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상당수 외국인 지분 많아 "작정하면 답없다"엘리엇 작정한 프로젝트?… 삼성전자도 위험할 수도2000년대 이후 공격 늘어 현대모비스와 SK텔레콤도외국인 지분 많아 위험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합병 비율을 문제 삼으면서다. 삼성물산은 물론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문제는 이처럼 외국계 자본의 간섭 위험을 안고 있는 기업이 삼성물산뿐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지배구조에 취약성을 안고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재계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제2·제3의 엘리엇'이 이어지진 않을가에 대한 적지 않은 우려가 나온다.

외국 자본 공격에 상처만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3대주주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비율(1대 0.35)이 주주들의 이익과 배치된다며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원에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엘리엇의 반발 이후 네덜란드 연기금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시점에 합병이 결정됐다는 시선과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현재 엘리엇은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엘리엇이 물밑에서 다른 외국계 투자자들을 규합하는 등 '표집결'에 나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율은 33.08% 수준에 달한다.

이번 일로 삼성그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자칫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재용 체제' 전환을 위한 그룹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계열사간 합병이나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삼성그룹도 우호세력 결집에 적극 나섰다. 국내외 펀드는 물론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자자들까지 접촉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그룹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이 총동원될 예정이다. 과거 헤지펀드의 공격에 막대한 비용을 치렀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번 사태에 대해 증권가 안팎에선 엘리엇이 3세 승계 과정이 진행 중인 삼성그룹을 타깃으로 준비한 일종의 '프로젝트' 아니냐는 견해가 나온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한 시점이 올해 증권가에서 삼성의 합병과 관련한 루머가 돌던 때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엘리엇은 이때부터 합병 발표 직전까지 삼성물산 지분 4.95%를 확보하고, 발표 이후인 지난 3일 추가로 2.17%를 매입했다. 엘리엇이 '작정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국내 대기업의 외국계 자본의 공격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물산은 이번 사태에 앞서 2004년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지분 5%를 사들여 우선주 소각을 요구하면서 경영 분쟁에 휘말려 총성없는 전쟁을 치렀다. SK그룹도 '소버린 사태'로 홍역을 치렀고, KT&G도 외국계 자본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외국인 투자자와 대기업 간 분쟁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대거 개방됐고, 국내 대기업이 외국인 주주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요구 등 경영 간섭을 피하기 어려워진 때문이다.

여기에 총수가 소량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국내 특유의 지배구조도 공격의 여지를 주고 있다. 총수의 이익이 다른 주주나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외국계 기관투자가가 지분을 대량 매집해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 언제든 분쟁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분쟁은 국내 기업의 상처뿐인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삼성-엘리엇 사태'로 국내 지배구조의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위험군 속한 대기업 어디?

실제 국내 대기업 가운데 외국계 자본의 지배력이 눈에 띄는 곳이 적지 않았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 96곳 중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총수와 우호세력의 지분을 웃도는 기업이 16개사에 달했다. 전체의 17% 수준이다.

이 가운데는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승계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기업도 일부 포함돼 있다. 향후 외국계 자본이 작정하고 공세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외국인 자본이 공조할 경우 경영권 분쟁마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먼저 삼성그룹은 핵심사인 삼성전자가 이런 경우다. 총수 우호지분이 29.57%인 반면 외국인 보유 지분은 51.82%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삼성SDS와의 합병설이 제기돼 온 바 있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다시 한 번 외국계 자본의 공격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완료하면 이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8%대까지 올라가 실효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걸림돌은 삼성전자의 대주주가 금융사인 삼성생명(7.2%)이라는 데 있다.

향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등에 따라 의결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 수순으로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설이 제기된 바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SDS 지분 17.08%를 보유하고 있고, 이 부회장도 지분 11.26%를 갖고 있어 제일모직·삼성물산에 이어 삼성SDS·삼성전자 합병까지 마무리되면 오너일가는 삼성전자 지분 10% 안팎을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삼성SDI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도 29.25%로 계열사 등 우호지분보다 8.75%포인트 높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에스원의 우호지분도 31.60%로 외국 보유지분인 47.82%보다 16.22%포인트 적었다.

이밖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도 외국인 보유 지분이 39.09%로 우호지분(18.53%)의 배를 넘는 수준이다. 삼성화재도 외국인 보유 지분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51.37%에 달해 총수와 우호 지분 30.94%보다 20.43%포인트 많았다.

현대차ㆍSKㆍ그룹 3개사

현대차그룹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 3곳의 외국인 지분이 우호지분보다 많다. 우선 경영권 승계의 핵심기업으로 통하는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50.16%에 달한다. 우호지분인 30.17%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현대모비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지분 23.2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통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가 제기된 바 있다. 이와 맞물려 현대차그룹이 일부러 현대모비스 주가를 억누른다는 불만이 높았다. 현대모비스 주가가 낮은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는 연말에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현대모비스는 자사주매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시가배당률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1.78%와 1.91%였지만 현대모비스는 1.27%에 불과했다. 향후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할 소지가 있는 셈이다.

이밖에 현대자동차는 외국인 지분이 44.44%로 우호지분인 31.96%보다 12.48%포인트 많았다. 기아차동차는 우호지분율이 36.71%로 3개사 가운데 가장 높았지만 외국인 지분율(38.44%)에는 일부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SK그룹은 앞서 2003년 'SK-소버린자산운용 사태' 이후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해 그룹 전체 경영권은 안정됐다. 사태 당시 소버린은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법정공방까지 벌인 바 있다.

그러나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SK텔레콤(우호지분 37.37%-외국인 보유지분 44.55%)과 SK하이닉스(21.09%-53.29%), SK이노베이션(33.97%-35.52%) 등 3개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여전히 높다. 특히 SK텔레콤은 향후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관련한 시나리오에 등장한다.

SK합병지주회사가 IT서비스 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보유하게 되는 IT서비스 자회사 지분을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과 맞교환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계 자본이 주주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기를 들 수도 있다.

이외에 LG그룹에선 LG화학(34.08%-39.11%)과 LG상사(12.20%-13.17%), 실리콘웍스(34.25%-39.42%) 등 3개사가 외국인 지분이 우호지분보다 많았다. GS그룹에선 GS홈쇼핑(34.93%-40.13%)이 지배구조상의 취약점을 안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이후 국내 주요 기업 상당수가 지배구조 개혁 과정에서 외국계 자본의 공격에 노출된 상황"며 "제2·3의 엘리엇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막대한 국부유출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