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ㆍ삼성생명 통해 지배력 강화… 원샷법 힘받아 지주회사 전환하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생명, 삼성카드 지분 확보로 1대 주주 자리 올라
금융중간지주사 전환 통해 개편 나서나
이재용 부회장, 삼성SDS 지분 매각으로 유상증자 참여
지배력 확대됐으나 신성장동력 발굴 과제는 '여전'
원샷법 통과로 지주회사 전환 탄력 받을까

재계 1위 삼성그룹이 연초부터 숨가쁘게 계열사 간 개편에 나섰다. 우선 삼성생명이 삼성카드의 지분을 인수하며 삼성카드의 1대 주주 자리에 등극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삼성생명의 금융 지주사 만들기의 포석이라 보고 있다. 지난해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할 수 있는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킨 데 이어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함으로써 지주회사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은 지주회사 만들기의 포석을 닦고 지배구조를 단순화시킴과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아직까지 지주사 전환을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몇 가지 남아 있지만 차근차근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때 '설'로만 돌았던 금융계열사 매각 가능성도 부정할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 통과된 '원샷법' 또한 삼성그룹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초부터 계열사 지분 개편에 나선 삼성그룹이 올해에도 공격적 사업 재편을 이어갈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금융 계열사 개편, 삼성생명 지주사 만들기 포석?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사.
삼성생명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 37.45%를 1조 5405억원에 인수하며 1대 주주에 올라섰다. 이로써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카드의 지분은 71.86%까지 올라갔다. 삼성생명 측은 공시를 통해 주식 취득 목적을 "사업 에너지 확대 및 안정적 투자수익 확보"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주식 취득을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 분석하고 있다. 대신증권 최정욱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선 자회사 지분요건인 30%를 갖추고 1대 주주 지위에 올라야 하는데 이번에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선 중간지주사법 통과가 돼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긴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이다.

또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삼성그룹의 삼성카드 매각설을 불식할 수 있는 데도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줬던 실용주의 행보에 따라 비주력 계열사의 매각설은 심심치 않게 불거져 왔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14년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미 방위 산업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지난해에도 실용주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는데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을 롯데에 매각함으로써 남은 화학 계열사를 전부 정리했다.

이러한 공격적 행보로 금융 계열사 또한 매각 대상이 아니냐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올 초에는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이 직접 사내방송에 출연해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기도 했다. 부인 후에도 불거지던 매각설은 이번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확보로 점차 가라앉게 됐다.

동시에 이번 지분 개편으로 삼성그룹은 전자와 금융으로 기업 전체를 양분할 수 있게 됐다. 지배구조의 단순화를 꾀함과 동시에 금융은 삼성생명 아래로 모이고 지난번 통합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주력 사업 부문을 묶어 양 날개를 구축한 것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사옥.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을 금융지주사로 전환한 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합병해 최종 지주회사로 만드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이번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확보는 금융 계열사를 일렬로 정리해 삼성생명을 실질적인 금융 지주사로 만들기 위한 초석이라는 것이다.

올 초, 삼성그룹은 그룹의 상징적 건물이었던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 사옥을 부영에 매각했다. 매각과 함께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이 전부 서초사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서초동으로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집결한 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까지 마친다면 삼성그룹이 그리고 있는 큰 시나리오가 대충 완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남아있다. 우선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등을 정리해야 한다. 현재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삼성생명은 비금융계열사 지분 보유율을 5% 이하로 줄여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7.5% 갖고 있고 호텔신라와 에스원의 지분 또한 5% 이상 갖고 있다. 이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삼성생명의 금융 지주사 전환을 이루기 위한 남은 숙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KB투자증권 강선아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를 해소해야 하는데 그룹 외부로 매각하는 것은 경영권 악화 측면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이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강화된 이재용 영향력… 3세대 경영 포문 열어

삼성그룹은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실질적인 그룹 지주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삼성물산 측 역시 합병 즈음 보도자료를 통해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로서 위상을 갖춰 미래 신수종사업을 주도하고 그룹 성장을 이끌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패션, 건설을 아우르는 통합 법인을 출범시킨 것이다.

사실상 지주 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16.4%를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삼성 내 지배력을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0.4%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 19.3%도 갖고 있어 이 부회장은 금융 계열사를 포함한 삼성 전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과 이번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획득을 통해 '3세대 경영 시대' 준비에 차근차근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혀진 지난달 29일,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SDS의 보통주 158만7757주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매도했다. 이는 지분 2.05%에 해당한다. 이로써 이 부회장의 삼성 SDS 지분은 9.2%로 줄어들었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 판매의 목적을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로 파악하고 있다. 삼성 측 또한 이 부회장이 극심한 실적 부진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 유상 증자에 참여함으로써 최대 주주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삼성SDS의 주가는 출렁거렸다. 오너의 지배력이 약해졌다는 점이 주식 시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재용 부회장이 세금을 내고서라도 삼성SDS 지분을 팔아 삼성엔지니어링을 살리겠다고 한 것이 삼성SDS 주가에 충격을 줬다. 당초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시나리오를 기대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예전과 같은 주가 수준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재용 부회장으로썬 통합 삼성물산 출범,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확보를 통해 승계 과정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미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통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보다 앞선 지분을 획득해 경쟁 구도에서 몇 발자국 앞서게 된 것이다.

문제는 신성장동력 발굴이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 전기자 배터리 사업 등 삼성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한 사업군을 하루 빨리 안정적 궤도에 올려 놓음으로써 사업 성과를 선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또 지주회사 전환이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음에 따라 안으로는 지배구조를 더 강화하고, 밖으로는 신성장동력 성과를 동시에 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남은 과제로 여겨진다.

연말 인사를 통해 실용적 노선을 그대로 이어갈 것을 시사한 삼성그룹은 올해 역시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공격적 사업 재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 계열사 매각설은 잠잠해졌지만 또 다른 빅딜이나 매각이 단행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 행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삼성, '원샷법'의 진정한 수혜자인가

이 와중에 지난 2월 4일, 국회에서는 '원샷법'이 210일만에 진통을 겪고 통과됐다.

'원샷법'의 정식 이름은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다. 기업 인수합병(M&A) 등 사업 재편 관련 절차나 규제를 묶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원샷법의 통과로 인해 기업의 업종 내 구조조정과 계열사 개편 및 합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샷법의 통과로 그 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철강, 조선업, 해운업, 석유화학 등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또 내수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원샷법의 진정한 승자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에 골머리를 앓았던 삼성, 현대자동차 등이 원샷법 통과로 지주회사 전환의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완료한 LG와는 달리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는 아직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5년 9월 발표한 '2015년 지주회사 현황 및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 증가세는 정체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 집단 소속 지주회사는 일부 지주회사의 지정 제외 등으로 1년 전보다 1개 감소해 30개로 파악됐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 집단도 15개로 1년 전과 동일했다. 반면 대기업을 제외한 지주회사는 1999년 4월 관련 제도 도입 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만큼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예인 것이다.

원샷법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강제전환에 따른 규제 유예 기간을 1년 늘려주고 지주회사의 증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보유율을 기존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샷법 통과를 계기로 삼성, 현대차 등이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원샷법이 기업의 불법적 경영권 승계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었다. 원샷법이 200일이 넘게 국회에서 표류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여당의 경우 원샷법을 '삼성특혜법'이라 부르며 전면적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그룹이 그룹의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키고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원샷법 통과로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이 수월해지고, 그렇다면 삼성그룹의 유력한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이 강화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안전장치들도 마련돼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원샷법 적용 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었고 한시적인 만큼 구조조정이 시급한 분야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 사업구조 재편의 목적이 경영권 승계나 특수관계인의 지배구조 강화일 경우에도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설정해 놨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일감 몰아주기 또한 원샷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안전 장치로 볼 때 앞서 제기한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합병 시나리오는 힘을 잃게 됐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SDS 지분 매각으로 이러한 시나리오의 실현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게 재계의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삼성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들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삼성보단 다른 대기업들이 '수혜주'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윤태호 한국투자증원 애널리스트는 "삼성은 제조업은 삼성전자, 금융업은 삼성생명이 양분해 자회사-손자회사간 지분정리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돼 있어 수혜 폭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재무재력이 되는 LG와 SK를 최대 수혜자로 평가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원샷법 통과를 통해 어느 정도 탄력을 받게 됐지만 여전히 지주회사 전환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남아있다. 이를 해결한 후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삼성그룹 개편의 마지막 목적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