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서 형제ㆍ사촌에 경영권 이양경영권 승계, 직계에서 사촌·조카로 넘어가 '눈길'장자 상속과 전문경영인 체제 절충… '가족경영' 발전'오너경영' 장점 살리면서 독단·독선은 피해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두산그룹 회장직이 '삼촌' 박용만 회장에서 '조카' 박정원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진화된 방식의 가족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재계의 전통적인 장자 상속 대신 사촌이나 조카에게 그룹을 물려주는 승계 방식이 점차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장자 상속과 전문경영인(CEO) 체제의 절충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재계 전반에서 오너가 4세들이 경영 승계를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나 사촌들이 번갈아 가며 경영하는 형제 경영과 사촌 경영 형태가 점차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두산그룹 회장직이 오는 25일 두산가 3세 중 5남인 박용만 회장에서 4세 중 장손인 박정원 회장으로 승계된다. 박정원 회장은 1985년 두산산업에 입사한 이후 2007년 (주)두산 부회장, 2012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 등 그룹의 주요직을 맡아왔다.

재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용만 회장은 박정원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용만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주)두산 이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그룹 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는데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국내 철강업계에서 기린아로 떠오르고 있는 세아그룹이 있다. 세아그룹 경우 고(故) 이종덕 창업주의 장남인 고(故) 이운형 전 회장이 2013년 타계한 이후 동생인 이순형 회장이 총수 자리를 물려받았다.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이 가운데 고(故) 이운형 전 회장의 장남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이순형 회장의 장남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가 후계 구도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게 앞선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오는 18일 세아그룹 주총에서 이태성, 이주성 전무가 등기임원에 오를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서 사촌 간 경영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는 다수 있었다. GS칼텍스 허동수 회장이 2013년 대표이사직을 사촌 동생인 허진수 부회장에게 넘긴데 이어 지난달 25일 이사회에서는 이사회 의장직까지 물려줬다.

허동수 회장과 허진수 부회장은 고(故)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3세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인 허진수 부회장은 1986년 GS칼텍스에 입사한 이후 정유영업본부와 경영지원본부장을 거치는 등 정유업계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또한 사촌 경영의 대표 사례다. SK그룹은 고(故) 최종건 창업주에서 그의 동생인 고(故) 최종현 전 회장을 거쳐 최 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으로 그룹 총수직이 넘어온 상태다.

이 가운데 고(故) 최종건 창업주의 차남 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특히 오는 18일에 열리는 SK네트웍스 주총을 통해 문종훈 SK네트웍스 대표와 공동대표를 맡는다고 알려져 SK그룹의 사촌경영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신원 SKC 회장
LS그룹은 오랫동안 사촌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구자홍 전 회장은 2012년 구자열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넘겼다. 구자홍 전 회장과 구자열 회장은 사촌 지간이다.

LS그룹 내 주요 계열사인 LS전선과 LS산전 또한 사촌이 나눠서 경영하고 있다. 구자엽 LS전선 회장과 구자균 LS산전 회장 역시 사촌 지간으로 각각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차남,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3남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경우 사촌 경영에서 각자 경영으로 결별하는 수순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18일 현대중공업그룹 이사회는 자회사인 현대종합상사를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에게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정몽혁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故)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이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6남인 과는 사촌 지간이다.

한편 '가족경영의 진화'와 관련해 다른 재계 관계자는 "가족경영은 위기 대처 능력과 과감하고 빠른 의사 결정 같은 특징을 취하면서도 능력 있는 적임자가 경영권을 맡으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반면 김주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경영권 승계라기보다는 지배권 승계라고 규정해야 한다. 지주회사격인 회사의 회장직 승계이기 때문"이라며 "창업주 가족들의 지분이 많아 지배주주군을 형성하고 있는 사태에서 창업주 가족 이외의 자가 회장직을 승계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임경영체제, 투명경영체제를 더욱 강화해 가족기업의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지배주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되, 법과 시장의 테두리에서 이를 수행하는 스마트 오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