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계 호령하던 '회장님'… 인생 2막은 어디서?장진호 회장 심장마비 사망… 신명수 회장도 재기에 실패최순영 회장 종교생활 심취… 최원석 회장 교육업계 활동김우중 회장 '활로' 모색

왼쪽부터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별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몰락한 재벌그룹 총수들의 근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때 재계를 호령하던 경영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낼까. 장 전 회장처럼 재기에 실패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새로운 분야에서 인생 후반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또 재계를 떠나 두문불출하거나, 경영실패의 책임을 안고 수감생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재기의 꿈' 못 이루고 별세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동안 해외를 떠돌며 생활한 장 전 회장은 재기를 모색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재기의 꿈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두꺼비 소주'로 유명한 진로그룹의 모태는 장학엽 창업주가 1924년 평안도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이후 진로는 1965년 생산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 당시 점유율 65% 이상을 차지하던 삼학소주를 제치고 소주시장 1위를 차지했다.

1988년 진로그룹 회장에 취임한 장 전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하고 급격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광고·유통·건설·제약·식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처럼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진로그룹은 1996년 2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9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왼쪽부터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그러나 무리한 외형확장은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 1997년 'IMF 사태'로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돼 부도처리되면서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됐다. 이후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은행과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고 전해진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도 장 전 회장과 비슷한 경우다.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지난해 8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 전 회장은 선친인 고(故) 신덕균 창업주가 설립한 신동방에 입사해 1989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이끌어왔다.

신동방그룹의 위세는 1990년 신 전 회장의 딸 정화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와 결혼하면서 극에 달했다. 그러던 1995년 신동방그룹이 대검 중수부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에 연루되면서 사세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신 전 회장은 1997년엔 대농그룹의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당시 계열사들과 우호세력이 투입한 자금은 2,000억원대에 달했다. 그러나 전경련의 지원을 받은 대농의 방어로 인수는 불발에 그쳤고 자금난에 처하게 됐다.

신동방그룹은 1999년 결국 워크아웃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2002년 경영 정상화 작업을 자율 추진으로 전환하면서 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이후 부인과 아들을 통해 하이리빙 경영에 관여하며 부활을 꿈꿨지만 끝내 과거의 명성은 되찾지 못했다.

왼쪽부터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자유인으로 '인생2막'

재계를 떠나 새로운 분야에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최 전 회장은 할렐루야 교회 원로장로를 맡아 다양한 종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최성모 창업주로부터 1976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신동아그룹이 무너진 건 1999년 최 전 회장이 국내 4개 은행으로부터 수출금융 등의 명목으로 1억8,500여만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이중 1억6,500여만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되면서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최 회장의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신동아그룹 주력 기업이던 대한생명은 100% 정부 소유로 넘어갔고 결국 경영권도 잃고 말았다. 법원은 2006년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원을 확정 판결했다.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집행은 면제됐지만 추징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때문에 연말마다 공개되는 전국 고액 체납자 명단에도 최 전 회장은 매년 이름을 올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최 전 회장은 자기 자신이 '빈털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임병석 전 C&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교육분야에 전념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공산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7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 학내 기업이 제작하는 영화 '굿바이 테러리스트' 총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동아그룹은 주력사이던 동아건설이 외환위기 당시 부실에 빠지면서 그룹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1998년 동아그룹은 국내 최초로 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한때 재계 10위 자리를 지키던 그룹은 산산이 흩어졌다.

대외행보 자제 '은둔형'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도 적지 않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그렇다. 이렇다 할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일가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김 전 회장 앞으로 된 재산이라곤 전직 국회의원 자격으로 지급되는 120만원이 전부다.

1975년 선친인 김성곤 창업주의 갑작스런 별세로 31세의 나이에 지휘봉을 맡게 된 김 전 회장은 쌍용그룹의 '제2성장'을 이끌었다. 김 회장이 지휘봉을 쥐고 20년 후인 1995년 매출은 192배인 15조원대까지 급증했다. 한때 재계 서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쌍용그룹의 몰락은 자동차사업 때문으로 분석된다. 해당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하다 1997년 외환위기에 발목이 잡혔다. 그 결과 주축을 이뤘던 쌍용건설과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 STX그룹의 모태 쌍용중공업 등이 모두 그룹에서 분리됐다.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도 공식석상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다만 지난해 11월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참석했다. 아들 박재범 대표가 운영하는 와인업체 금양인터내셔날의 신제품 테이스팅에도 이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태그룹은 1997년 재계 24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전자와 비식품분야로 사업확장을 위해 인켈과 나우정밀을 인수하는 등 과도한 투자와 미진금속을 모태로 설립한 해태중공업에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고, 결국 부도를 면치 못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오랜 은둔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다. 김 전 회장은 1998년 대우그룹을 삼성과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려놨다. 그러나 내실을 외면하고 외환위기에도 외부차입을 통한 기업확장을 계속하다 자금난에 몰렸다.

그러던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맛봤다. 이로 인해 김 전 회장은 22조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이후 베트남으로 도피해 은둔생활을 하다 2005년 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았고 이듬해인 2006년 징역 8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007년 대통령특사로 사면돼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해외에서의 동향만 간간이 전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오랜 침묵을 깨고 자서전을 발간하고 대우그룹이 정권의 기획된 해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횡령죄로 3년형을 받고 항소심 재판 중이던 2007년 일본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도주해 현재 독립국가연합에서 숨어 지낸다고 전해진다. 정 전 회장은 국세와 지방세를 2,225억원과 25억원 각각 체납 중이다.

한보그룹은 1995년 재계 24위의 재벌이었다. 당진제철소 건립을 위해 차입한 자금이 문제였다. 2조2,800억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제철소 건립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서면서 1997년 한보는 최종 부도처리됐다.

그 직후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정 전 회장과 정관계의 유착이 드러났다. 이후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5년5개월을 복역하다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 간 뒤 현재까지 생사 여부조차 불명인 상태다.

수감 생활 중인 총수도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이도 있다. 임병석 전 C&그룹 회장의 경우 현재 만기 출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임 전 회장은 500만원으로 설립한 칠산해운을 모태로 계열사 41개, 재계서열 71위의 그룹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임 전 회장은 수천억대 비자금조성과 정관계 로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임 전 회장은 2011년 1심에서 징역 10년, 항소심에서 징역 7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서울고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올해가 형기 만료다.

임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자수성가형'인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같은 신세다. 강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 배임·횡령과 2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5월 구속기소됐고, 이후 같은 해 9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2001년 쌍용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설립된 STX그룹을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리며 한때 재계 11위에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에 주력사업이던 조선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룹은 주저앉고 말았다.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1조3,000억원대 기업어음(CP)을 사기발행한 이른바 '동양사태'로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는 상태다. 현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동양그룹은 만기를 앞둔 회사채와 CP를 상환하지 못하고 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주요 계열사 및 보유자산을 처분했다. 이로 인해 한때 재계 38위이던 동양그룹은 순위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