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고용 대신 부담금… 편법 만연국내 대기업, 장애인 채용 한 달 뒤 퇴사 종용올해 장애인 고용부담금 4241억원… 매년 증가해"장애인 취업 전후 관리 위한 유기 체계 구성해야"

지난달 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5 부산 잡(JOB) 페스티벌'에서 장애인들이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엔(UN)에서 지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 국내에서도 지난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등은 장애인의 복지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취업, 교육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장애인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책에 우롱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한 대기업의 계열사에서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후 한 달 만에 퇴사를 요구한 사건이 발생해 장애인 의무고용의 민낯이 드러난 바 있다.

한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 실태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인 A사는 최근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맞추기 위해 눈속임 채용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사는 지난 9월 채용한 B씨(33·지체장애 6급)에게 한 달 만에 퇴사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B씨에 따르면 A사의 2015 상반기 공개 채용에 지원했으나 불합격됐다가 넉 달 뒤 장애인 특별 전형으로 채용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 후 사흘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B씨가 A사에서 근무한 지 한 달이 됐을 무렵 사측은 느닷없이 퇴사까지 한 달의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했다. 당시 인사팀 관리자가 "역량이 부족해 시킬 일이 없다"며 퇴사를 요구했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B씨가 퇴사 요구를 거부하자 A사는 B씨를 전공과 관련 없는 컴퓨터 지도 설계팀으로 발령냈다. 해당 팀의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 공학을 전공자로 7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대부분이라 B씨는 이 또한 부당 해고의 연장선상이라고 밝혔다.

조사결과 A사는 노동부로부터 장애인 고용 저조 기업으로 선정돼 곤란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고용부로부터 지시받은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채우기 위해 급히 B씨를 채용한 것으로 B씨는 추측했다.

이에 A사 측은 B씨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인사팀의 실수로 인해 촉탁 계약직으로 채용하려 했던 B씨와 정규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며, 사측의 실수이므로 B씨를 정규직으로 대우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 미달 시 고용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 사례가 최근 또 다른 기업에서도 발생했다"며 "사측의 이러한 압력에 장애인들이 노동청에 고발조치를 한다고 통보하는 등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용보다 벌금 택하는 기업들

A사와 B씨의 사건은 국내 기업의 장애인 채용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된 지 횟수로 25년째이지만 장애인 의무고용을 충족하지 못해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는 기업이 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한 사업장은 7771곳으로 이들은 총 4241억 670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민간기업이 납부해야 하는 금액은 4042억원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상시근로자 100명 이상의 사업장 중 민간기업은 피고용인의 2.7%에 해당하는 인원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민간기업은 매년 수십억 원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는 부담금을 납부하는 사업장은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의무고용 고용부담금 납부액은 2013년 7403곳(3187억 7700만원), 2014년 7373곳(3419억 5800만원)으로 증가해 장애인의 취업이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 30대 기업 중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은 기업이 28곳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중 의무고용률을 가장 심하게 지키지 않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7190명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나 의무고용률에 미치지 못하는 5032명만을 고용해 185억 1672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내야 했다. 고용부담금이란 장애인 의무 고용 인원에 미달하는 수에 따라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다.

뒤를 이어 LG가 133억 3258만 원을, SK가 111억 9263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냈다. 그 다음으로 GS, 현대자동차, 한진, 신세계 등이 뒤를 이었다.

공공기관 또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심한곳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서울대병원은 의무고용인원보다 205명 적은 111명만을 고용해 18억 3973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냈다.

준정부기관에선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가장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으며, 1억4395만 원에 달하는 고용부담금을 냈다. 지방공기업에선 서울도시철도공사가 1억 7937만 원으로 가장 많은 고용부담금을 냈다.

30대 공기업 중에선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해양환경관리공단, 한국관광공사 순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국석유공사는 8221만 원을, 한국가스공사는 6564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냈다.

한편 여성장애인의 경우 남성장애인보다 취업 문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3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여성장애인 취업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여성장애인의 고용률은 19.8%로 남성장애인의 고용률(49.4%)에 비해 매우 낮았다.

또한 여성장애인의 실업률은 9.3%로 남성장애인의 실업률(5.8%)에 비해 높았다. 여성장애인과 남성장애인을 비교했을 때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 상태에 놓인 여성장애인이 많다는 점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여성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의무고용제도를 통해 고용된 여성장애인은 19.5%에 불과해 남성장애인(80.5%)보다 의무고용제도의 혜택을 적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석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기업, 장애인 모두가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5일 열린 제7회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이 교수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적합업종을 연계해 장애인의 업무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에 대한 재정 지원방안을 강화하고 홍보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하고 최종목표는 장애유형과 특성에 따른 장애인의 취업 전후 관리가 사후조치를 통해 보완될 수 있도록 유기 체계를 구성해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