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동빈호' 출범 임박… 안갯속 곳곳에 '암초'…, 순항 불투명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 장악 속도… 日롯데홀딩스 통해 롯데 지배 노려
신동주 반격 나서… 신동빈 L투자 대표 자격 문제화 소송 준비
정치권ㆍ사정기관 롯데 전방위 압박… '사면초가'신세 가시화
"롯데는 일본 기업" 반(反)롯데 정서 확산… 실적 추락 조짐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신 회장이 한국 롯데 계열사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대주주인 L투자회사 대표로 이름을 올린 데다 경영권 향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이 신 회장 쪽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신 회장 또한 세 차례의 사과를 통해 롯데그룹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신 회장이 롯데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고, 출범을 앞둔 롯데 '신동빈호'의 앞날 또한 불투명하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격에 나서 신 회장의 경영권 장악에 제동을 걸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ㆍ금융감독원ㆍ검찰 등 감시기관이 롯데를 압박하고 있으며, 반(反)롯데 정서가 확산되는 등 곳곳에 암초가 가로막고 있어서다.

과연 롯데 '신동빈호'가 닻을 올리고 순항할 수 있을지 혼돈의 롯데를 짚어봤다.

신동빈 유리한 조건…신격호ㆍ신동주의 반격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롯데 경영권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롯데그룹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며 한국과 일본 롯데를 이끄는 '원 리더(One leader)' 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하려는 행보였다. 또 호텔롯데 상장을 시사함으로써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혁을 피력했다.

신동빈 회장은 대외적 활동 외에도 안으로 후계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일본롯데의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고 '친 신동빈파' 이사진들의 지지로 주주총회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신 회장 측은 한국과 일본 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의 과반수를 확보했다고 말한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광윤사 지분 27.65%를 얻지 못하더라도 나머지 70% 이상을 신 회장이 이미 확보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또 롯데 측에 의하면 신 회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전체 이사진 7명 중 5명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실질적 대표인 광윤사의 롯데홀딩스 지분 33%를 포함해 약 65%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윤사의 지배구조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까지 두 형제 중 누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할지 속단하는 것은 이르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에게 유리한 패는 또 있다. 어머니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의 지지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L투자회사와 광윤사 지분을 상당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쓰코 여사는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 심판 역할로 거론돼 왔다. 하쓰코 여사가 장남(동주)과 차남(동빈)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롯데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가문의 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쓰코 여사가 이미 차남에게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부인인 시게미쓰 미나미씨는 일본 왕실의 며느리 후보로도 거론됐던 만큼 명문가 출신이다. 향후 롯데가 일본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선 막강한 집안 출신의 아내를 둔 차남이 더 유리하다고 하쓰코 여사가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신동빈-신동주 간 후계 싸움의 절정은 오는 17일 열리는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다. 일본롯데홀딩스는 한국과 일본 롯데 그룹의 지배구조 꼭대기에 올라 있는 회사다. 이 날 주주총회에서 롯데 측은 사외이사 선임의 건을 포함해 경영 투명성 개선을 위한 여러 안건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이 됐던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사안은 이번 주주총회 안건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참여연대, 전국유통상인연합회등시민단체 회원들이 12일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롯데그룹에 대한 전국적인 불매운동을 경고하며 최근 경영권 분쟁에 대한 사과와 골목상권 독점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롯데그룹에 따르면 그동안 신 전 부회장이 주장해 온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여섯 명에 대한 해임안 또한 상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주주총회 소집을 통해 주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신동빈 회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신동주 전 부회장보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만약 별 이의 없이 주주총회가 끝난다면 신 회장은 한ㆍ일 양국을 어우르는 롯데의 '원 리더'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주주총회를 소집하고 공식 사과를 통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지난 7일 일본 출국 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일 일본 법무성에 L투자회사 12곳 가운데 9곳(L1·2·3·7·8·9·10·11·12)에 대해 이의신청 성격의 새로운 변경 등기 신청이 접수됐다. 신동빈 회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 예고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위임장을 첨부해 접수한 것이다. 등기변경이 접수된 9개 L투자회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로 있다가 지난 7월31일자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등기가 변경됐다. 이번 이의 신청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단독 대표이사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신 전 부회장이 이번 등기 변경 사항을 일반으로 접수했으면 11일 후 등기변경이 완료되며 긴급 사항으로 신청했을 경우에는 3~5일이면 완료된다. 일본에서 변경 등기 신청을 접수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1일 나흘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7일 일본에서 주주총회가 열리지만 아버지 신 총괄회장 곁에 머물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판단된다.

신동빈 회장에게 더 큰 걸림돌은 신 전 부회장이 내세운 문서위조 카드다. 신 총괄회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서 신동빈 회장과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하려면 신 총괄회장의 직인과 위임장이 첨부돼야 한다.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는 공동대표이사 변경 사실을 몰랐다"고 밝힌바 있다. 동시에 신 회장 측이 직인과 위임장을 위조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만약 문서위조가 사실이라면 신 회장은 큰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L투자회사를 중심에 둔 반격 카드를 꺼내면서 생각보다 경영권 분쟁이 더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신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는 충분히 나눌 수 있으나 경영 문제는 별도"라고 언급했다. 가족끼리 대화는 나눌 수 있으나 경영권 문제는 이사회를 통해 절차대로 진행하겠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공정위ㆍ금감원ㆍ검찰 등 전방위 공세

신동빈 회장의 사과와 개혁안 발표에도 사정기관은 롯데를 겨냥한 칼을 쉽사리 거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는 신 회장의 기자회견과 상관 없이 예정된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롯데 해외계열사 전체 주주현황과 각 계열사의 주식보유 현황, 임원현황 등을 20일까지 제출할 것을 롯데 측에 요청했다. 해외계열사에는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 L투자회사 등이 포함돼 공정위의 조사를 계기로 이러한 일본 회사들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의 조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려면 롯데가 해외 계열사 주식 소유 현황 등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협조해야 하나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최고 1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나 롯데가 벌금을 내는 방안을 택한다면 공정위의 조사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호텔롯데 반기보고서 제출 시 일본 롯데홀딩스의 연결재무제표를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사채, 투자 부동산 등 30여개 항목이 담긴 연결재무제표를 제출하라고 알려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를 통해 롯데의 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금감원은 롯데카드에도 칼을 겨눴다. 금감원은 빠른 시일 내 롯데카드에 대규모 인력을 보내 자금흐름을 살필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역시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낸 소득세 등 세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국세청에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또한 롯데를 주목하고 있다. 롯데는 이명박 정권에서 최대 수혜기업이라는 평가와함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사정설'이 나돌 때마다 이름을 올렸다. 특히 롯데가 전력한 '제2롯데월드'는 이명박 정부의 '특혜'라는 말까지 돌았다. 실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롯데월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밝히면서 1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를 재점화시켰다. 공군은 성남 공군기지의 비행 안전성 문제로 극렬히 반대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김은기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제2롯데월드 건설을 밀어붙였다.

검찰 주변에서는 "롯데에 대한 수사가 전 정권과의 정경유착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제2롯데월드가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롯데가 검찰 수사를 받는다면 그것 자체가 신동빈 체제의 롯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치권 '롯데법'으로 압박

정치권 또한 롯데 압박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기업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편법으로 신규 순환출자에 나서는 것을 막는 일명 '롯데법'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내 대기업 집단 범위의 해외 계열사까지 포함한다. 해외 계열사 주식과 해외 계열사가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 현황을 공정거리위원회에 의무 신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광윤사나 L투자회사의 구조가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신 의원은 "현행법상 상호출자 금지 규제는 국내 기업에만 해당돼 특정회사가 외국법인 계열사를 통해 상호출자를 할 경우 공정위가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외국법인을 만들어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것으로 보여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롯데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신 의원을 시작으로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이 재벌 총수가 보유한 해외 계열사 지분과 대기업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공시하는 법안을, 박영선 의원이 불공정한 자사주거래를 막는 상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롯데 사태를 계기로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재벌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황금알' 낳는 롯데 면세점 '빨간불'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롯데 면세점에 불똥이 튀고 있다. 연말 재입찰이 예정된 롯데 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에 대해 롯데에게 특허를 갱신해줘선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정부도 롯데에 삐딱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3년 전만 해도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특허를 자동으로 갱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개정된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에 따라 5년마다 희망 사업자의 신청서를 받아 경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입찰 방법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국내 면세점 입찰자들은 5년에 한 번씩 경쟁입찰을 벌여야 한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여섯 곳의 면세점 중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면세점은 롯데 성장의 큰 버팀목이 돼 왔다. 그러나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갱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정부는 면세점 허가 심사를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심사하기보다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면세점 사업 허가권을 가진 관세청 측은 10월 예정된 면세점 재허가 심사 시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불매운동' 등 반(反)롯데 정서 확산

롯데를 향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또한 심화되고 있다. 지난 4일 금융소비자원은 롯데 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에 최초로 나섰다. 금소원은 "롯데 사태는 국내 재벌의 비양심적이고 반시장적인 행태가 다시 드러난 것으로 재벌이 사회적 책임이나 공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더 이상 소비자들이 재벌로 인한 경제적 폐해를 겪지 않기 위해 강력한 불매운동에 나서 재벌의 행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소원 조남희 대표는 "롯데 불매 운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또 다른 단체와의 대화를 통해 이번 롯데 불매 운동의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별 소상공인 단체와 함께 롯데카드 가맹 해지 결제 거부 운동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롯데가 골목상권에 피해를 주는 사업을 중지하고 대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앞장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롯데 사태를 통해 그 동안 골목상권을 침해했던 대기업들에게 대대적인 압박을 가하겠다는 속내다.

이렇듯 속사정은 다르지만 롯데 계열사 불매운동은 다른 시민단체로도 점차 번져가는 추세다. 서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불매운동이 인천, 부산, 경남 등 지방 시민단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는 롯데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동빈 회장은 주주총회 등을 통해 한국과 일본 롯데를 아우르는 공식적인 리더의 자리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신동빈호'가 순항하기에는 갈수록 악화되는 여론, 대외적 압력,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 등 곳곳에 암초가 가득하다. 국내 재계순위 5위인 롯데그룹의 앞날은 아직 안갯속에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