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롯데, SKT-CJ 빅딜로 '사업재편'… 소속 바뀐 직원 달래고 '실적' 내야

롯데 신동빈 회장 사진=롯데그룹
삼성, 롯데에 화학 계열사 전격 매각
사업영역 재편 통해 '선택과 집중' 나서
인수 과정서 조직원 반발 불러올 수도
SKT-CJ '빅딜', 방송통신업계 독점 우려

지난 주 재계는 삼성과 롯데의 '빅딜'로 들썩였다. 롯데가 삼성의 화약 계열사를 전격 인수함으로써 유통, 서비스에 이어 화학 분야를 그룹의 3대 성장축으로 삼게 된 것이다. 삼성 또한 지난해 11월 한화에 화학 계열사를 정리함에 이어 비주력 계열사를 완전히 정리하고 바이오와 전자로 대표되는 주력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삼성과 롯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의 전략적 M&A(인수 합병)는 양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짐에 따라 가능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애착을 가져 온 화학 분야를 강화하게 됐고 삼성은 비주력 계열사 정리를 통해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위한 총알을 확보하게 됐다.

기업들의 전략적 '빅딜'은 향후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이 적극적으로 한화와 롯데에 계열사 매각을 이뤄낸 것처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SK와 CJ 또한 인수를 통해 방송통신 분야에서 플랫폼 강화와 콘텐츠 보강을 각각 선택하게 됐다.

얼핏 보기엔 모두 '윈윈'을 가져온다지만 대기업의 인수와 매각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부에선 임직원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자칫하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
삼성, 화학 계열사 '완벽한 정리'

지난달 30일, 삼성과 롯데는 '빅딜'을 단행했다. 롯데그룹은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에 대한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인수가가 3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양수도 계약으로 국내 화학업계 최대 빅딜이다.

롯데는 삼성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정밀화학의 지분 31.5%,(삼성 BP화학 지분 49% 포함),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 분할신설 법인 지분의 9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다. 롯데 측은 삼성 SDI 분할신설 법인의 지분 10%는 삼성 SDI에 남겨놓아 양사 간 전략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롯데 측은 이번 '빅딜'에 대해 국내 화학업계가 자발적 사업 재편을 통해 주력 사업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석유화학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4조 9000억원으로 이번에 인수하는 3개사의 매출 4조 3000억원을 합치면 화학분야 매출규모가 2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합성수지의 기초가 되는 원료 사업에서 강점을 지녀 이번 계약으로 수직계열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라인업 확대가 가능하게 됐다. 또 석유화학에 이어 정밀화학 분야에 새롭게 진출해 종합화학회사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반면 삼성SDI는 케미칼 사업부문과 정밀화학 지분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가파른 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정밀화학 노사공동 비상대책위원회(성인희 대표이사 사장·이동훈 노조위원장)는 지난 3일 울산 본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이 삼성정밀화학을 롯데그룹에 지분매각을 한 것과 관련해 "우리의 고용과 처우에 대한 명확한 보장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연합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한화그룹과의 거래에 이어 이번 빅딜을 성사시킴으로써 석유화학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석유화학부문 계열사인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 방산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원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한 바 있다. 이로써 한화는 방위사업 분야에서 매출 2조 7000억원대를 올리며 국내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롯데 신동빈, 빅딜 통해 경영권 굳히기

이번 '빅딜'은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선 롯데는 삼성 계열사 인수를 통해 유통과 화학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키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롯데 측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석유화학 분야에 각별한 애정을 가져왔다. 이는 신 회장이 지난 1990년 한국 롯데 경영에 처음 참여한 회사가 롯데케미칼(당시 호남 석유화학)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2000년대 들어 신동빈 회장은 롯데대산유화와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해 롯데를 석유화학 산업의 강자로 올려놨다. 2009년 호남석유화학과 롯데대산유화의 합병, 2012년에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출범시켰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빅딜 성사를 직접 전두지휘했다고 나서면서 최고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사업 확장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롯데를 이끌어 가는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롯데 측 또한 이번 인수를 신동빈 회장이 직접 지휘했다고 밝힘으로써 이러한 평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로써 국내 화학 업계는 LG화학과 함께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의 '빅3'로 재편됐다. 전통적으로 화학은 대기업들에게 꾸준히 수익을 창출해 주는 안정적인 사업 분야로 꼽힌다. 여기다 롯데 신동빈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등은 화학 분야에 갖고 있는 애착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인수 후 조직 개편과 적응을 마치면 국내 화학 시장에선 세 기업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됐다. 대기업발 '화학 경쟁'에는 신소재 개발과 함께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실용주의 묻어난 '빅딜'

한편 삼성의 경우 이번 롯데와의 M&A 성사로 화학 사업에선 손을 떼게 됐다. 대신 삼성은 바이오와 IT에 집중해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또 기존 주력 계열사였던 금융과 전자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삼성은 이번 '빅딜'로 전기차 사업을 위한 총알을 장전하게 됐다. 삼성SDI 측은 "향후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배터리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갖추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자금확보를 위해 케미칼 사업과 정밀화학 지분 전량을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매각재원은 배터리 생산라인 증설과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삼성SDI는 오는 2020년까지 향후 5년간 2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 놓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통해 주력 계열사의 재원을 확보한 후 향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 관련 사업과 '삼성페이'로 대표되는 전자 금융 분야가 향후 삼성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한화, 올해 롯데와의 빅딜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공격적인 사업 재편에 나섰다. 또 통합삼성물산 출범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공시킨 바 있다. 내부 합병과 계열사 매각을 통해 복잡한 사업 구조를 정리한 후 '선택과 집중'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실용주의 방침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업 재편 드라이브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가장 큰 우려 요인은 삼성 조직 내부가 술렁인다는 점이다. 이번 롯데와의 빅딜로 인해 2200명의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 롯데로 소속을 옮기게 됐다. 이미 지난해 한화와의 M&A로 화학 계열사가 분리된 후 직원들 사이에서는 롯데 매각설이 심심치 않게 돌곤 했다. 그러나 미리 이를 짐작했다 하더라도 소속 회사가 바뀌는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소속이 바뀌게 된 화학 계열사 직원들에겐 위로금이 지급된다. 위로금은 지난 한화 빅딜과 비슷한 5000만원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삼성과 롯데 간 연봉의 격차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단순히 보수 문제를 떠나서 하루 아침에 소속이 바뀌게 된 만큼 임직원들에겐 당분간 적응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 측은 삼성에서 롯데로 오게 된 화학 계열사 직원들의 처우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소속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치부했지만 앞서 빅딜을 이뤄낸 한화는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한화의 경우 노조가 거듭된 반발을 반복하고 있는데 급기야 지난달 30일 한화종합화학은 노조가 시설물을 불법 점거해 안전이 우려된다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M&A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전 내부 혼란에 부딪힌 것이다. 삼성에서 한화로 간 화학 계열사의 경우 삼성 소속일 때는 노조가 없었으나 한화로 매각된 후 노조가 생겼고 한화 소속으로 새 출발한 한화종합화학은 지난 1월 노조를 설립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달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이번 빅딜과 관련해서도 노조의 반발이 우려됐다. 삼성그룹의 매각과 관련해 삼성정밀화학노조의 결정에 시선이 쏠렸으나 삼성정밀화학 노조원들은 사측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수자인 롯데그룹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는 경영진이 노조원들과 열린 자세에서 대화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되며 한편으로는 한화로의 매각을 보며 미리 화학 계열사 직원들이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혼란이 덜했다는 지적도 있다. 비교적 온건한 선택을 한 삼성정밀화학노조 덕에 일단 롯데는 한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를 듣고 있으나 하루 아침에 삼성맨에서 롯데맨이 된 임직원들의 반발이 한 번에 정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방송 통신업계도 어김없이 '전략적 인수'

내부 혼란도 있지만 일단 기업들은 선택과 집중을 위한 M&A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관계에 따른 전략적 인수합병은 화학 분야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지난 2일,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전격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통신-방송 간 빅딜로 방송통신업계 또한 요동치고 있다.

SKT는 이사회를 열고 CJ오쇼핑이 갖고 있는 CJ헬로비전 지분 30%를 5000억원에 인수했으며 23.9%는 향후 옵션 행사를 통해 사들이기로 의결했다. 같은 날 CJ㈜와 CJ오쇼핑, CJ헬로비전도 이사회를 열고 CJ헬로비전 지분 53.9%를 1조원에 SKT측에 매각하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인가라는 마지막 산이 남아있지만 두 회사의 M&A로 SK와 CJ는 서로 각자 제일 잘 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먼저 CJ는 유선방송 사업에 발을 빼는 대신 CJ E&M을 중심으로 벌이는 콘텐츠 사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SKT는 유료방송 시장의 '공룡'으로 자리잡게 됐다. SK브로드밴드 IPTV 가입자 수는 314만명이다. 여기에 CJ헬로비전 케이블 TV 가입자 숫자인 416만명을 합치면 약 730만명의 방송 가입자를 확보한다. 현재 업계 1위는 KT이다. KT는 IPTV인 올레TV가입자가 615만명, KT스카이라이프 가입자가 200만명으로 약 815만명의 방송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으로 SKT는 KT의 1위 자리를 바짝 추격하게 됐다.

이번 합병은 SK가 예전부터 계획해 온 방송통신 플랫폼 강화의 한 축이라 볼 수 있다. SKT는 올 초 이미 '통합 미디어 플랫폼'을 3대 신성장 분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2018년까지 유료방송 가입자를 1800만명 모집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SKT는 700만명으로 가입자를 늘리면서 유선방송시장 점유율 높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양 사는 전략적 인수와 매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뤘지만 방송통신 분야에서 나머지 사업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이번 인수는 방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통신시장의 경쟁을 해칠 뿐더러 유선방송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방송통신 사업자를 비롯해 업계 관계자들 또한 이번 빅딜로 인한 독점을 우려하고 있어 당분간 업계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한화, 삼성과 롯데, SK와 CJ처럼 양사의 이해 관계를 모두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 간 전략적 M&A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잘 하는 분야에만 집중하자는 실용적 사고가 대기업들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빅딜' 이후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인수 및 매각을 이루더라도 향후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큰 매각 대금을 지불하고도 효과를 얻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웅진, LIG 등은 건설사 인수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다 더 큰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섣부른 인수는 안 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과거 실패 사례들 때문이다.

한편으론 경제 성장이 침체되고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진 시점에서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주력 사업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대기업들의 결단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