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키덜트족 지갑을 열어라'롯데·신세계백화점·현대백화점 '키덜트존' 운영스타워즈7 연계 마케팅으로 '효과 톡톡'구매력 갖춘 3040 남성고객 주 대상전망 밝으나 아직 마니아층 위주, 확산은 두고 봐야

지난 9월 롯데마트 잠실점에 오픈한 '키덜트존'. 사진제공=롯데마트
직장인 김모(34세)씨는 요새 집 근처 마트에서 '장난감'을 살펴보는데 푹 빠져 있다. 3살 된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씨의 관심사인 RC카(무선조종자동차)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어렸을 적부터 무선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장난감차를 늘 갖고 싶었다. 그때는 비싸서 사지 못했지만 사회인이 되고 나니 RC카를 모을 수 있는 경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몸은 어른(Adult)이지만 취향은 아직 어린이(kids)를 벗어나지 못한 키덜트(kidult)족이 유통업계 큰손으로 자리잡았다. 자녀나 조카의 선물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을 위한 장난감을 구매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정판이나 고가의 제품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키덜트족은 매장 전체 구매 실적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키덜트족, 소수의 취향 아닌 다수의 문화로

유통업계는 최근 연이어 '키덜트존'의 문을 열며 어른아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세 곳의 지점에서 '키덜트 전문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판교점에 세 번째 '키덜트 존'을 열었으며 이를 기념해 타워즈 7 스톰트루퍼 아시아 한정판을 포함해 아이언맨 마크 24, 어벤져스 마리아힐 피규어 한정판 등 총 80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에 레프리카, 워클, 볼케이노 등 키덜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레고 전시회를 열었고 10월에는 국내 백화점 최대 규모로 프리미엄 키덜트&하비페어를 진행해 드론, 헬리캠, 피규어, 전동 킥보드 등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전시 및 판매했다.

여기에다 지난 17일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7'는 유통업계의 '키덜트 마케팅'에 불을 붙였다. 신세계는 지난달 27일부터 디즈니와 손잡고 '스타워즈 에피소드7' 테마에 맞춰 신세계가 직접 만든 스타워즈 상품,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상품 판매를 비롯해 스타워즈 피규어 및 레고 전시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스타워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데 스타워즈 마케팅 실시 이후 3주간 주말 전체 누계 실적이 전년 대비 15.8% 신장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4년간 백화점 매출 신장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른 상황에서 고무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신세계 백화점 측은 "스타워즈를 구매한 고객들이 스타워즈 상품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패션장르는 물론 스포츠, 주얼리ㆍ시계, 생활 장르까지 쇼핑해 해당 기간 모든 장르에서 매출이 급격히 오르는 효과를 본 것"이라 설명했다.

롯데마트 또한 스타워즈7을 통한 키덜트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롯데마트 판교점에선 스타워즈 특별관을 운영한다. 특별관에서는 스타워즈 7 관련 피규어가 최초로 전시된다. 스타워즈 7 스톰트루퍼 피규어는 아시아 지역 한정판으로 국내에서는 롯데마트 판교점에서 단독 사전 예약 판매한다.

마니아에만 기대기엔 2% 부족해

유통업계가 키덜트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키덜트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올해 11월까지 키덜트 완구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에 비해 18.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피규어 제품이 속한 수집용 완구의 매출은 6.8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키덜트 전문관인 레프리카 또한 지난 8월 21일 문을 연 이후 매달 20%씩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5000억~7000억원으로 전망되며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키덜트 시장이 산업간 경계를 허물며 영화, 패션, 완구, 음식 등으로 영역을 빠르게 넒혀 가고 있어 2~3년 내에 1조원의 시장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 구조와 관련이 깊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홀로족' 사이에서 혼자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완구나 조립 장난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날로 저하되는 출산율은 어린이 대상 완구 시장의 침체를 가져오고 있다.

여성들이 주 구매자였던 기존 마케팅과는 달리 경제력을 갖춘 30~40대 남성들이 주 고객으로 떠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키덜트 매장들의 위치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는 현상이다. 롯데마트는 잠실과 구로에 이어 세 번째 키덜트존을 판교에 열었다. 현대백화점 또한 판교점에 키덜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키덜트 매장들이 판교에 위치해 있는 건 국내 유수의 IT기업들이 판교로 이전하며 구매력을 갖춘 30~40대 남성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키덜트존의 경우 매장 중에서도 실적이 좋은 곳에 입점시키는 경향이 있다. 높은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들이 뒷받침돼야만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키덜트 상품의 경우 한정판 피규어를 포함해 비교적 금액대가 높은 드론, RC카 등의 인기가 높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피규어 등 어른 장난감, 카메라 등 남성 취미 관련 상품군의 신장률은 지난해 21.7% 성장한데 이어 올해는 25.8% 증가하는 등 높은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남성 고객을 중심으로 가족 단위 고객의 소비를 유도해 전반적인 매장 매출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들의 등장, 복고 열풍으로 키덜트 시장을 바라보는 전망은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지나친 장밋빛 전망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까지 특정한 소비자들에게 국한된 시장이기 때문에 유통업계는 매장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든 지역 매장에 적극적으로 입점시키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는 향후 키덜트존의 매출 추이와 키덜트존이 매장 전체 실적 향상에 얼마나 효과를 주는지 지켜본 후 키덜트존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