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갑질’부터 취준생 착취까지 갑의 부당 횡포ㆍ권력 남용 빈발

운전기사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지난 21일경남 마산중부경찰서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몽고식품 회장 폭행 빙산의 일각…돈·권력 쥔 갑의 횡포 만연
땅콩 회항ㆍ청부 폭행ㆍ맷값 폭행 등 오너가 갑질 눈총받아
쿠팡ㆍ위메프ㆍ동아쏘시오홀딩스ㆍ롯데제과…취준생 설움 겪어
대리점·납품업체 상대로 한 대기업의 도 넘은 요구 빈번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상대적 약자인 을(乙)에게 행하는 부당한 횡포와 권력 남용을 지칭하는 신조어인 '갑질'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업에도 자주 발생해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기업 오너가의 갑질에서부터 대기업과 하청업체, 본점과 대리점ㆍ납품업체, 취업 과정에 이르까지 기업의 갑질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최근엔 100년이 넘은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갑질이 사회적 파문을 불러온 가운데 롯데ㆍ아모레퍼시픽ㆍ유한킴벌리 등 유명 대기업들의 갑질 논란이 쟁점화되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땅콩 회항'사건 등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기업들의 갑질을 살펴봤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롯데마트 한 매장의 전경, 롯데마트는 납품업체를 상대로 지나친 요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 오너는 '갑 오브 갑'

지난 21일 '회장님 갑질'로 물의를 빚은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폭행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경남 마산중부경찰서에 출석했다. 이날 김 명예회장은 "드릴 말씀이 없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며 "면목이 없다. 죄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경찰 조사는 지난해 연말 김만식 명예회장에게 2009년부터 폭행ㆍ폭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운전기사가 등장하며 시작됐다. 이 외에도 몽고식품 관리부장, 비서실장, 전직 운전기사가 연이어 피해 사실을 폭로하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로 인해 111년 전통의 몽고식품은 간장맛보다 갑질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김만식 명예회장은 경찰 조사 이외에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 출석해 운전기사 폭행죄로 수사받을 예정이어서 갑질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될 전망이다.

몽고식품과 마찬가지로 주류업체 무학 또한 최재호 회장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2014년 최 회장의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송모씨가 지난 18일 최 회장으로부터 상습적인 폭언에 시달렸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유니클로 한 매장의 전경. 유니클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헌 옷 수집을 강요해 논란을 낳았다. 사진=연합
송씨는 "야 인마" "운전하는 놈" "인생의 패배자" 등 최 회장의 언사로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간 외 근무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애견센터에서 애견 찾아오기, 최 회장 가족 차량 세차 등 업무 외적인 일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무학은 송씨를 '금품요구 및 공갈 협박'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무학 측은 송씨의 폭로를 두고 '돈을 요구하기 위한 협박'이라며 강경하게 맞서 양측의 진실 공방에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외에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기내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회항 후 사무장을 공항에 내리게 해 물의를 빚었다. 2011년 이윤재 피죤 창업주는 해고된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이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하자 청부 폭행을 사주해 그해 12월 법정 구속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도 있었다. 최 전 대표는 2010년 고용승계 문제로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주먹으로 폭행한 뒤 '맷값'으로 2000만원을 줬다가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대기업 '상생 대신 갑질'

기업 혹은 오너의 직원들을 향한 갑질 이외에도 대리점을 향한 갑질은 뉴스의 단골 소재다. 2013년 남양유업의 일명 '밀어내기(주문하지 않은 물품을 본사가 일방적으로 공급)'는 대기업 갑질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나 이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기저귀 업계 1위인 유한킴벌리의 대리점주들은 지난 13일 판매목표제 등 본사의 불공정행위를 폭로했다. 박상현 유한킴벌리대리점협의회 총무는 "유한킴벌리는 과도한 판매목표를 주고 달성하지 못하니 그만두라고 했다"며 "억울한 마음에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로 거듭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2월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특약점 70여 곳의 실적이 좋은 방문판매원들을 본인의 동의 없이 다른 특약점이나 본사 직영점으로 보낸 혐의로 아모레퍼시픽 측은 검찰 조사에서 이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주 업체인 배상면주가는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밀어내기' 관행으로 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며 검찰에 고발됐다. 이는 2013년 5월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인 이모씨가 본사의 '밀어내기'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서 비롯됐다.

편의점 업계의 가맹본부 갑질 문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기 안산시의 한 야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맹점주가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편의점을 운영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채만 늘어났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2013년 1월과 3월, 5월에는 각각 경남 거제시와 부산시, 경기 용인시에서 가맹점주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기와 장소는 제각각이었지만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과도한 위약금과 가맹본부의 영업 강요였다.

'악명 갑 ' 롯데마트·롯데홈쇼핑

유통업계에서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 있다. 바로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마트와 롯데홈쇼핑으로 중견ㆍ중소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을 강도 높게 자행해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한 목소리다.

롯데마트는 최근 '삼겹살 갑질'로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롯데마트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정육업체인 신화는 지난해 롯데마트의 납품가 후려치기로 인해 3년 간 100억 원 가량의 손해를 봤다고 폭로했다.

신화 측에 따르면 삼겹살 1kg을 기준의 정상 납품가는 1만 4500원이지만 롯데마트의 행사가 강요로 인해 30~50% 절감한 9100원에 납품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물류비·세절비·카드판촉비·컨설팅비 등을 롯데마트에 지급해 실제로는 1kg 당 6970원에 납품했다고 전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신화는 지난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에 롯데마트를 신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건을 공정거래조정원으로 넘겼고, 공정거래조정원은 롯데마트가 신화에게 48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외에도 롯데마트는 2014년 제품 홍보를 위한 시식행사 비용 16억 원을 납품업체들에 떠넘겼다가 과징금 13억 8900만 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2013년에는 스포츠행사를 열면서납품업체들에 협찬을 요구했다가 과징금 3억 3000만원을 부과받았다.

한편 롯데홈쇼핑의 중소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은 악명이 자자한지 오래다. 그간 국내 홈쇼핑사가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행하는 갑질은 오랜 시간 지적돼 왔다. 홈쇼핑 측이 방송편성을 일방적으로 취소ㆍ변경하거나 상품판매액과 관계없이 수익을 배분하는 경우, 방송제작비와 재고 발생으로 인한 비용의 전부 혹은 일부를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사례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롯데홈쇼핑의 임직원들은 중소납품업체들로부터 돈을 뜯고 높은 수수료를 요구해 홈쇼핑업계에 파장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로비를 한 업체에게 황금방송시간대를 배정해왔다는 게 홈쇼핑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재임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2심에서 신 전 대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석방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롯데홈쇼핑은 유통사업법 위반으로 공정위로부터 37억 4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며 검찰 수사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준비생은 '슈퍼 을(乙)'

회장님, 대표님 등 돈과 권력을 움켜진 슈퍼 갑들의 군림 속에서 돈 없고 힘없는 다수의 피고용인들은 고용인들의 착취에 시달리며 설움을 겪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취업준비생들은 '슈퍼 을'로 불리며 기업들의 채용 갑질에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12월 국내 포털사이트의 한 취업 커뮤니티에는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의 쿠팡맨 채용 갑질이 폭로됐다. 해당 글에 따르면 쿠팡은 쿠팡맨(물류 기사)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공고에 없던 운전시험 절차를 느닷없이 진행했다.

앞선 지난해 11월 쿠팡은 MD 채용과정에서도 제멋대로인 채용 시스템으로 지원자들의 공분을 샀다. 채용 접수가 끝나기도 전에 일부 지원자들에게 면접 일정을 통보했으나 면접 하루 전날 면접관에게 사정이 생겼다며 일방적으로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경쟁 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의 '인턴 착취 사건'도 지난해 1월 크게 회자됐다. 위메프는 2014년 12월 영업사원 신규 채용을 위한 과정에서 11명의 인턴들에게 실무 능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판매 계약을 따내는 업무를 맡기곤 2주 뒤 전원을 해고했다.

한 인턴 해고자의 고발로 해당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자 논란은 거셌다. 이에 위메프는 지난해 1월 사과문을 발표하고 인턴 전원을 채용한다는 입장을 공개 발표했다. 그러나 채용을 통보받은 이들 중 다수는 입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2015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불합격 여부를 지원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지적받았다. 지난해 11월 글로벌전략 직군에서 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 30명은 1차 면접에서 모두 불합격했지만 이를 안내받지 못해 혼란을 겪었다.

결국 지원자 중 1명이 동아쏘시오홀딩스 측에 이를 문의하자 하루 뒤 문자메시지를 통해 불합격 사실을 통보했다. 논란 이후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추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불합격 사실을 지원자에게 알리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제과는 지난해 8월 진행한 신입사원 공채 공고에서 2년 계약 사실을 명시하지 않아 정규직으로 알던 30여 명의 합격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후 롯데제과는 채용이 그룹 전체로 진행되다보니 명시하지 못했다며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사회공헌활동으로 위장된 갑질

몇몇 기업들은 직원들을 강제 동원해 사회공헌활동을 하고는 생색내는 또 다른 유형의 갑질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유니클로과 KT는 사측이 부담해야 할 사회공헌활동을 직원들에게 떠넘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글로벌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지난해 11월부터 전 세계 17개국의 직원들과 소비자들로부터 헌 옷을 수집해 난민에게 전달하는 1000만벌의 도움 행사를 진행했다. 약 4개월 간 10만 벌을 모아야 하는 무리한 목표였다.

이 과정에서 유니클로는 전 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매주 월요일마다 부서장 회의를 통해 실적이 높은 부서와 낮은 부서를 공개하고, 사내 전체에 직원들의 헌 옷 제출 현황을 공개해 물의를 빚었다.

드러내기 식 사회공헌활동 때문에 내부 직원들을 압박하는 사례는 KT에서도 발생했다. KT는 지난해 12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청년희망펀드를 기부받았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주도해 조성한 공익 펀드로 KEB하나은행도 직원들에게 이를 강요하다가 비난 세례를 받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KT는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실명으로 청년희망펀드 기부 의향과 기부 희망 금액 등을 조사했다. KT 측은 임직원들의 기부 참여는 자유라며 실명 조사는 세액 공제를 위한 수단일 뿐 강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KT 임직원들의 원성과 불만은 높았다. 자율적 기부라고 사측은 통보했지만 실명 조사이기 때문에 사실상 기부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결국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KT의 사회공헌활동은 임직원들만 쥐어짰다는 비판까지 나오며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