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 참여… 일자리·눈치보기?삼성·현대차 등 재계 잇따라 기부금 기탁…청년희망펀드 800억 돌파자리 창출효과는 '미지수'… "대통령이 지켜본다" 준조세 시각도

청년희망펀드를 운영할 청년희망재단이 지난 11월 5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내 재단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하고 출범했다. 고용노동부의 설립 허가를 받아 출범한 재단은 황철주 이사장을 포함해 총 7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됐다. 사진=연합
'헬조선', '금수저와 흙수저'… 날로 살기 힘들어지는 우리 사회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신조어들이다. 이 신조어들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노력해도 타고난 부를 극복할 수 없는 세태를 풍자하는데 쓰인다.

신조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단군이래 최고 스펙'이라 불리지만 침체되는 취업률로 고통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패배감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높은 청년 실업률의 해법을 찾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지난 9월 청년희망펀드 출범을 통해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출범과 동시에 박 대통령이 첫 번째 기부자로 나서며 개인 자산 2000만원과 함께 매월 월급의 20%인 약 320만원을 기탁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한 덕인지 대기업들은 지난 10월부터 총수들의 사재와 함께 임직원까지 동참시켜 청년희망펀드에 기부금을 기탁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청년희망펀드 기부금 기탁이 청년 실업 해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800억이 넘는 기탁금이 모였지만 아직까지 청년희망펀드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 방향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기업들 또한 눈치 보면서 기부금을 내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선 억울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기부금을 안 내기도 모호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다 재계 또한 기부금 기탁과 관련한 압박을 받는다는 설도 돈다. 청년희망펀드에 날로 쌓여가는 기부금이 청년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대기업, 청년희망펀드 기부 행렬 동참

지난 10월부터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청년희망펀드 기부금 기탁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10월 22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 사장단과 임원진이 50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150억원, 계열사 임직원이 50억원을 기탁했다. 11월까지 재계의 청년희망펀드 기부는 이어지고 있는데 동참한 기업만 해도 LG(100억원), 롯데(100억원), 효성(20억원), SK(100억원), GS(50억원), 두산(35억원), 한화(40억원), 신세계(100억원), 한진(30억원) ,LS(25억원), 코오롱(12억원)에 이른다.

연일 쏟아지는 기부 소식이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기업 총수들의 청년희망펀드 사재 내놓기가 정부의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른바 '박근혜 펀드'라 불리는 청년희망펀드는 박근혜 정부가 마련한 청년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그러나 이 펀드로 운용된 자금이 정확히 어떻게 쓰일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재 내놓기와 임직원의 연봉 일부를 내놓는 것은 그저 정부의 뜻에 동참하기 위한 것일 뿐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19일 국무총리초청 만찬에서 "청년희망펀드에도 적극 참여하고 창조경제 실현과 사회공헌 등에 힘쓰겠다"고 발언했다.

특히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대기업들은 면세점 재허가를 앞두고 총수의 사재까지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사재 30억원을 내놨으며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도 사재 60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면세점 재허가에선 고배를 마셨지만 SK의 최태원 회장 또한 사재 60억원을 내놨다. 이는 면세점 심사 항목에 포함된 사회적 기여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연일 구설수에 올랐던 롯데 또한 기부금 내놓기에 빠지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사재 70억원을 내놓으며 청년희망펀드 기부에 동참했다. 신 회장은 청년희망펀드 기부 외에도 롯데문화재단 설립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롯데 액셀러레이터'에 총 200억원의 사재를 내놓기도 했다. 때문에 기업들은 구설수를 무마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부금 기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新 준조세'가 된 청년희망펀드 기부

총수들이 사재까지 털어 기부에 나선 '청년희망펀드' 는 정확히 어떤 목적을 갖고 있을까. 청년희망펀드는 지난 9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1호 기부를 시작으로 개시됐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청년들의 일자리 어려움을 덜어주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참여로 마련되는 펀드'라 한다. 11월 20일 기준으로 누적 기부건수는 8만8803건에 이르며 누적기부금액만 825억5829만원에 이른다.

8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확보했지만 청년희망펀드의 구체적 청년실업 지원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다. 청년희망펀드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을 현재 준비 중이며 12월 열리는 이사회에서 확정 지을 계획"이라 밝혔다. 현재는 펀드를 조성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청년희망펀드가 직접적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일 이어지는 기업들의 기부금 기탁은 과연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 실제 기업들의 청년 일자리 창출 현황은 어떨까. 올해만 해도 삼성그룹이 2년간 3만명, 현대자동차가 올해 9500명과 임금피크제를 통해 추가로 1000개의 일자리를 확보한다고 밝혔다. 또 SK그룹이 2년간 2만4000여명, 롯데그룹이 3년간 2만4000여명으로 총 채용 규모를 합치면 2~3년내 8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돼 '역대 최대 규모'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 개수는 협력사, 계열사, 비정규직 등도 포함한 수치다. 기업 차원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기엔 다소 부풀려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 공헌은 일자리 창출이다. 기부금을 기탁하는 것보단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업 입장에서도 청년희망펀드 기탁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기부금까지 기탁했는데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평을 듣는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 10위권에 든 대부분이 기업이 총수를 중심으로 기부금 기탁을 완료했는데 아직 내지 않은 기업들 또한 '눈치보기'에 나서며 기탁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청년희망펀드 기부금을 내지 않은 재계 10위권 내 기업은 총수 체제로 운영되지 않는 현대중공업과 KT만이 남았는데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KT 또한 청년희망펀드 기부금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질 것"이라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정책이 기업들의 기여로 이뤄진다는 비난도 있다. 창조적으로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해 주진 않고 기업의 곳간만을 노린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기부의 경우 세금은 아니지만 꼭 납부해야 하는 '준조세'로 굳어져 버린 모양새다. 자발적으로 모금을 받는다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너도나도 기부금을 내는 상황에서 빠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