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반도체 직업병' 삼성전자-반올림 논쟁

삼성 "모두 해결" vs 반올림 "문제 남아"
'반도체 직업병 문제'8년 10개월… 예방 측면 합의
삼성전자 "보상·사과·예방 3대 쟁점 모두 해결"
반올림, "삼성전자 보상 신청 압박… 풀어야 할 문제 많아"
  • 백수현 삼성전자전무와 김지형 조정위원장, 송창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대표, 황상기 반올림교섭단 대표(왼쪽부터)가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재해예방대책 합의서에 서명한 후 이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집계된 삼성전자 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 222명, 사망자 76명.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씨가 2007년 3월 사망한 이후 삼성전자의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약 8년 10개월 만인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삼성전자,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반올림은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튿날 반올림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삼성전자·가대위 측과 반올림의 2파전 양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문제 모두 해결"

삼성전자와 가대위, 반올림은 2014년 12월부터 백혈병 등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를 통해 보상ㆍ사과ㆍ예방 등 3가지 의제를 논의해왔다. 조정위는 지난해 7월 삼성전자 측에 보상·사과·예방과 관련한 해결 권고안을 전했다.

조정 권고안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협력사를 포함한 반도체ㆍLCD 생산공정 및 생산설비 업무 관련 재직자, 퇴직자 중 지정된 1ㆍ2군(백혈병ㆍ뇌종양ㆍ유방암ㆍ유산ㆍ불임 등), 3군(난소암ㆍ희귀질환·2세 질환 등) 질환을 겪는 이들에게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러한 보상 절차와 함께 삼성전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문을 낭독하고 피해자에게 사과문을 전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총괄하는 독립된 공익법인을 설립하며 1000억 원의 운영 기금을 기부해야 한다.

이에 삼성전자는 권고안 중 일부를 수용해 지난해 9월 보상위원회를 설치, 보상과 사과 작업을 진행해왔다. 유산과 불임을 제외한 1ㆍ2군, 3군 질환 발병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화ㆍ인터넷ㆍ이메일ㆍ우편 등을 통해 보상 신청을 접수받았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신청자 가운데 1차로 30명에게 보상금과 권오현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전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까지 삼성전자 및 협력사 전ㆍ현직 직원 150여명이 보상을 신청했고 100여명이 삼성전자의 보상 및 사과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가대위, 반올림과 재해예방대책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이들이 동의한 외부 감사 기구인 옴부즈맨 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종합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재해예방대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날 삼성전자 측 대표로 합의에 참여한 백수현 삼성전자 전무는 "오랫동안 묵어왔던 이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모든 당사자가 합의 정신을 잘 이행해 나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는 가대위 측에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전했다. 권오현 대표이사는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2년 전 기자회견 이후 20개월만에야 만나 뵙게 돼 죄송하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표명혔다.

이에 송창호 가대위 대표는 "삼성을 원망하고 미워했는데 사과와 보상, 예방까지 많은 부분을 양보하는 모습에서 진심을 느꼈다"고 답했다. 백혈병 피해자인 김은경씨는 "25년 전 1월 14일이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입사일인데 같은 날 이 자리에 오게 돼 뭉클하다"고 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재해예방대책 합의를 끝으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12일 예방 문제가 3자간 합의로 타결된 데 이어 이날 당사자들에게 사과문까지 전달됨으로써 조정의 3대 쟁점은 모두 해결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올림 "보상ㆍ사과 남았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삼성전자와 달리 반올림 측은 보상ㆍ사과 문제가 남았다는 입장이다. 고(故) 황유미씨의 부친이자 반올림 측인 황상기씨는 지난 12일 "유미가 병에 걸린 지 10년이 넘었는데 삼성이 겨우 얘기한 것이 재발방지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이 반올림과 대화해서 보상과 사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황씨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백수현 전무가 악수를 권하자 이를 거절해 쉽게 합의점에 이르지 못할 것을 시사했다.

다음날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공식화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권오현 대표이사 사과문에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없다"며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권영은 반올림 집행위원장은 "재해예방대책에 대한 합의만 이뤄졌을 뿐 사과와 보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삼성은 어제 재발방지대책 합의 직후 발표한 글에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말했다. 명백한 거짓이고 기만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측은 오히려 반올림이 다수를 기만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4일 한 관계자는 <주간한국>에 "보상과 사과 얘기가 끝나 이번에 재발방지대책이 나왔다"며 "사실상 타결이 맞다"고 못박았다.

이어 "신청자 90%가 보상과 사과를 받았는데 신청을 안 한 반올림 측 두 분이 모두가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과를 못 받은 것처럼 보도했다"며 "서로가 불신해 중립적 기구까지 만들어 조율했는데 그 이상의 다른 사과와 금전을 원하는 건지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또한 "반올림의 개입 자체도 문제가 있다. 정치투쟁과 시민운동을 하는 반올림이 대표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며 "반올림과 초기 함께 했던 (피해자) 가족들도 점차 반올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심쩍어서 별도의 대표기관을 만든 게 바로 가족대책위원회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올림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맞섰다. 지난 19일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는 "삼성전자가 언론을 앞세워 반올림을 비방하고 있다"며 "반올림이 피해자들에게 보상 신청을 하라 마라 하는 것이 아니다. 보상ㆍ사과 문제를 계속 얘기하자는 게 반올림 입장이다"고 밝혔다.

이어 "미안하지만 보상신청을 하겠다는 분들이 있다. 이들 말이 '보상 금액과 과정이 마음에 안 들지만 기회를 놓치면 한 푼도 못 받을까봐'다"며 "삼성전자가 피해자들에게 전화하고 찾아가서 12월 31일까지 신청하지 않으면 한 푼도 못 받는다고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반올림과 함께 했던 피해 당사자 및 가족 중 6명은 2014년 9월 반올림을 탈퇴하고 가대위를 구성했다. 이와 관련, 공 간사는 "가대위가 삼성전자에 의해 피해자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용당하고 있다. 다만 보상을 원하는 분들이 기분 좋게 마무리하신 것 같아 다행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가대위와 반올림은 아무 상관없는 곳이다. 문제는 삼성이 가대위하고 합의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시킨다는 것이다"며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삼성전자가 이렇게 우롱하며 회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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