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운영하며 증권가 쥐락펴락… 세대별 '노하우' 차이

왼쪽부터 윤강로 KR인베스트먼트 대표,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 손명완 세광 대표
1970년대 1세대 사채로 부 일궈… 고성일·백희엽씨
2000년대 초 투자 고수로 증권가 주름잡은 2세대…
'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전주 투신'
중소형주 활용한 대기만성 3세대… 박영옥·김봉수·손명완
한국 주식시장 '전설의 고수' 8인 활약상 전격 해부

지난 7일 주식시장서 '압구정 미꾸라지'로 유명세를 얻었던 윤강로 KR인베스트먼트 대표의 근황이 전해졌다. 서울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3차에 위치한 윤 대표의 고급 빌라가 지난 3월에 첫 경매로 나온 뒤 3차례 유찰돼 첫 감정가의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굴욕적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은 윤 대표는 2000년대 초 개인투자자들에게 '3대 슈퍼개미'로 유명세를 얻었다. '3대 슈퍼개미' 중 '목포 세발낙지'로 불리던 장모씨 또한 지난달 22일 사기 혐의로 구속돼 전설적인 슈퍼개미의 몰락을 알린 바 있다.

슈퍼개미란 거액을 운용하며 주식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개인투자자를 의미한다. 투자한 종목마다 주가가 오르며 '3대 슈퍼개미' 반열에 오른 세 사람과 1970년대 말 중동건설 붐과 함께 국내에 건설주 광풍이 불던 때 등장했던 1세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3세대 슈퍼개미들을 살펴봤다.

경제위기를 기회 삼은 2세대

2000년대 국내에는 '3대 슈퍼개미'가 있었다.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대표, '목포 세발낙지' 장모씨와 '전주 투신'으로 불리던 박기원씨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 증권시장에 등장해 2000년대 초 투자 고수로 증권시장을 주름잡으며 이름을 떨쳤다.

윤 대표는 과감한 선물 투자로 자본금 8,000만원을 13,000억원까지 불린 것으로 유명하다. 업계 사람들은 손해를 보기 전 남들보다 한발 앞서 빠져 나와 위험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 피하는 윤 대표를 일컬어 '압구정 미꾸라지'라고 불렀다.

윤 대표는 1996년 국내에 선물 거래가 도입되자 재직 중이던 서울은행을 퇴사하고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8년 간 코스피 지수선물에 투자해 1,300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주목 받은 그는 2004년 한국선물을 인수해 KR선물로 사명을 변경하며 회장에 등극했다.

오히려 KR선물 설립 후 윤 대표는 내리막길을 걸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3년간 매년 500억원, 100억원, 45억원의 손실을 보며 KR선물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결국 KR선물은 지난해 IDS홀딩스에 인수됐고, 그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윤 대표는 현재 주식 시장을 떠나 교육 사업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KR인베스트먼트와 KR트레이딩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투자 전략을 강의하고 있다.

'목포 세발낙지'장모씨는 윤 대표와 함께 국내 선물 시장의 투기성 거래를 성장시킨 인물로 꼽힌다. 장씨는 D증권 목포지점에 근무했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하루에 9,000억여원을 중개해 목포에서 증시를 쥐락펴락한다는 의미로 '목포 세발낙지'라 불렸다.

1999년 퇴사 후 장씨는 슈퍼개미로서 승승장구했다. 사무실을 열고 상당한 자금으로 대량 매수에 나서 업계에서 고수로 주목 받았으며 제자들을 양성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던 바 있다.

장씨는 2002년 실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물 주식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장씨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전라도의 한 섬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던 장씨는 2011년 1,000억원대를 굴리며 증권가에 불현듯 재등장했다. 당시 'MB테마주'라고 불리던 S사의 지분을 대거 매집하며 주목을 받았으나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업계의 평을 얻었다.

장씨는 지난달 22일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2012년 지인으로부터 투자자 2명을 소개받아 투자금 2억5,000만원을 건네 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6개월 내 원금 회수를 보장했던 장씨는 원금을 모두 날렸고, 결국 투자자로부터 고소당해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윤 대표, 장씨가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과 달리 박기원씨는 은둔형 고수라 불릴 정도로 노출을 꺼렸다. '전주의 대형마트 경리 직원 출신'이라는 항간의 소문만 떠돌 뿐 일체의 신분 노출을 꺼렸다.

'전주 투신'이라는 별명은 전주에서 개인이 투자신탁사 정도의 거대 자본을 굴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박씨는 1990년대 말 선물투자로 대박을 낸 뒤 2002년에는 하이닉스, 2003년에는 삼성전자의 지분을 대거 매매해 고수익을 올리며 눈길을 끌었다.

특히 박씨는 2003년 10월 삼성전자 주식을 400억여원 정도로 대거 매입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약 300억원에 해당하는 8만주를 하루에 매도해 삼성전자의 주가하락을 비롯, 종합주가지수와 선물지수 약세를 야기한 바 있다.

박씨는 현재 전설의 고수로 남았다. 2006년 대한방직 지분을 최대 21.6%까지 보유하며 대한방직의 경영권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지만 같은 해 타 업종 투자 실패로 인해 급전 마련 차 대한방직 지분을 대량 매도하며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사채로 일군 부 활용한 1세대

'슈퍼개미'는 1970년대 중동의 오일머니 덕에 국내 증시가 활황을 이루면서 본격 등장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 진출해 달러를 고국으로 끌어오며 한국 경제를 급성장시킨 흐름에 국내 건설사 주식 또한 '큰손'들의 주목을 받으며 투기 열풍을 일으켰다.

이 때 국내 슈퍼개미의 1세대로 불리는 고(故) 고성일씨와 고(故) 백희엽씨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이북 출신으로, 6ㆍ25전쟁 때 월남한 후 뛰어난 장사 수완을 발휘해 종자돈을 모았다. 이후 명동 사채시장에 입성해 현금을 불린 둘은 막대한 자금을 건설주에 투입했다.

고씨는 듬직한 풍채에,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린 점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광화문 곰'이라고 불렸다. 당시 국내 주식 거래 규모의 3분의 1은 고씨의 돈이라는 얘기가 무성할 정도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고씨의 투자방법은 체격답게 '통 큰' 스타일이었다. 고씨는 시중에 풀린 건설주를 거액을 동원해 모두 쓸어 담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1970년대 인기 고공행진이었던 건설주는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었다.

고씨는 건설주로 막대한 수익률을 올렸다. 건설주는 1979년에 발생한 제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국내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가 급감하기 전까지 중동 특수 호재를 등에 업고 하루가 다르게 급등세를 기록했다.

고씨의 투자 수익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2차 오일쇼크 사태로 인해 건설주 추락 구도가 7년간 이어졌으며, 일부에서는 고씨를 잘 아는 작전세력의 역작전에 걸려들어 유공(현 SK에너지) 주식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씨의 체면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계속된 투자 실패로 자금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일부 증권사에서는 고씨에게 신용투자를 해주지 않았다. 1991년에는 한보철강의 주가를 조정했다는 혐의로 조사받은 바 있다. 고씨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1997년 9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씨와 함께 1970년대를 풍미한 슈퍼개미는 '백 할머니'로 불렸던 백희엽씨다. 백씨는 6ㆍ25전쟁 후 군복장사로 종자돈을 마련했다. 일찌감치 투자에 주목해 1950년대 후반에는 건국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으며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1960년대 말 투자 성공으로 수백억원대의 현금 부자가 된 백씨는 1970년대에는 건설주에 진입하며 고씨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거대 시세 차익을 노렸던 고씨와 달리 백씨는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기업에 투자했던 것으로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백씨는 매우 검소하고 겸손했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살아생전 백씨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결같이 부지런한 사람, 검소한 사람, 부를 뽐내지 않았던 사람으로 전해진다. 백씨는 삼보증권(현 대우증권)을 매일 출근하며 시세를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고씨보다 두 해 앞선 1995년 5월13일 80세로 생을 마감했다. 백씨의 정확한 자산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풍으로 와병하기 전까지 백씨가 보유했던 주식이나 채권 등의 자산만해도 200억원대인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중소형주 활용한 대기만성 3세대

현재 국내 증시에서 실력을 뽐내고 있는 슈퍼개미는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 손명완 세광 대표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아이에스동서, 참좋은레저, 대한방직, 한국경제TV 등 중소형주가 강세를 띠며 세 사람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고 알려졌다.

박 대표는 올 상반기 2,000억원을 넘어서는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1988년 대신증권에 입사하며 국내 증시에 발을 들인 박 대표는 2001년 개인투자자로 나서 자본금 5,000만원을 올해 4,000배로 불리며 고수로 거듭났다.

박 대표가 2011년 8월 최초로 공시한 조광피혁 660만주는 5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농심, 하나투어 등에 투자하며 주가가 올라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재 박 대표가 보유한 종목은 대동공업, 참좋은레져, 조광피혁, 에이티넘인베스트, 에스피지, 와토스코리아, 아이에스동서, 고려제강, 삼성증권, 대우증권 등이다. 올해 아이에스동서와 참좋은레져 경우 각각 75.98%, 62.59%의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스스로를 '주식 농부'라 칭한다. 농부가 씨를 뿌려 장시간 정성을 들여 정직하게 수확을 거두는 마음으로 투자 또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형 회사에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증식 방법을 추구한다.

박 대표는 외부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중소형 종목 투자를 강조한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건강, 레저, 바이오 종목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좋은레져, 삼천리자전거, 알톤스포츠의 지분을 꾸준히 늘리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올 상반기 주식 평가이익이 가장 높은 개인투자자로 뽑혔다. 김 교수는 2005년 자본금 4억원으로 삼광유리, F&F, 메가스터디를 사들이며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과 전혀 관계없는 화학과 교수가 증시에 뛰어든 이유로는 두 딸들의 대학 등록금 마련이라고 알려져 있다.

10년 전 4억원으로 시작한 김 교수의 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500억원으로 불어났다. 증권가에서는 김 교수의 5% 지분 보유 공시가 뜨면 'KBS 테마주'로 소문나며 해당 주가가 상한가로 직행한다.

김 교수는 현재 고려신용정보, 부산방직, 동양에스틱, 코리아에스이, 세진티에스, 아이즈비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즈비전의 경우 지난 7월1일 종가 기준으로 53%의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고려신용정보 또한 같은 날 34%의 상승률을 보였다.

김 교수는 '아는 종목'만 산다는 투자 철학을 가지고 있다. 배경지식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업 종목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관심 가는 회사는 기업 탐방에 나선다. 지난 3월 지분 7.53% 보유를 공시한 부산방직은 김 교수가 대표를 찾아가 미래 사업전략까지 설명들은 일화는 유명하다.

김 교수는 해당 종목에 대한 꾸준한 공부를 바탕으로 3년 이상의 장기 투자를 강조한다. 수백 권의 투자 관련 서적을 탐독한 후 주식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현재도 업계 전문가 들과 정기적인 스터디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손 대표는 공시한 지분 5% 이상의 16개 종목만 고려해도 600억원을 웃도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구의 한 공장에서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외환위기 직후 2억5,000만원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1년 반 만에 1억8,000만원을 날렸다. 투자를 멈추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던 손 대표는 2004년 주식에 다시 도전했지만 원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 투자를 접으려고 종목들을 처분하던 중 에이디칩스 주가가 상승세를 타자 대박을 위한 세 번째 도전을 감행했다.

손 대표가 현재 보유한 종목들은 NI스틸, 한국경제TV, 영화금속, 동원금속, 에코플라스틱, 티플랙스, 국영지앤엠, 오스템, 에스폴리텍, 이구산업, 바른전자, 루미마이크로, 멜파스, 에스코넥, 성호전자, 하인디앤씨 등이다.

손 대표는 종목을 저가에 사놓고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취한다. 저가 종목을 선택할 때는 업종 내에서 저평가 받아 증시에서 반년 이상 횡보하되 기술 성장력이 있어서 손절매할 가능성이 낮은 종목이어야 한다.

또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주주의 권리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5% 이상 매입한 주식에 대해서는 자산재평가, 배당금 확대 등을 주주로서 제안해 수익을 낼 수 있는데 목소리를 낼 것을 자주 강조한다.



윤소영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