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한 음식' 할랄…유통업계 20억 무슬림 시장 공략 나서CJ제일제당ㆍ대상 등 대기업 적극적 진출… 성공 위해선 인내심 필수 높은 신뢰도만큼 엄격한 인증 거쳐야… 정부의 활발한 지원 필요'케이푸드'인지도 올리기 선행돼야 …화장품업계도 관심

'신이 허락한 음식'. 할랄(halal) 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들을 부르는 용어인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신이 허락한 음식인 만큼 제조 과정은 매우 엄격하다. 과일, 야채, 곡류, 수산물과 함께 도축 과정을 지켜서 도살된 고기가 할랄의 범위에 들어간다. 식품은 물론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또한 할랄 인증을 받아야 사용 가능하다.

CJ제일제당의 시장 조사 결과 무슬림 인구는 20억, 전 세계 총 인구의 28%로 추정된다. 할랄 시장은 세계 식품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시장이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할랄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일찌감치 일본과 중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할랄 산업에 뛰어들었다. 할랄 산업에 진출한 대표적인 해외 기업은 네슬레다. 네슬레는 1980년대부터 할랄 전담 분야를 만들어 1992년에는 할랄 제품 개발 정책을 수립해 전 세계 85개 공장, 154개 제품이 할랄 인증을 받았다.

할랄 산업 진출에 대한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또한 식품 제조업체들이 몇 년 전부터 할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로 할랄 산업 진출 열기는 더해졌다. 정부 또한 적극적 의지를 갖고 할랄 수출 시장 규모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할랄 인증 절차와 현지에서 그다지 높지 않은 한식의 인지도 등 무슬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게다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 또한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할랄 산업 진출 현황을 짚어 봤다.

당장 수익 거두기보다 먼 미래 봐야

국내 대기업들은 할랄 산업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할랄 시장 진출을 준비해 온 CJ제일제당은 2013년 3월 햇반과 조미김, 김치 등 3개 품목에서 46개 제품의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이 제품들은 현재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판매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할랄 매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2013년에는 전년 대비 47% 성장했으며 지난해에는 무려 140% 나 증가했다. 이 기세를 이어 CJ제일제당은 글로벌 한식 통합 브랜드 '비비고'를 중동 식품 시장에 진출시켰다. CJ제일제당 측은 아랍에미리트의 현지 식문화가 튀기거나 굽는 음식이 많고 만두와 비슷한 '사모사'가 대중적 음식인 점을 반영해 '비비고 만두'를 전략제품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두부야채군만두'와 '비비고 김치두부군만두', '비비고 연육왕교자' 등 만두(3종)와 '비비고 김치(2종)', '비비고 스낵김(3종)' 등 총 8개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들은 두부, 김치 등 야채 위주의 만두 제품을 중심으로 할랄 인증을 받은 김치와 스낵김으로 구성됐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아부다비, 샤르자, 후자이라, 라스알카이마, 알아인 등 총 6개 지역에서 중동 최대 규모의 대형마트인 룰루 하이퍼마켓 25개 점포에서 판매 중이다.

대상은 지난 2011년 2월부터 할랄 인증 제품 수출을 시작했으며 현재 총 19개 품목에 인증을 획득했다. 2013년까지는 마요네즈, 김, 유지류 등 13개 품목에 대해 인도네시아 할랄 위원회를 통해 MUI 할랄 인증을 받았고 작년에는 맛소금, 미역 등 6개 품목에 대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추가 인증을 받았다. 대상의 할랄 제품 수출액은 2011년도 약 6억 수준에서 2013년도에는 13억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34억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예상 수출액은 50억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2017년까지 할랄시장 수출 15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할랄시장 수출확대 대책 브리핑에 나선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샘표식품은 인도네시아 할랄 인증을 받은 간장조미소재(간장분말)를 2009년부터 필리핀ㆍ태국 등 동남아에 수출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현지 1~2위 라면회사의 제품에 분말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풀무원, 빙그레 등 굵직굵직한 식품 기업들이 너나 없이 할랄 식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국내 식품 기업들은 할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고 투자를 통해 할랄 인증을 받으며 중동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일단 할랄 시장은 장기적으로 바라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할랄 사업은 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향후 더 큰 수익으로 연결될 것이므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 국내에서도 할랄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성과를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것. 또 상당히 복잡한 시장인 할랄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선 먼저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높은 신뢰도 위한 엄격한 인증, '문턱 높아'

할랄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선 인증이 필수다. 무슬림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걸 '인증'을 통해 보증하는 것이다.

인증의 종류는 상당히 다양하다. 국내 인증기관으론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와 국제할랄인증원(IHC)이 있다. 이슬람교를 종교로 믿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자체적으로 할랄 인증을 내리고 있다. 말레이시아 이슬람발전부의 JAKIM, 인도네시아의 MUI, 아랍에미리트(UAE)의 ESMA, 싱가포르의 MUIS가 대표적인 해외 할랄 인증이다.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KMF가 안내한 할랄 인증 과정에 따르면 인증을 받기 위해 제조 업체들은 제품에 사용된 원료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제조 과정에서 이슬람 율법에 의해 도살되지 않은 육류 및 할랄 인증을 받지 않은 동물성 원료가 함께 사용된다면 인증을 받지 못한다. 또 원료 입고에서부터 공장 내 생산라인은 할랄 전용이어야 하며 다른 생산라인과 분리돼 교차 오염의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하청업체에서 공급받는 원료 또한 모두 할랄 제품이거나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할랄 제품 인증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심사 기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직접 심사를 나오는 무슬림들을 위한 기도 시설과 이슬람 율법에 맞는 음식 제공 등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증 업체들이 이렇게 엄격한 심사에 나서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무슬림들에게 믿을 만한 인증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증 기관들은 사후 모니터링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KMF의 경우 할랄 인증 후에도 6개월 후 중간 모니터링을 통해 업체들이 할랄 인증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철저한 검사를 지속하고 있다.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할랄 인증서 유효 기간은 1년이다. 업체들은 인증을 받은 후에도 철저한 사후 관리와 재인증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1년이라는 인증 유효 기간이 짧다는 생각을 하지만 신뢰가 중요한 할랄 산업에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증 기관 관계자 또한 "유효 기간 1년이 너무 짧다는 의견이 많아 2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고려해 봤지만 신뢰가 생명인 할랄 산업에서 혹시 규율을 위반한 사례가 발생하면 전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인증서 유효 기간을 늘리기는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 할랄 인증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가 오는 2019년부터 자국 정부가 내린 할랄 인증만을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무슬림 국가들도 자국 정부의 할랄 인증만을 인정한다면 향후 우리 업체들은 현지 정부와 의사소통을 통해 할랄 산업에 뛰어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할랄 시장 진출은 '장거리 마라톤'

올해 6월, 정부는 2017년까지 할랄 시장 수출액을 15억달러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월 30일 농식품의 할랄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할랄 식품산업 발전 및 수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확정했다. 정부는 수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업들의 수출 애로 사항인 정보 부족, 인증비용, 생산 부담 등을 해소하겠다는 세부 계획을 설명했다. 또 할랄 제품 생산을 위한 도축장과 도계장 설립, 국가식품클러스터 내에 할랄 전용 단지를 개설한다. 또 연말까지 한국형 할랄 인증 표준을 제정해 국내 기업과 인증 기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 밝혔다.

정부가 할랄 산업에 큰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진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할랄 산업 진출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관계자들은 인증 절차가 엄격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갖춰진 대기업들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할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 힘들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들 또한 할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6월 정부의 '할랄 식품산업 발전 및 수출 활성화 대책'에서도 중소 업체 지원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정부에서도 복잡한 할랄 산업 진출을 위한 지원 필요성을 인식한 듯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더 구체적인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여러 계획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는 피부와 와 닿는 정책이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할랄 산업 진출을 권장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제도가 갖춰졌으면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식품 업계 관계자는 "당장 승부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꾸준히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사업인 만큼 정부의 관심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국내 수출용 할랄 제품 인증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도 할랄 제품 수요가 꾸준히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해 볼 만하다. 국내 관광을 온 무슬림들을 위해 호텔에서는 할랄 제품의 취급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IT 분야 전문가가 많은 인도 등 비즈니스를 위해 국내에 체류하는 무슬림들을 위해 기업 내부에서도 할랄 식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할랄 식품은 무슬림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엄격한 제조 과정으로 믿을 만하고 깨끗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할랄 제품에 대한 국내 수요 또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슬림들에게 한식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치 등 대표적인 '케이 푸드'의 할랄 인증을 받으며 현지 수출을 감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음식에 대한 무슬림들의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각 업체들과 정부는 우리 음식 인지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판촉 활동을 통해 한식의 한류화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케이푸드 페어'와 같은 현지 행사를 통해 한식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말레이시아,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케이푸드 페어가 열렸으며 오는 11월 26일부터 28일에는 UAE의 두바이에서 케이푸드 페어의 열기를 이어간다.

식품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론 속도가 느리지만 화장품 업계 또한 할랄 인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 관광객을 중심으로 한 '케이 뷰티' 열풍을 무슬림 국가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지난 10월 오송에서 열린 국제 화장품 콘퍼런스에서도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바이어의 강연을 통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할랄 시장에 관한 지식을 전달했다. 그러나 아직 화장품 업계의 할랄 산업 진출은 관심에서 머물러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동 시장 조사를 통해 할랄 산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들은 아직까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할랄 산업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승부를 가리는 단거리 경기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에 비교할 수 있다. 장거리를 달리기 위해선 충분한 영양 공급과 독려가 필수다. 우리 기업들이 할랄 산업 선두를 달리기 위해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