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동빈, 사재 내놓으며 여론 살피기두산ㆍSK '동대문', 신세계 '남대문'상권 살릴 것과열된 '상생'경쟁… 얼마나 지켜질까

지난달 26일오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열린‘동대문 미래창조재단출범식’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말 면세점 특허를 앞두고 유통업계는 지금 '면세점 허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면세점 분야의 전통적 강자인 롯데는 최근 시작된 경영권 분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를 틈타 SK, 두산, 신세계가 면세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지난 여름, 한 번의 실패를 맛본 기업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번 면세점 2차전에 핵심 키워드는 상생이다.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관광객 유치, 중소기업과 지역 상권과의 동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총수가 직접 개인 재산을 내놓으며 사회 공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열기를 뛰어넘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면세점 전쟁을 살펴 봤다.

상생 강조하는 면세점 업계

올해 연말, 서울 시내에서는 세 곳의 면세점 특허가 만료된다. 11월 16일 SK네트웍스의 워커힐 면세점을 시작으로 12월 22일 롯데백화점 소공점, 12월 31일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의 특허 종료 시점을 앞두고 있다. 롯데 소공점에는 기존의 입지를 지키려는 롯데와 신세계, 두산이 경쟁한다. SK네트웍스 워커힐 면세점에는 신세계와 두산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롯데 월드타워점에는 신세계, 두산, SK네트웍스가 경쟁을 벌이게 됐다.

지난달 26일열린 신세계 면세점 기자간담에서 신세계디에프 성영목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신세계
지난주 내내 유통업계는 '면세점 전쟁'으로 들썩였다. 지난달 26일에는 신세계와 두산이 같은 시간에 면세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다음날인 27일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SK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면세점 청사진을 그렸다.

이미 한 차례 고배를 마신 신세계와 SK네트웍스의 각오는 더 단단하다. 신세계는 이번 입찰에선 회현동 신세계 타운 내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신세계 본점 신관과 메사빌딩을 포함해 2018년부터 운영하는 메사 옆 신축호텔, 지난 3월 인수한 SC은행 제일지점 건물 등을 활용한다. 주변 상권 활성 방안도 내놨다. 신세계 디에프 성영목 사장은 "신세계 서울 시내 면세점은 명동과 남대문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가 돼 명동에만 머무는 관광객이 자연스레 남대문 시장으로 유입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SK네트웍스 또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면세점 사업 계획을 밝혔다. 지난 23년간 광장동 워커힐 면세점을 통해 노하우를 축적한 SK네트웍스는 동대문을 기반으로 한 신규 면세점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SK동대문 면세점은 지역 특성을 살려 'K컬처'의 글로벌화를 이끈다. 면세점 건물로는 케레스타 빌딩을 입지로 선정했다. 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동대문의 관광 인프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오는 2020년에는 1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또한 동대문 상권 활성화를 강조했다. 두산 박용만 회장은 지난달 26일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동대문 미래창조 재단'을 출범했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전통시장 상권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이다. 두산은 두타 빌딩 내 약 9개층에 1만7000㎡(4200평) 규모의 시내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샤넬ㆍ루이뷔통 등 세계적 명품을 포함한 460여 개 브랜드로부터 입점의향서(LOI)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두산과 SK는 '동대문'을, 신세계는 '남대문'을 강조한 셈이다. 빠르면 이번 달부터 시작되는 심사에서 관세청이 각 기업이 내놓은 지역상권 발전 방안을 얼마나 매력 있게 보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너도 나도 사회환원…차별화는?

각 기업이 열띤 면세점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소공동점과 월드타워점 두 군데를 지켜야 하는 롯데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런 가운데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재발하며 재허가 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두 면세점의 수익은 호텔롯데 매출액의 80%를 차지한다. 롯데 입장에선 전 직원 모두가 면세점 재허가를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악화된 여론 탓인지 신동빈 회장은 사재를 아낌없이 내놓고 있다. 먼저 롯데는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법인 '롯데 액셀러레이터'를 내년 초 설립한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은 사재 100억원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도 사재 70억원을 기부했다. 사재 내놓기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사회 공헌을 통해 면세점 심사와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회 공헌을 위한 사재 내놓기는 롯데 신 회장뿐만이 아니다.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또한 사재 100억원을 내놨다. 이 사재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동대문 미래창조 재단에 쓰여졌다. 이 밖에 두산은 면세점 영업이익 10%를 사회 환원할 것이라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이 사회 환원 비율을 기존보다 더 높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장님들의 사재 내놓기는 물론,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면세점 청사진에 '상생'을 강조했다. SK네트웍스는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에서 워커힐과 동대문에 면세점을 유치할 경우, 총 8200억원에 이르는 투자비 중 면세점 구축 및 운영자금 5800억원을 제외한 2400억원을 최우선 과제인 지역 및 중소상생을 위해 사회 환원할 것이라 밝혔다. 특히 SK네트웍스는 이번 면세점 입찰에서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상생'의 원조라 강조했다. SK네트웍스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7월 면세점 입찰 시 타 기업보다 상생과 관련한 계획을 먼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또 "SK는 세 곳의 재단을 통해 사회환원에 효율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 역시 청년창업 지원센터를 별도로 마련해 패션과 디자인에 특화된 청년 패션 디자인 창업가를 인큐베이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사회 공헌 경쟁으로 이 공약이 얼마나 지켜질지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나오고 있다. 각 기업들은 면세점 입찰 여부와 상관 없이 사회 환원과 지역 상권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박용만 회장은 "면세점 유치와 상관없이 두산은 앞으로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이 최선의 성과를 완성하는데 지원을 다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신세계디에프 성영목 사장 역시 "면세점 입찰 성패와 관계없이 사회 공헌과 관광 활성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세점 사업은 관광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 만약 지난번 메르스 사태처럼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할 경우 수익에도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면세점 사업 특성상 약속이 공수표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이다. 또 모두 비슷비슷한 사회공헌 계획을 내놔 차별화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최근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면세점 독과점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다. 만약 정부가 면세점 독점 구조에 칼을 댄다면 국내 면세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와 신라가 제일 먼저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신규 진출자들은 이를 조심스레 반기는 분위기다. 신세계 측은 기자간담회에서 면세점 독과점 지적에 관한 질문에 "신규 사업자들이 진출한다면 자연스레 독과점은 해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