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편으로 적 옮기는 직원들… 위로금 협상부터 고용 승계까지

삼성SDI 여수사업장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여수사업장 본관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삼성그룹이 삼성SDI 케미칼 부문을 롯데그룹에 지분 매각하는 것과 관련해 매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사진=연합
삼성, 화학 빅딜로 '대규모 인력이동'
한화, 위로금 갈등 겪기도… 롯데는 '진행 중'
면세점 특허 만료, 직원들 '갈 길 잃어'
롯데는 고용 보장 약속, SK는 대책 마련 중

저성장 시대를 겪게 된 대기업들은 사업 재편과 신규 분야 진출을 통해 이익 창출을 위한 주판을 열심히 굴리는 중이다.

재계 1위 삼성은 실용주의 전략에 따라 비주력 계열사를 과감히 매각하고 있다. 한화와 롯데는 이를 인수하며 화학 분야의 강자로 거듭나기 위해 정진 중이다. '면세점 전쟁'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유통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롯데와 SK는 탈락의 쓴맛을 봤으며 신세계와 두산은 축포를 쏘아 올렸다.

기업들이야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해 인수, 매각, 신규 사업 분야 진출을 한다곤 하지만 임직원 입장에선 사업 재편에서 발생하는 자신들의 고용 환경 변화에 더 관심이 갖게 마련이다.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임금과 복지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고용을 보장받지만 하루아침에 소속 회사가 바뀌는 충격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면세점 분야의 경우 특허 기한이 5년으로 정해지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5년마다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롯데, "화학 계열사 직원, 전면 고용보장 할 것"

면세점 특허를 잃게 된 롯데 월드타워점은 직원 고용과 재고 처리 문제, 향후 부지 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연합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노선에 걸맞게 계열사 매각과 재편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눈길을 끈 것은 두 차례의 '빅딜'이었다. 삼성은 한화와 롯데에 각각 화학 계열사 부문을 전면 매각하면서 화학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삼성은 지난해 8월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했다. 뒤이어 지난 10월에는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과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에 매각해 화학 사업을 완전히 정리했다.

'실용주의'에 걸맞은 매각이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학 계열사 임직원들은 '삼성맨'에서 '한화맨', '롯데맨'이 됐다. 소속 회사가 바뀌는 것은 샐러리맨들에겐 굉장히 큰 일이다. 계열사를 인수하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장담할지 아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빅딜로 '롯데맨'이 될 삼성 직원들은 삼성SDI 1200여명, 삼성정밀화학 800여명, 삼성BP화학 200여명 등이다. 삼성의 화학 계열사를 안게 된 롯데그룹 측은 "인수되는 회사 임직원들에 대한 고용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과정에서 불합리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종업원들에게 불리한 처우를 강요하지 않으며 직원들의 고용에 대해 합리적인 보장을 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고용 보장은 확실시됐으나 하루아침에 소속이 바뀌게 되는 직원들에겐 위로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삼성은 지난 한화 매각 후 직원 1인당 4000여만원과 함께 6개월치 봉급을 미리 지급한 바 있다. 한화 매각 시 위로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롯데로 가게 되는 계열사 직원들에게도 위로금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특허를 잃게 된 SK워커힐점은 직원 고용과 재고 처리 문제, 향후 부지 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SK네트웍스
위로금 규모 두고 갈등 빚기도

고용보장과 함께 위로금 지급까지 이뤄지지만 재계 1위 '삼성맨'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상실감은 생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또 회사별로 차이가 나는 연봉과 위로금 규모를 두고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계열사 매각으로 인한 인력 이동이 마냥 무난히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삼성은 이미 지난 한화와의 매각 과정에서 계열사 직원들과의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의 대상자였던 한화종합화학의 경우 임금 협상 과정에서 노사가 갈등을 겪어 직장폐쇄 사태까지 겪기도 했다. 이미 정해진 빅딜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노사의 임금 갈등은 양측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번 빅딜 과정에서 직원들의 입장은 어떨까. 이번 롯데 매각은 계열사 별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노사가 긴 협상을 벌인 끝에 롯데로의 매각을 환영한다는 직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 매각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미 한화종합화학 사태를 지켜 본 삼성정밀화학 노사는 롯데를 상대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노사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 것이다. 특히 완만한 노사 협의를 이루기 위해 성인희 삼성정밀화학 사장과 이동훈 노사위원장을 포함해 임직원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반면 삼성SDI는 갈등을 겪는 중이다. 롯데그룹에 매각된 삼성SDI의 케미칼 부문 직원들은 지난 11일 '매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비대위는 기존 사원협의회 의원 7명을 포함해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 날 비대위는 "삼성SDI의 케미칼 부문을 비롯한 화학계열 3개사가 롯데그룹으로 매각된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서 접했다"며 "최고경영자인 조남성 사장으로부터 한 마디 설명이나 해명이 없는 상황을 개탄치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사업 매각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며 향후 의왕사업장 비대위와 협력해 공동 비대위를 세울 것이라 말했다.

같이 매각 대상이 됐더라도 이렇게 상이한 반응을 불러온 것은 리더십의 차이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한화로 화학 부문 계열사가 매각되면서 남은 삼성 화학 계열사 직원들은 '이제는 우리 차례'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매각이 결정되자 혼란스러워 하는 직원들을 위해 삼성정밀화학 사측이 대화의 장을 연 것이다. 반면 삼성SDI의 경우 최고 경영자의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 직원들의 상실감을 더욱 부추긴 듯하다.

빅딜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기 위해선 기존 인력들을 최대한 잘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금과 복지 등을 두고 노사가 갈등을 빚었던 한화종합화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화는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에 따라 계열사를 인수하게 된 기업들은 기존 인력들을 반발 없이 흡수하기 위해 노력을 다 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사업권 잃은 기업들, '직원들 어쩌나'

대규모 인력 이동이 이뤄지는 건 면세점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4일,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결과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신세계와 두산이 신규 면세사업에 진출하게 돼 함박웃음을 지은 반면, 롯데와 SK는 방어전에 실패했다.

신세계는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면세점을 유치하게 됐고 두산은 중구 장충단로 두산타워에 위치한 두타 면세점으로 면세 시장에 새로운 발을 들여놓게 됐다. 롯데의 경우 중구 을지로 롯데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소공점 수성에는 성공했으나 월드타워점 허가를 잃게 되면서 롯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잠실 월드타워의 빛이 바래게 됐다.

SK는 지난 23년간 운영해 온 워커힐 면세점 특허를 잃게 되면서 면세 사업에선 손을 떼게 됐는데 이는 실적 부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SK워커힐 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2600억원으로 전체 면세점 시장의 매출액 중 점유율 1%만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새로 면세점을 유치하게 된 기업들은 향후 면세점 문 열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나 문제는 면세점 특허권을 잃은 기업들이다. 당장 실적에 타격을 입게 된 것은 물론,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 면세점의 경우 재고 처리 문제와 향후 부지 처리 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면세점 특허권을 잃은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큰 손해지만 직원들의 경우 하루아침에 밥줄을 잃게 됐다는 것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 월드타워점의 경우 13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SK 워커힐 면세점에는 총 906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 정직원은 120명이다.

월드타워점 특허 재승인에는 실패했지만 국내 1위 유통 기업으로서 다양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롯데의 경우 기존 직원들의 고용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롯데는 지난달 16일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면세점 재승인 실패 긴급 대책 회의에서 월드타워점 근무 직원들을 롯데월드몰 입점 계열사에서 전원 고용하기로 정했다. 현재 월드타워점에서 근무 중인 직원 1300여명에 대한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을 롯데면세점 다른 점포에 수용하거나 백화점ㆍ마트ㆍ하이마트 등 월드몰 운영사에서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일단 그룹이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월드타워 면세점 직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동대문 신규 면세점 유치와 워커힐 면세점 수성에 실패한 SK의 경우 면세점 직원들의 고용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SK네트웍스 문종훈 대표는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면세사업본부 구성원들의 향후 진로를 포함한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신규사업자와의 협의 등을 통해 광범위한 해결방안을 강구해 나갈 예정"이라 말했다. 직원들의 고용 안정 여부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롯데처럼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면세점 임직원들의 경우 신세계와 두산 등 신규 면세사업자들이 고용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 빠르면 내년 4월말, 늦어도 5월 중에는 면세점 문을 열 계획인데 이와 관련해 기존 특허사업장에서 근무했던 협력사들이 신세계 면세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수용할 것이라 밝혔다. 신세계 측은 신규 시내면세점에 신세계 직영사원과 입점 브랜드 사원까지 포함해 최소 30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 파악하고 있다. 신세계디에프 성영목 사장은 "신세계는 기존 면세사업 인력을 충원할 필요성도, 충원 의지도 당연히 갖고 있다"며 "면세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의사를 존중해 단계적으로 필요 인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역시 사업권을 잃은 면세점 인력을 흡수하는 전략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의 조찬 후 기자들과 만나 "면세점 인력 정규직 채용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언급했다. 특히 면세 분야에 첫 진출하는 두산의 경우, 기존 인력을 흡수해 면세점 영업 노하우를 갖춘 직원들을 대규모 채용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판 'FA' 열리나

면세점 특허를 잃었지만 그룹 차원에서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신규 면세점 사업 진출자들이 인력을 흡수한다면 직원들의 고용은 어느 정도 안정성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인력 중에는 그룹 소속인 정직원들도 있지만 협력 업체 직원들도 많다. 현재 월드타워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 1200여명 중 150여명이 정직원이며 나머지 1150여명은 협력사 직원이다. 롯데그룹 측에서 협력사 직원까지 포함해 고용 안정을 약속했으나 불안감의 강도는 정직원들에 비해 더 크기만 하다.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이 나오고 있지 않은 SK 직원들의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특히 SK는 이번 워커힐 면세점 수성 실패를 통해 기존 직원들이 갈만한 유통망을 모두 철수하게 돼 '사면초가'의 형국이 됐다. 협력 업체 직원들의 채용에 관해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협력업체에게 직원 고용 여부를 확정지으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협력업체 직원들의 채용 여부를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 인력들이 고용 여부를 고민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면세점 시장에선 활발한 경력직 이동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면세점판 'FA'이다. 새로 문을 여는 면세점만 해도 두산의 두타 면세점, 신세계 면세점 외에 한화갤러리아, HDC신라, SM면세점 등 다섯 곳에 이른다. 신규 면세점들은 인력 확보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측은 신규 영업장에 필요한 인력을 3000여명 정도로 예상했다. 새롭게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는 두산의 경우 그보다 더 많은 4000~50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면세 분야에서 일한 적이 있는 경력직 채용이 절실하다. 오는 12월 문을 열 HDC신라면세점도 2000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면세점 특허 기간이 5년으로 정해지면서 직원들이 5년마다 거처를 옮겨야 하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면세점 경쟁력 약화와 함께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정책에 비난이 쏠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룹 차원에서 직원들의 거처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신규 면세점이 문을 열기 때문에 고용 안정에 대해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 밝혔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