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더 이상 싸구려 아니다"…M&A 통해 프리미엄 시장 공략글로벌 가전·IT업체 흡수 나선 中광폭 행보M&A로 브랜드 이미지 높여… 프리미엄 시장 진출적극적 M&A… 삼성전자·LG전자 자리까지 넘봐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쇼 CES2016 내 '중국 가전업계 1위' 하이얼의 전시장 전경. 사진=연합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했던 중국 가전ㆍIT업체들이 고가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으로 해외 유명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적극적이다.

M&A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국업체들의 행보가 프리미엄 시장에 가까스로 안착한 삼성전자, LG전자에겐 위협적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이 질주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가전ㆍIT업체 M&A 경보

'중국 가전업계 1위' 하이얼은 지난달 15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 부문을 54억 달러(약 6조 5600억 원)에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중국 가전업체가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하이얼은 2014년 기준 326억 달러(약 39조 5110억 원)의 매출을 거둔 세계 1위 글로벌 가전업체다. 2009년부터 6년 연속으로 가전 시장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탓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중국 하이얼의 미국 GE 가전사업 부문 인수와 관련해 말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특히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수요가 높은 북미 시장에서는 인지도가 낮았다. 한국 시장조사전문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북미 가전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16.6%), 월풀(15.7%), LG전자(14%), GE(13.5%) 순이며 하이얼은 1.1%에 불과했다.

반면 GE는 북미 시장에서 꾸준히 점유율 4~5위를 기록해온 100년 전통의 가전업체다. 이번 M&A를 통해 하이얼이 북미 시장에서 업계 4위에 올라서며 그 동안의 저가 이미지를 벗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예측했다.

이와 관련, 김상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수는 북미 가전 시장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항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하이얼이 GE 가전부문을 인수함에 따라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간접적인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앞서 하이얼은 2011년 일본 파나소닉으로부터 냉장고, 세탁기 부문을 인수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바 있다. 이듬해에는 뉴질랜드 가전업체 피셔앤파이클을 5억 달러(약 6000억 원)에 인수해 M&A를 통한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로 알려졌다.

하이얼 외에도 다수의 중국 기업들은 M&A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하고 있다. 중국 컴퓨터 제조사인 레노버는 2004년 IBM의 PC 사업부문을 사들인데 이어 2014년에는 모토로라의 휴대폰 부문을 인수해 저가 이미지를 탈피했다. 레노버는 2005년 PC 시장 점유율이 9위(2.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 21.2%로 10분기 연속 세계 PC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M&A를 통해 인지도를 더함으로써 저가 브랜드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하이얼의 미국 GE 가전사업 부문 인수와 관련해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해엔 중국 TV 제조업체 스카이워스가 독일의 메츠를 인수했다. 그 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IFA) 2015'에서 스카이워스 측은 두 개의 브랜드를 활용해 프리미엄 시장은 메츠로, 주류 시장은 스카이워스로 공략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리우탕즈 스카이워스 컬러TV사업부 총괄은 "먼저 독일권 시장을 통해 유럽에 진출하고 프랑스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3년 내로 유럽 시장 전체 진출, 유럽 연구 센터를 설립할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TV 부문에서 두각을 보이는 중국의 하이센스는 일본 샤프의 멕시코 TV 제조 공장을 인수했다. 뿐만 아니라 미주 지역에서 샤프 상표의 사용건과 판권도 확보해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샤프 브랜드로 TV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이센스와 마찬가지로 중국 가전업체 TCL 또한 지난해 일본 산요의 멕시코 TV 공장을 사들였다. 산요의 북미 시장 TV 매출은 연간 300억 엔(약 2933억 원)으로 TCL은 멕시코 공장에서 TV를 위탁생산해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M&A 통한 프리미엄 시장 공습

막대한 자본으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M&A를 업계 전문가들은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인지도를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의 상위권을 모조리 석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시장조사전문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이 지난해 해외 기업을 M&A한 규모는 1119억 달러(약 13조 8700억 원)에 달한다. 그 규모는 2010년부터 평균 19%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급증하고 있는 중국의 M&A를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전자ㆍ통신업계에서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M&A는 중국 정부의 자금 대출 상환기한 연장 등의 해외 투자 활성화 조치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중국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M&A에 나서는 이유는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의 해외 브랜드 M&A가 글로벌 소비자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중국의 주요 경제매체 제일재경일보는 지난해 중국전자제품수출입협회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하이얼, TCL 등 기업이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이미지에 갇혀 해외 일류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국내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국의 보호 시장에서 저가 전략으로 급성장한 중국 업체들이 중국 내 시장이 포화되자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에 승부를 걸기 위해 나섰다"며 "중국 제품은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닥치는 대로 유명 브랜드들을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내수 시장의 둔화가 중국 업체들의 글로벌 M&A를 확산시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6.9%로 최근 25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져 중국 소비 침체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수 시장의 둔화는 그 동안 내수 시장을 주력으로 해왔던 대다수의 중국 업체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왔다. 일단 위기가 아니어도 내수 시장을 두고 자국 업체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해외 시장 활로를 뚫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종훈 전국경제인연합회 지역협력팀 과장은 "중국 내수 시장이 꺼지면서 최근 중국 정부가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으로 경제성장목표치를 낮췄다"며 "이에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적인 M&A를 통해 계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선 전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쉽고 빠른 방법은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라며 "스카이워스가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독일의 메츠를, 하이얼과 TCL이 북미 진출을 위해 멕시코 공장을 사들이는 양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는 인건비 등을 절약하기 위해 현지 기업을 인수했지만 현재는 현지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M&A한다"며 "내수 시장에서 성장이 더 이상 어렵다고 느낀 중국 기업들이 현지 기업을 M&A를 하거나 지분을 매입해 해당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업체 잇단 M&A 국내 위협

중국 업체들이 해외 M&A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하려는 전략은 한국 가전ㆍIT기업들에게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초기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일본 브랜드들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뒤 차츰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하이얼이 GE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한 것을 두고 어느 때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각에서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대다수는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업계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삼성전자 측은 하이얼의 M&A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놔 화제를 모았다. 이날 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은 "하이얼의 GE 가전사업부 인수가 당장 삼성전자에 끼치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생활가전 부문에 몸담고 일한 지 오래"라며 "시장 환경이나 경쟁 구도는 늘상 바뀔 수 있다. 경쟁 구도가 바뀌는 데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또한 M&A 계획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며 "(경쟁 업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게 뭔지 지속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답해 중국 업체들의 M&A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지난달 19일(현지시간) LG전자 측 또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6 주방ㆍ욕실 박람회(KBIS)'에서 조성진 LG전자 H&A 사업본부장은 "(GE) 인수 후에도 중저가 브랜드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GE는 미국 시장에선 영향력이 있지만 기타 해외 시장에선 그리 영업에 도움을 주지 못 한다. 이미 LG는 미국 시장에서 GE보다 더 높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하이얼이 GE를 통해 고가품 진출을 시도한다고 해도 아직 기술적으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며 "그리고 하이얼의 GE 가전 인수에 대한 미국 내 반응도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중국 업체들의 M&A를 통한 프리미엄 시장 진출에 대해선 "중국 기업이 해외 브랜드를 인수한다고 당장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중국 내수가 워낙 역성장을 하고 있다 보니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이어 "품목별로는 우리 입장에서 취약한 분야도 있다"며 "그런 분야를 집중적으로 성장시키고 여러 제품을 다양하게 융복합해 나간다면 안정된 성장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향후 전략을 밝혔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이를 심상치 않게 해석하고 있다. 세계 1위 글로벌 가전업체와 북미 시장의 전통강자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하이얼이 저가브랜드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가전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양문형 냉장고와 빌트인 가전 등에서 GE의 높은 기술력이 하이얼 제품에 이전되고 GE의 중저가 제품에 하이얼의 원가경쟁력이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번 인수로 국내 가전업체들은 부정적 측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상희 KB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하이얼이 북미 시장 점유율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북미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가전업체의 중장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