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준비 초고층, 서울 벗어나… 기업 비전 엿볼 수도삼성, 사업 재편으로 일부 계열사 이전 불가피현대차ㆍ롯데, 마천루로 새 시대 열어송도ㆍ판교, 철강ㆍIT기업들 신 근거지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그룹 본사.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옥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사옥 이전은 단순한 위치 이전을 떠나 향후 기업이 가진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등 주요 국내 기업들은 근거지를 옮기며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각 계열사들의 사옥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위치 이전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마천루를 기업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자동차와 롯데가 대표적이다. 각각 양재동과 소공동을 떠나 강남과 잠실에 새 터전을 잡는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로 기업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서울에 국한됐던 기업들의 본거지는 수도권으로도 옮겨가는 추세다. 두산이 두산건설을 비롯한 성남 시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인천 송도, 경기도 성남 판교 등은 기업들의 신규 근거지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삼성, 인사ㆍ사옥이전으로 뒤숭숭한 11월

옛 한전부지에 들어서는 현대자동차 신사옥. /=연합뉴스
삼성그룹은 올 12월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앞두고 대규모 인력 이동이 예상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인력 이동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에 걸맞춰 계열사별로 사옥 이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삼성생명의 중구 태평로 사옥은 매각된다. 태평로 사옥을 쓰던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은 서초사옥으로 근거지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존 서초사옥을 쓰던 삼성물산이 어느 곳으로 갈지가 주목된다.

삼성물산 각 사업부문 또한 사무실 이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올해 8월,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통합 삼성물산’을 탄생시켰다. 그룹의 중심축이 된 삼성물산의 사무실 이전설은 지난 9월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에 따라 상사부문과 건설 부문이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사부문은 세종대로 삼성본관으로, 건설부문은 판교 테크노밸리로 이전하는 방안이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 우면 R&D센터의 입주인력 규모와 수원 디지털시티로의 인력 이동 규모에 따라 수원으로 계열사 몇 군데가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수원 지역은 삼성전자 계열사 이동으로 생겨날 수요에 따라 들썩거리고 있다. 서초 사옥에 근무하는 지원인력은 내년 1월 수원 디지털시티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전반적인 변화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후 본격적으로 ‘이재용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삼성은 화학 계열사 매각 등 적극적인 매각과 인수, 개편으로 실용적 노선을 택했다. 대표적 예는 전용기 매각이다. 일각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자동차를 이용해도 되는데 굳이 전용기를 타는 삼성 사장단을 꾸짖으며 전용기 매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 감축도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다. 종합기술연구원의 연구원 수를 2500명에서 1000명 정도로 구조 조정했으며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연구과제 또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중단했다.

내년 말 완공되는 롯데월드타워
계열사 별로 사옥 이전에 나서는 것도 금융부문은 서초로 몰아 힘을 실어주고, 전자는 수원으로 가 효율적으로 사업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매각을 비롯해 잦은 사업 재편과 끊이지 않는 계열사 사무실 이전으로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다소 뒤숭숭한 11월을 보내고 있다.

마천루로 새 시대 여는 현대차ㆍ롯데

현대자동차는 ‘양재동 시대’를 마감하고 ‘강남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입찰받은 옛 한국전력공사 부지로 2020년까지 본사를 이전한다.

현대차 측은 통합사옥(GBC)이 완공되면 27년간 약 265조의 경제파급효과와 122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또 세수 또한 연 1조5000억원 이상 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월 15일 현대자동차 김용환 부회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합 사옥에서 외국의 고소득층인 딜러들을 대상으로 컨벤션을 유지하면 그들이 쇼핑을 하게 돼 그에 따른 파급 효과도 클 것”이라 강조했다. 이에 따라 박 시장은 사옥 건축을 위해 적극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통합 사옥의 규모는 지하 6층부터 지상 105층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통합 사옥에는 전시와 컨벤션 시설을 포함해 다목적 공연장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이 들어선다. 당초에는 115층으로 계획했으나 층수를 105층으로 낮춘 후 대신 3층과 5층짜리 건물 2개를 더 짓는 것으로 변경됐다. 현대차 측은 건물 내 일부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문화공간으로 제공할 것이라 밝혔다.

포스코건설 새사옥 조감도
어마어마한 규모인 만큼 현대차의 이번 통합 사옥 건설은 서울의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흩어진 계열사를 모아 통합 사옥을 건설하는 만큼 현대차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한편 현대차 통합 사옥과 관련해 서울시와 강남구는 아직 갈등을 겪고 있다. 한전부지 개발로 발생되는 1조7000억원의 공공기여금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대립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와 지자체와의 갈등 탓에 자칫하면 통합 사옥 완공이 늦어지지 않을까라는 조바심도 나오고 있다.

회장의 집무실을 옮기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거처를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로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타워는 내년 말 완공된다. 신동빈 회장은 70층 레지던스로 거처를 옮기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강훈 롯데물산 상무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신 회장이 월드타워 70층 레지던스 중 하나를 분양받는 안이 실무진 사이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신격호 총괄회장 또한 집무실과 거처를 옮긴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월드타워 114층 ‘프라이빗 오피스’를 집무실과 거처로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 555m, 총 123층으로 완공될 롯데월드타워는 국내 초고층 건물로 서울을 대표할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초고층 타워는 신 총괄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고령에도 신 총괄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공사장을 방문했으며 신동빈 회장 역시 경영권 분쟁 중에도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월드타워는 건설 과정에서 다수의 인명 사고를 일으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분당행 택한 두산, 용산으로 돌아가는 아모레퍼시픽

두산 역시 대대적인 사옥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건설을 비롯한 5개 계열사는 현재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본사를 5년 후엔 2020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의 사옥 변경은 방치돼 온 정자 1동 161번지 두산그룹 소유 부지 9936제곱미터에 대한 용도 변경을 성남시로부터 승인 받아 가능해졌다. 두산그룹은 2017년 상반기부터 신사옥 착공에 들어가 2020년까지 두산건설, 두산DST, 두산엔진, 두산매거진, 오리콤 등 5개 계열사의 본사를 이전한다. 약 4400여명의 인력 이동이 이뤄진다.

현재 두산건설의 논현동 본사는 2013년 하나자산운용에 1400억원에 매각됐다. 두산이 재임대하고 있는 상태로 계약 기간은 2028년까지다. 두산건설은 이에 대해 계약기간은 2028년까지지만 두산건설이 2020년에 임대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어 신사옥 이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두산의 이번 사옥 이전과 관련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두산이 성남시로부터 땅을 구입할 때는 병원터로 헐값에 사들였지만 결국 두산 계열사 사옥을 지을 수 있는 업무용지로 용도 변경되면서 일종의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두산이 구입한 부지는 매입 당시인 1990년에는 제곱미터 당 73만원(약 72억원)이었으나 올해 1월 공시지가는 699만원(695억원)으로 10배 가까이 올랐다. 만약 용도변경이 완료되면 막대한 시세 차익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에게 성남시가 일종의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용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신규 사옥은 용산에 위치하며 오는 2017년까지 완공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청계천 인근의 시그니처타워를 임대해 쓰고 있다. 신사옥 신축에는 약 5200억원이 투입된다. 규모는 지상 22층, 지하 7층이며 면적은 12만3450제곱미터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고 서성환 창업주 시절부터 용산에 뿌리를 내려왔다. 고 서성환 창업주가 1956년 공장을 이전하며 맨 처음 터를 잡은 곳이 용산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신사옥 이전으로 용산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각오가 크다.

용산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이전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룰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외에도 용산에는 LG유플러스 본사가 2016년 4월에 완공된다.

송도ㆍ판교, 기업들의 새 터전

서울에만 국한됐던 기업들의 본사들은 최근 인천 경기를 비롯한 수도권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추세다. 인천 송도, 경기도 분당의 판교가 대표적인 곳이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대표적인 기업은 포스코이다. 2010년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포스코글로벌 R&D센터, 포스코 플랜택, 포스코 엔지니어링 등 그룹사가 이전을 완료했다. 현재 5000여명의 직원들이 인천 송도로 출근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서울역 앞에 있던 대우인터내셔널이 인천 송도로 둥지를 옮겼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됐는데 한동안 포스코와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송도로 본사를 이전한 것에 대한 대한 피로도와 함께 ‘포스코’라는 사명을 사용하지 않는 대우인터내셔널에 포스코가 사명 변경을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어 왔다.

또 대우인터내셔널의 핵심 사업이었던 미얀마 가스전을 모기업인 포스코가 분할매각하려 하자 이 사태로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전 사장이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9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송도 본사 이전 후 처음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으며 대우인터내셔널 챙기기에 나서기도 했다.

경기도 분당 판교에는 IT기업이 다수 입주해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국내 1위 포털 네이버다. 네이버의 판교 본사인 그린팩토리는 지난 2010년 완공됐으며 지하 7층부터 지상 28층까지 135미터로 이뤄졌다. 또 엔씨소프트, 네오위즈홀딩스 등 IT 벤처기업들 또한 판교에 위치해 테크노벨리를 이루고 있으며 SK플래닛 역시 판교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본사를 제주도에 두고 있는 카카오 또한 일부 인력은 판교에 적을 둔 상태다. 카카오는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제주도에 위치한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사명에서 ‘다음’을 뗀 후 ‘카카오’로 거듭나면서 다음에서 시작된 제주 본사가 사실상 힘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지난 7월 “본사는 제주이며 이전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제주 입장에서도 카카오는 제주 지역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축으로 여겨진다. 카카오 또한 제주 특산물 공급 등을 통해 지리적 입지를 잘 활용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10일 제주감귤 모바일 유통 플랫폼인 ‘카카오파머 제주’를 오픈했다. 이는 카카오가 추진하고 있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파일럿 서비스이나 제주 특산물 공급을 통해 O2O 프로젝트 강화 및 제주 경기 활성화에 한 몫을 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기업들의 본사 이전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한정돼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특히 일부 임직원들은 생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또 사옥 이전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으며 더 큰 손해를 입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각 계열사의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선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임대 사옥을 이용하기보다 토지 구매를 통해 사옥을 짓는 것 또한 비용 절감을 이끌 수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