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중형주의 "해도 너무했다"이선애 여사 각종 질병으로 감옥과 병원 오가다 사망투병 중인 이호진 전 회장 빈소도 못 지켜 안타까움최태원 형제 구속 '가혹'

고(故) 이선애 여사(전 태광그룹 상무)가 최근 병원과 감옥을 오가다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사법부와 검찰에 역풍이 불었다. 고령에 중증 치매환자인 이 여사에 지나치게 가혹한 법적용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사법치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됐다. 중죄를 지은 재벌가 총수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모습에 국민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유전중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유전무죄'가 '유전중죄'로

고(故) 이선애 여사는 의류사업으로 자금을 모아 남편인 고(故) 이임용 전 태광그룹 회장이 1950년대 회사를 창립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1962년부터는 회사 이사직을 맡아 재무업무를 총괄했고,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자택에서 업무를 보며 그룹 내에서 '왕상무'로 통했다.

이 여사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06년 쌍용화재 인수 특혜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고, 2010년 수천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출두했다. 이 일로 이 여사는 아들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함께 2011년 기소됐고 이듬해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구속 당시 이 여사의 나이는 84세였다. 이 여사는 고령에 숙환으로 각종 합병증을 앓았다. 치매에 고령성 뇌경색, 대동맥류 허리뼈 골절 등이 복합됐다. 특히 이 여사의 치매는 중증이었다. 자신이 왜 교도소에 왔는지도 조차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교정당국과 정부도 이 여사의 건강상태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게 하고 최대한 가벼운 사역을 시키는 등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청와대도 한때 이 여사의 특별사면을 고려한 바 있다고 전해졌다.

이 여사는 치료를 위해 구속집행 정지를 받았으나 검찰의 재수감 요청으로 지난해 3월 다시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3개월만에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한 뒤 이후 내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 10여개월만에 세상을 등졌다.

이 여사의 별세 소식에 기업인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후 검찰이나 판사들이 대기업 오너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선 엄격하게 처벌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이젠 '유전중죄'로 변질된 형국이다.

실제 박근혜정부 들어 법을 위반한 기업인은 예외없이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법의 영역까지 형사범죄로 처벌하는가 하면, 경영판단까지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고, 털어도 나오지 않으면 별건수사로 엮어 넣는 무리한 수사가 진행됐다.

그야말로 먼지 날 때까지 터는 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이런 가혹한 수사의 피해자라는 평가다. 성 전 회장도 당초 자원비리 혐의가 나오지 않자, 국고보조금 횡령 혐의란 별건수사로 괴롭게 한다고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또 일반인 범죄자들에겐 감형이나 사면이 행해졌지만 기업 총수들에겐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선 시절부터 비리 기업인 불관용원칙을 천명해 온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과 3·1절, 광복절, 성탄절 등에 기업인에 대한 특사를 한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

한때 기업인 사면이 논의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인이라고 특혜를 받아선 안 되지만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렵 불거진 '땅콩회항'과 성완종 특별사면 논란 속에 사실상 없던 일이 돼버렸다.

환자 구속과 집행정지 오가

여기에 이 여사처럼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된 기업인까지 무리하게 구속시킨 경우도 적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구속과 구속집행정지를 오가며 생명을 위독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이 여사의 장남 이 전 회장이 그런 경우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구속 직후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간의 4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3주일 뒤 다시 법정에 섰다. 간암으로 간을 절제하면 5년 내에 재발할 확률이 75%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은 현재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이 때문에 모친의 상가를 지키지도 못했다. 주치의가 절대적인 안정을 요한다며 이 회장의 병원행을 막았다. 이 전 회장은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구치소로 향해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 회장은 현재 형집행정지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 회장은 2013년 8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중환자다. 수술 이후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계속 면역 억제제를 투약하는 과정에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특히 이 회장이 수감되면 교도소 내 위생문제와 다른 재소자와의 공동생활로 감염우려가 높았다. 장기간 수감되면 치명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한때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자칫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이 회장은 희귀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도 앓고 있다. 손발의 근육이 점점 약해져 심하면 걷지 못하게 되는 등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오는 병이다. 이 병의 근본치료법은 없고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만 있어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총수 가족 동시 구속도

또 총수 가족을 동시에 구속시켜 기업경영에 차질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간 법원·검찰에서 '가족을 동시에 처벌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과거 기업인 수사의 경우 부자나 모자 형제 중 한사람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른 가족들은 경영을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여사는 이례적으로 아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최재원 부회장 형제가 이런 경우다. 역시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최태원 회장 형제는 그룹계열사 자금을 투자용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은 400억원의 회사자금을 유용했다가 이를 이자까지 쳐서 변제했다. 피해본 사람도 회사에 손실도 없었다. 그럼에도 형제가 총 7년6개월 선고받은 건 가혹하다는 견해가 많다.

또 LIG그룹에서는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구자원 회장은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장남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 중이다.

현재 총수가 구속수감 중인 한 기업의 관계자는 "현재 검찰과 재판부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재벌가 총수들에 중형주의로 일관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재벌가 총수라고 해서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