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회장 용퇴… 재계 첫 '4세 오너 경영자 시대' 열어두산 해결할 과제 많아… 재무 건전성, 계열사 회복 급선무'승부사' 기질과 리더십 평가받아… 위기 탈출 기대돼

2일 열린 ㈜두산 이사회에서 차기 두산그룹 회장으로 확정된 박정원 ㈜두산 회장(왼쪽)이 2014년 7월 인천시 화수동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서 열린 '글로벌 R&D 센터 준공식'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테이프 커팅하고 있다. 사진=두산인프라코어 제공
올해 8월 창업 120주년을 맞는 국내 최장수 대기업인 두산그룹의 새 회장으로 박정원(54) ㈜두산 회장이 확정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큰 조카 박정원 회장이 승계하면서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4세 오너 경영자 시대'가 개막하게 됐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고(故) 박두병 창업회장의 맏손자다.

박용만 회장은 2일 오후 열린 ㈜두산 이사회에서 "오래전부터 그룹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는데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두산그룹은 고(故) 박승직 창업자와 고 박두병 초대회장(2대)에 이어 박 초대회장의 다섯째 아들들(3대)이 번갈아가면서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 경영을 유지해 왔다. 박 초대회장의 장남인 박용근, 차남 고 박용오, 3남 박용성, 4남 박용현을 거쳐 현재 총수를 맡은 5남 박용만 회장 등이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박정원 회장은 오는 25일 ㈜두산 정기주총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절차를 거친 뒤 그룹 회장에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용만 회장은 현재 맡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계열사 중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 측은 "박용만 회장의 등기 이사 임기가 올해 만료될 예정이고 박 회장 입장에선 지금 승계 작업이 이뤄지는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실적 책임론'에 대해 두산 측은 "최근 일부 계열사 실적이 부진한 것은 맞지만 회장직 승계는 관련성이 없다"며 "박용만 회장이 오래전부터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박 회장의 용퇴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등과 무관치 않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1896년 설립한 두산그룹은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그간 그룹의 체질을 바꿔가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 몇 년 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이 실적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탓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두산과 두산중공업의 장기신용등급을 각각 'A'에서 'A-'로, 두산인프라코어를 'BBB+'에서 'BBB'로, 두산건설을 'BBB-'에서 'BB+'로 각각 내렸다.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앞으로도 추가 등급 하락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신용 강등이 이어지면서 회사채 상환에도 비상등이 켜지는 등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박정원 회장은 그룹의 위기를 탈출하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게 첫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주요 계열사를 다시 정상궤도에 빨리 올려놓는 게 급선무다.

두산으로서는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 밥캣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두산이프라코어의 경우 2일 공작기계 사업부 매각을 위해 우선협상대상자인 MBK파트너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해 '급한 불은 일단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두산인프라코어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연내 국내 시장에 상장해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게 박정원 회장의 큰 과제다.

신임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장손으로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며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참여해왔다.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박정원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과감하게 정리함으로써 취임 이듬해인 2000년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 올리는 사업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두산 관리본부에서 상무, 전무를 거친 뒤 두산건설 부회장, 두산모터스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2년부터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에 중요한 과제가 많은 시점"이라며 "박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난국을 잘 헤쳐가느냐에 따라 두산 4세 간 사촌 경영의 지속 여부도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정원 회장은 누구?

새롭게 두산그룹을 이끌게 된 박정원 회장은 1985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두산이 있기까지 지난 31년간 모든 직급을 거치며 주요 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준비된 차세대 리더로 평가 받아왔다.

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입사해 차곡차곡 현장 경험을 쌓았다. 두산그룹이 식음료ㆍ소비재에 집중하던 1990년대에는 핵심 계열사인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에서 일했다.

박정원 회장은 1989년 뉴욕지사에 근무하면서 보스턴대 경영대학원(MBA)를 졸업했고 1992년에는 '남의 밥을 먹어봐야 안다'는 두산의 전통에 따라 1년 넘게 일본 기린맥주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두산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중공업 중심의 산업재 기업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두산 상사BG와 두산건설 등을 지휘하며 그룹의 체질 변화에 앞장섰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 취임 이듬해인 2000년에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리는 경영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 회장은 2014년 이후 두산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연료전지와 면세점 사업을 주도하며 두산그룹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는 현재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