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가격 인상 '정경유착' 의혹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초동에 위치한 편의점의 소주매대. 사진=윤소영 기자
참이슬 O2린 한라산소주 인상·처음처럼 좋은데이 계획 중

"주류 업계는 대표적 관피아… 928억 원 증세 기대"의혹

주류 업계"조세제도와 연계시킨 의혹 제기는 무리"

국세청"소주값 올리라 마라 할 권한 없어… 나중에야 알아"

'서민의 술' 소주가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줄줄이 가격 인상을 시작했다. 참이슬 후레시, 참이슬 클래식 등으로 점유율 48%를 차지하며 업계 1위를 달리는 하이트진로가 불경기를 반영한 '최소한의 인상'이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납세자권익보호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은 느닷없는 소주값 인상에 정부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장기간 지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서민의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진 상황에서 소주값 인상을 둘러싼 각계각층의 입장 차이를 들어봤다.

참이슬 시작으로 소주값 인상

하이트진로가 지난달 30일부터 참이슬 후레시, 참이슬 클래식 출고가를 병당 961.70원에서 1015.70원으로 54원(5.62%) 인상했다. 가격 인상 후 지난 15일 서울 중구의 CUㆍ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는 1300원이었던 참이슬이 1600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소주값이 인상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소주의 주재료인 쌀, 보리쌀, 옥수수 등 곡류와 고구마, 감자, 타피오카 등 서류의 가격은 하락세인데 소주값 인상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이트진로 측은 지난 3년 간 물가 상승 때문에 소주값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단순 재료비가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가격 인상이 없는 건 아니다. 소주 제조에 있어서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012년 비용 인상 이후 각종 포장재ㆍ용역비 등이 12.5% 가격 인상돼 비용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며 "내부적으로 이를 최대한 흡수해서 인상요인을 최소화해 이번에 5.62%를 인상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 인상된 54원 중 실제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이 인상된 건 25원"이라며 "나머지 29원은 세금 인상으로 소주뿐만 아니라 주류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3%이기 때문에 세금이 증가되면 가격 또한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다른 업체들 또한 소주값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맥키스컴퍼니(구 선양)와 한라산소주는 O2린, 한라산소주의 출고가를 각각 34원, 28원 인상했으며 업계 2위, 3위인 롯데주류(처음처럼)와 무학(좋은데이)은 소주값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포장비, 인건비 등 부대비용이 올라도 서민이 애용하는 음식료품은 가격을 인상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부담이 있어도 가격 인상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는데 선발 업체를 따라 나머지 업체들도 (가격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줄줄이 인상되는 소주값 소식에 식당, 술집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초동에서 해물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지난 주 (소주값을)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렸다"며 "다른 집들도 다 올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소주값 인상 원인을 밝혔다.

서울 노량진동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재수생,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네댓 명씩 와선 탕 안주 하나에 소주를 여러 병 시키곤 했는데 이젠 이마저도 비싸다고 안 올까봐 걱정된다"고 한탄했다.

"국세청 개입"vs"지나친 억측"

소주값 인상에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8일 정부가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주류 회사의 가격 인상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451.6원이던 소주 원가가 476.9원으로 25.3원 상승, 원가의 72%인 주세와 주세의 30%인 교육세, 세금에 원가를 더한 금액의 10%인 부가가치세 등을 합쳐 연간 약 928억 원이 소주세로 증세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어 "판매마진이 포함된 원가를 올려 이득을 보는 소주 회사들과 원가인상을 통해 주세 등 소주 관련 세수가 전반적으로 늘어나 반가운 국세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며 "살림이 점점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이 또 소주회사와 정부를 부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14일 소주값 인상과 관련해 국세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사항은 주류 회사들이 소주값을 올리면서 국세청에 제출한 신고서류와 제출근거, 주류 관련 회사에 취업한 퇴직 세무공무원 현황 등이다.

이와 관련, 한국납세자연맹은 "역대 국세청장들 상당수가 세금 비리로 감옥에 갔으며 특히 국세청장이 대통령선거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걷어 준 이른바 '세풍사건(1975년 제15대 대선 당시 여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불법 모금을 한 사건)'은 국민의 혈세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용한 후진국 범죄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주병 뚜껑에 납세필증을 붙이던 시절부터 소주병 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세왕금속공업 등의 회사 임원들 대부분이 국세청 출신"이라며 "주류 관련 업계는 대표적인 관피아(官+마피아) 업종이기 때문에 대선자금 모금도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직도 국세청과 주류회사는 갑을 관계로 이번 소주값 인상도 국세청의 묵인 없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세청의 규제를 받는 소주 업계가 단독으로 소주값 인상을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의 이러한 의혹 제기에 주류 업계에서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메이저 소주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조세제도와 관련해 한국납세자연맹이 제기한 부분에 할 말이 없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조세법상 돼있기 때문에 세수 증대를 위해 사기업이 (소주값을) 인상했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표현"이라며 "1년에 한 번씩 가격을 인상한 것도 아니고 3년 만에 (소주값을) 인상한 건데 소주의 인상 가격이 높은 편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주 업계에서는 2012년에도 4년 만에 가격 인상을 했는데 커피 업계를 보면 2년마다 가격 인상을 한다"며 "인상 요인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늦춰서 인상을 한 것이기 때문에 조세제도와 연계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세청 측 또한 억측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이 (소주값을) 올리라 마라 할 권한이 없다"며 "MB정부 때 소주, 맥주는 서민 물가라 물가 관리 품목에 해당되지만 지금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1999년 이후부터는 개인 회사가 가격을 변동하고 나서 이틀 내 국세청에 알리게 돼 있다"며 "(주류) 회사들이 소주값을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는 우리도 (이들이) 올리고 나서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