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지도 전쟁'… 승자는 누구인가SK플래닛, 김기사 상대로 '지도 저작권' 소송워터마크·오타 들며 증거 제시김기사, "SK플래닛 지도 사용한 적 없다"한국공간정보통신 나서며 '지도 저작권' 공방 가열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를 운영하는 록앤올의 박종환 공동대표가 3일오전 서울 역삼동 록앤올 본사에서 SK플래닛으로부터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소송을 당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플래닛이'지도 저작권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노하우를 자랑하는 네비게이션 '티맵'의 지도 데이터베이스(DB)를 국내 1위 내비게이션앱 '김기사'가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SK플래닛은 김기사 측에 지도 DB 사용 중단과 폐기를 요청했다. 김기사의 개발업체인 록앤올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SK플래닛의 지도 DB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SK플래닛과 김기사의 공방이 이뤄지는 와중에 지도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공간정보통신'또한 지적 재산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 SK플래닛이 김기사에게 지적 재산권을 침해당하기 이전에 SK플래닛이 먼저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안내하는 지도 기술은 내비게이션, 앱택시 등 관련 업계 경쟁의 핵심의 축이 됐다. SK플래닛을 비롯한 업체들이 지도를 둘러싼 데이터 정보 권리에 민감하게 나서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SK플래닛-김기사, '진실은 법정에서'

SK플래닛은 지난 2일,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를 운영하는 록앤올을 상대로 T맵 전자지도 데이터베이스(DB) 무단 사용 중단과 관련 정보 폐기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또 무단 사용 기간에 발생한 피해금액 5억원을 보상 금액으로 청구했다.

SK플래닛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SK플래닛은 T맵의 주요 서비스를 플랫폼화해 공개하며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록앤올과 최저 수준의 가격으로 T맵 전자지도 DB를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지난해 2월 종료됐다. SK플래닛 측에 따르면 계약 종료 후에도 전자지도 DB 교체 작업을 위한 10개월의 유예 기간과 3개월의 추가 유예기간을 줬다. 그러나 올 9월까지도 김기사 서비스에서 T맵 전자지도 DB 고유의 디지털 워터마크가 다수 발견됐다는 게 SK플래닛의 주장이다.

록앤올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이에 대해 반박했다. 지난 3일 록앤올의 박종환 대표는 "SK플래닛이 주장하는 T맵 전자지도 DB 무단사용 사실이 없어 지식재산권 침해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지도에 표시된 워터마크는 자체 지도 구축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의 일치라는 해명이었다. 아울러 록앤올 측은 김기사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자 이를 T맵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 SK플래닛이 지도공급 계약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계약을 끊겠다거나 계약금을 과도하게 인상하는 식으로 '갑질'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플래닛은 록앤올의 기자 회견 후 추가 보도자료를 통해 록앤올의 주장을 반박했다. 특히 SK플래닛이 증거로 활용한 지도에 삽입된 워터마크가 계약 종료 시점 후인 11월 3일에도 그대로 김기사의 지도에도 나타난다는 점을 반박 자료에 넣었다. 또 "그간의 벤처 지원 노력들이 폄하되고 지식재산권 보호 요청들이 대기업의 횡포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 밝히며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 논쟁보다는 당초 계약 종료 시 합의한 대로 T맵 전자지도DB의 즉각적인 교체를 재차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록앤올 측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양사의 '지도 전쟁'은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지적 재산권 보호'가 소송의 본질

SK플래닛 측은 이번 소송의 목적을 지적 재산권 보호라 설명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하루에도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건물이 아주 많다. 그러한 사안을 반영하기 위해 직원들이 매번 현장실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발품을 팔아 얻은 소중한 데이터인 만큼 지적 재산권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사태에 한국공간정보통신이 뛰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 3일 한국공간정보통신(KSIC)의 김인현 대표는 SK플래닛과 김기사의 공방전과 관련해 개인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의 요점은 이러하다. SK 주장에 따르면 김기사가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도의 원천은 한국공간정보통신의 데이터라는 것이다.

지난 11일, 한국공간정보통신 사무실을 방문해 김인현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지적 재산권 침해에 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났다. SK 측이 김기사로부터 지적 재산권을 침해받았다고 하지만 그 전에 SK가 먼저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SK와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지난 2007년 지도 사용권 판매 계약을 맺었다. 그 당시에는 SK플래닛이 아닌 SK에너지와 계약을 맺었다. SK에너지는 SK플래닛의 모회사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SK 측은 계약 비용 외에도 다른 기업에 지도를 판매할 시 일정한 비용을 주기로 돼 있다. 그러나 SK 측은 이를 이행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김 대표는 "SK와의 계약은 초기 비용과 러닝 개런티 지불로 나눠진다. 그러나 SK 측으로부터 러닝 개런티를 받은 일이 없다"고 밝혔다.

SK플래닛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SK플래닛 관계자는 "한국공간정보통신에서 구입한 데이터는 '지도'가 아니라 '지도의 지번 체계'라고 설명했다" 또 이마저도 현재는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지번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2008년부터 성도소프트의 지번 체계를 사용했으며 현재는 맵퍼스의 것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지번 데이터 사용료 역시 2007년에 모두 지불했으며 2008년부터는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계산이 다 끝난 상황이라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지번 체계는 지도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다. 현재는 한국공간정보통신의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사실관계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지도의 지번 체계는 지도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이미지만 있다고 해서 길을 찾아갈 순 없다. 이미지에 부여되는 지번을 통해 지도가 비로소 완성이 되는데 이에 대해 '지번 체계'만 구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우선 SK플래닛-김기사, SK플래닛-한국정보통신의 공방에서 공통적으로 재기되는 건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문제다. 세 업체 모두 지도의 지적 재산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특히 제작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한 지도의 경우, 데이터를 축적한 기업의 권리는 소중하게 보호돼야 한다. 재판을 통해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가려지겠지만 일단 한국공간정보통신의 주장은 SK플래닛과 김기사의 소송에는 영향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SK가 한국공간정보통신의 데이터를 구매한 것은 이번 소송과는 무관하다고 언급했다.

김기사와 한국공간정보통신은 대기업의 갑질 논리를 들고 나왔다. 다만 이 문제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자칫하면 지적 재산권 논리가 대기업의 갑질, 혹은 벤처기업의 을질로 흐려질 수도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