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분쟁 폭로전 줄이어… 타협 어려워, 한ㆍ일에서 소송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뒤쪽은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대표. 사진=연합뉴스
신동주,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SDJ 코퍼레이션'이 주도
신동빈, 공개적 활동 자제 중… 로펌 김앤장 활약에 기대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 놓고 동주ㆍ동빈 형제 신경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 해임 두고 양측 공방 벌여

'점입가경'이다. 롯데발 '형제의 난'이 갈수록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주 내내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신동빈 흔들기'에 나섰다. 지난 8월 별다른 공세 없이 물러섰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는 SDJ코퍼레이션과 민유성 고문이 있다. 비교적 한국어가 서툰 신 전 부회장을 대신해 그의 '입'을 자처하는 민 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모든 행보를 지휘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운 공세도 빠지지 않았다. 형제는 총괄회장의 집무실 관리 권한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급기야 롯데의 이일민 비서실장이 해임되면서 일단락됐지만 호텔롯데는 34층에 드나드는 SDJ코퍼레이션 관련 인사들에 대해 퇴거를 요청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대표로 있는 SDJ코퍼레이션 정혜원 상무(오른쪽 두번째) 일행이 16일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감시 중단 등을 담은 통고서를 전달하기 위해 롯데그룹 건물 로비에서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형제는 종업원 지주회와 경영 능력을 갖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롯데홀딩스 이사 해임 이유로 IT투자에서 손실을 봤기 때문이라 밝혔다.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의 음해라 반박했다. 롯데 측은 심각한 경영상의 과오로 해임된 신 전 부회장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평가와 책임 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기업을 총수일가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 밝혔다.

진흙탕 싸움 돼가는 롯데 경영권 분쟁

지난 16일, 롯데호텔 34층에서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 관리 권한을 두고 롯데 측과 SDJ코퍼레이션이 갈등을 빚었다. 이 와중에 신 총괄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형제는 신 총괄회장 비서진 운영을 두고도 씨름했다. SDJ코퍼레이션 측은 20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그룹 비서실장인 이일민 전무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일민 전무는 지난 8월부터 신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됐으며 신동빈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신 총괄회장 가까이에 있는 신동빈 사람들을 솎아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이일민 전무가) 비서실장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고 평가했으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전무가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신 총괄회장의 신임 비서실장으로는 나승기씨가 임명됐다. 나승기 신임 비서실장은 법무법인 두우와 화현에서 외국법 자문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총괄회장 비서실과 집무실을 사실상 점거하고 벌이는 위법 행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에 19일 전원 자진 퇴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호텔롯데 송용덕 대표이사는 "회사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총괄회장님 위임장이 있다고 다수가 몰려와서 호텔로 무단으로 진입하여 상주한다는 게 법률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또 "경영권 분쟁에 대해 가타부타할 것은 아니지만 호텔 대표이사로서 손님과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를 앞세워 공격적인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것과는 달리 아직까지 신동빈 회장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롯데의 모든 입장은 그룹 홍보실을 통해 나오고 있다. 신 전 부회장 측의 주장에 대해선 즉각 반박에 나서지만 아직까지 신 회장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이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외 노출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 총괄회장 등에 업은 신동주, 민유성 지휘 따르나

한편 신동주 전 부회장의 국내 기지인 SDJ코퍼레이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8월 수세에 몰렸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이번에는 'SDJ 코퍼레이션'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좀 더 다각적으로 경영권 싸움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신동주 전 부회장의 가장 큰 우군은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인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이다. 신 전 부회장의 가까운 지인으로 알려진 민 고문은 SDJ코퍼레이션의 적극적인 대언론 행보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롯데와는 큰 관계가 없는 외부인인데도 불구하고 롯데의 지분구조를 비롯해 신동빈 회장의 경영 행보 지적 등 거침없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어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신 전 부회장이 꾸린 변호인단 또한 민유성 고문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을 변호하는 조문현 법무법인 두우 대표 변호사와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는 민 고문의 경기고 동창으로 알려졌다. 홍보를 책임지고 있는 정혜원 상무 또한 민 고문과의 인연으로 신 전 부회장 사단에 합류했다. 사실상 신 전 부회장의 국내 인맥 중심에 있는 것이다.

지난주 내내 SDJ코퍼레이션은 언론을 상대로 공격적인 행보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를 순회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사에 대한 노출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보인다. 여기에서도 민 고문은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로 발언한 신 전 부회장의 말을 통역하며 '입'을 자처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신동주의 가장 큰 지지대는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창업주의 힘이 절대적인 대기업 문화에 따라 신 총괄회장이 향후 어떤 움직임을 보이냐에 따라 직원들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신 전 부회장 또한 국내 언론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70년동안 아버지가 회사(롯데홀딩스)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종업원, 임원들의 절대적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다"며 "아버지의 지지를 제가 받는 것이 분명해지면 종업원지주회도 나를 지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신 총괄회장이 장남에 대한 지지를 뚜렷하게 나타냄에 따라 신 전 부회장은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초반만 하더라도 고령의 나이인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흐려져 장남 측이 이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탓인지 신 전 부회장 측은 일부 기자들과 총괄회장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병원 건강검진을 다녀오는 등 총괄회장 언론 노출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반면 롯데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신 총괄회장이 장남 지지를 확실시함과 동시에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SDJ코퍼레이션 측은 고령이지만 건강상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측이 신 총괄회장이 건강검진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분간 신 전 부회장 측은 아버지를 내세워 후계자로서의 적법성을 주장할 듯하다. 이렇게 되면 신 회장 측은 상당한 부담을 얻게 된다. 자칫하면 효자와 불효자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등 불 떨어진 롯데, 신동빈은 침묵 중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전방위 공격을 펼치면서 롯데는 연일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신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우면서 자칫하면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이자 그룹의 창업주인 고령의 총괄회장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면세점 재허가이다. 롯데는 올 연말 롯데면세점 소공동점과 월드타워점의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다. 면세점은 호텔롯데 매출액의 80%를 차지하는 롯데의 버팀목이다. 신 전 부회장의 공세가 계속되며 롯데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면 재허가 심사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며 겨우 여론을 진정시켰지만 이번 사태로 다시 롯데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게 됐다. 지난 19일 소상공인연합회는 "지역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소상공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도 상생경영을 외면하는 책임을 물어 롯데 면세점 특허권 연장에 반대한다"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반 롯데 정서가 심해질 경우 정부 또한 롯데의 재허가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

여기다 면세점 특허 수수료를 올리자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 관세청 등 면세점 제도개선 정부 테스크포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관으로 '면세점 시장구조 개선방안'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시장 점유율이 30% 넘는 기업은 향후 면세점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방안이 나오기도 했다. 또 면세점 사업 이익 환수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실현 가능성은 지켜봐야 하지만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7월 기준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의 시장점유율은 50.1%, 신라 29.5%, 동화 3.8%, SK와 신세계는 각각 3.3%로 나타났다. 사실상 이 법안이 롯데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한편 롯데 측은 변호인으로 김앤장을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최고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지난 7월까지 두 달여간 지속된 삼성물산과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경영권 분쟁 때 삼성물산 측을 변호한 데 이어 이번 롯데사태에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됐다. 삼성물산의 승리를 이끈 만큼 롯데사태에서도 김앤장이 활약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동주, "최종 목표는 신격호의 복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종업원 지주회에 대해서도 형제는 날 선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이미 총괄회장이 자신을 지지한 만큼 종업원 지주회의 지분을 갖고 올 수 있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이 이사회는 물론이고 종업원지주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오랜 기간의 경영 과실이 밑바탕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종업원지주회는 일본롯데홀딩스의 2015년 1월 이후 개최된 3회의 주주총회에서 모두 현 경영진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경영능력에 대한 공방도 계속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 전 부회장의 이사직 해임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이 IT사업 추진 시 그룹에 10억엔의 손실을 입혀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은 "10억엔 투자 손실로 언급된 IT시스템은 제과제품들이 어떻게 진열돼 있는지 알 수 있는 POS 시스템으로 일본 롯데에서 개발돼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해당 시스템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은 870만달러의 승인을 받았으니 30달러의 추가비용을 승인받지 못했고 이를 신동빈 회장이 부풀려 음해했다고 밝혔다.

신 전 부회장은 언론을 통해 일단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복귀시킨 후 일본 롯데는 자신이, 한국 롯데는 동생이 경영하는 게 목표라 밝혔다. 그 다음에 신 총괄회장이 후계자 지명을 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일롯데 분리경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이번 분쟁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진실을 숨기고 국민을 호도하는 행위이며 결국 롯데호텔 상장을 막아 롯데의 일본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과거 회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롯데그룹은 호텔롯데의 상장을 통해 일본롯데의 지분비율을 낮추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형제가 연일 폭로전을 지속하고 있는 롯데 사태의 끝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확실한 건 연일 계속되는 공방으로 국내에서 롯데에 대한 이미지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도 신 전 부회장에 공세에 일일이 대응하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 실제로 연일 계속되는 폭로전에 많은 국민들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

오는 28일 국내 첫 소송을 시작으로 형제는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됐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소송에 나섬에 따라 양국 소송 결과에 따라 운명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