포착됐다. 검찰은 미국 금융·수사 당국으로부터 장 회장이 미국의 여러 도박장에 출입해 거액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하면서 여러 차례 돈을 따 총 50억원가량의 도박 수익을 얻었다는 자료를 넘겨받았다.

이외에도 검찰은 동국제강이 당진제철소 건립 과정에서 건설비를 과다 계상했다는 의혹, 부산에서 진행한 사업 과정에서 홍콩법인에 보낸 거액의 회사자금의 용처를 둘러싼 의혹 등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 의혹들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SK건설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요청해 SK건설의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의 고발 요청에 공정위가 반드시 응하도록 한 '의무 고발요청권' 제도가 2013년 만들어진 이후 첫 행사 사례다.

공정위 조사 결과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에는 SK건설 외에도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등 11개 업체가 가담했다. 이를 통해 SK건설은 동진3공구를 1,038억원에, 현대산업개발과 한라건설은 동진5공구와 만경5공구를 각각 1,056억원과 746억원에 낙찰받았다.

공정위는 지난 2일 SK건설에 과징금 22억6,400만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그러나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이후 공정위 심의위원회의 의결서를 검토한 결과 SK건설에 대한 기소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김진태 검찰총장 명의로 고발을 요청했다.

거액의 경쟁 입찰에 '들러리' 업체를 끌어들이는 등 담합을 주도했고, 공정위의 조사에 자진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공정위는 검찰의 요청을 수용하고 지난 12일 SK건설을 고발했다. 이로 인해 SK건설도 검찰의 사정대상에 오르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돈기업'인 동아원의 자사주 매각과 관련 주가 조작 혐의를 수사 중이다. 동아원은 2013년 검찰의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의 비자금 추적 조사 당시 비자금 유입처로 의심돼 집중 수사를 받은 바 있다.

경남기업도 MB정부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남기업과 석유자원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성완종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회사다.

경남기업은 2000년대 후반 한국석유공사와 아제르바이젠 이남과 러시아 캄차카 등에서 석유 탐사 사업에 뛰어들었다. 검찰은 3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이 사업 과정에서의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경남기업과 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검찰은 지난해 고발된 금호아시아나그룹 비자금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납품 단가를 부풀리거나 허위 매출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기획사정설…기업들 바짝 긴장

이번 재계에 대한 전방위 사정은 청와대발 기획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발언 직후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 캐비닛에 쌓아둔 기업 수사자료를 꺼내든 때문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사 속도만 봐도 그렇다.

반면 검찰은 선을 긋고 있다. 부서별로 배당된 사건일 뿐 큰 의미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특수 수사의 특성상 갑작스런 강제 수사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기업 오너들의 줄소환이 재연되지 않겠느냐는 추측과 우려가 무성하다.

앞서 2013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초 사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횡령 배임 사건을 시작으로 효성·동양·KT·STX·웅진 등 기업 오너 수사가 줄을 이었다. 이후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해 '환부 도려내기식 기업 수사'를 강조하면서 잠시 기업 수사는 주춤했다.

여기에 세월호 사건 이후 민관 유착 비리에 수사가 집중되면서 지난해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검찰은 본격 칼을 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부패의 뿌리를 들어내야 한다"며 힘을 실었다.

이번 사정 정국의 종착역이 MB정부 인사의 잔재 청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포스코와 이 전 대통령 측근들 사이의 유착관계와 관련한 설들은 그동안 무수했다. 이번 수사의 핵심이 정준양 전 회장과 MB 측근들과의 유착관계라는 게 사정기관 안팎의 정론이다.

우선 정 전 회장은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 때부터 MB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의 개입설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포스코그룹이 무리하게 계열사를 인수합병 하는 과정에서 박 전 차관 등 MB정권 실세들이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도 이미 제기된 상태다.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 역시 MB정부 주요 인사들의 비리와 무관치 않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 제2롯데월드 사업허가를 따내는 등 대표적인 MB정부 유착기업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박근혜정부 1번 사정대상으로 번번이 거론돼 왔다.

경남기업을 비롯한 자원외교 관련 수사는 이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제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대표적인 친이계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또 친이계의 '큰형님' 격인 이상득 전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밖에도 다른 대기업들의 비자금 관련 수사도 결국에는 정치권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례들을 돌아보면 자금 흐름을 따라갈 경우 최종 목적지는 결국 정권 실세나 고위 관료들로 연결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사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매 정권 집권 3년차엔 빠짐없이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집권 중반기에 나타나는 장악력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 사정기관을 동원한 드라이브로 국정 동력 회복에 나서온 때문이다.

청와대는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일관되게 추진해온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의 행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공공기업 정상화의 연장선상에서 민간 대기업도 낡은 비즈니스 관행을 고쳐보자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기업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 기업들에 대한 수사 외에도 MB정부 당시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합수단의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어 사정 불똥이 어디로 튈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사정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은 기업들도 잔뜩 몸을 웅크리고 상황을 여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재계 안팎에선 벌써부터 사정 대상에 포함될 기업들의 리스트도 떠돈다. 기업들은 저마다 사내 정보라인을 총동원해 첩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밝힌 가운데 재계를 겨냥한 검찰 수사의 속도와 범위가 재계와의 전면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며 "재계에서는 과거 전면전식의 특수수사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